글쓰는 빵순이들의 3시간
“안녕하세요. 전 풀빵이에요.”
사실, 전 오늘 초면입니다. 그런데 초면 같지 않네요. 그간 이야기를 많이 나눠왔기 때문일까요? 아님 처음부터 친해질 그런 인연이었을까요? 마흔 넘어 이렇게 설레어도 되는 겁니까? 참 신기하네요. 평균나이 아마도 40대 중반일 빵순이들인데, 20대 대학생처럼 깔깔깔, 호호호 빵 먹으면서 이렇게 시간을 거꾸로 가는 마법을 부려도 되는 겁니까? 그런데 손에 손에 다들 종이백이 들려 있어요. 그래요, 우린 빵사들고 빵집에 모인 빵순이예요.
글을 쓰는 자. 빵을 좋아하는 자. 그래서 정기적으로 빵글을 방글방글 웃으며 써보기로 한 모임. 빵순이들의 모임에 한 달 전부터 다이어리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기다렸어요. 사실 전 몇 번의 모임을 거치고 갖고 헤어지면서 “인생, 까짓 혼자 사는 거야! “를 깨달았다며, 조금은 의기소침했어요. 그때 혼자 열심히 할만한 걸 고르다가, 충동구매(?)로 글쓰기 수업을 등록했어요. 그리고 얼떨결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요. 그곳에서 같은 입맛, 비슷한 결과 입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무엇이든 처음이 설레는 법이지요. 낙관주의자인 저이지만 인간관계는 서툴러서 은근, 이 부분 한정 회의주의자이기도 하답니다. 16일. 모임날짜가 잡히고, 설레었어요. 그리고 조금 겁이 났어요. 이제 낯설어진 세계를 찾는 여정. 조금 용기를 내서 가볼까, 괜찮겠지. 쓰는 용어, 라이프 스타일, 이제 모두 달라졌는데, 혹시나 유별나보일까, 조금 떨렸지요.
지방에서 기차표는 미리 끊고 3일 전에 아이 아빠에게 의견을 묻습니다(=허락을 구합니다). 아이아빠는 직장인이니까 빠질 수 없는 회의가 있으면 늦게 올라가야 하거든요. 부모 중 한 명은 인근 거리에서 스탠바이 대기해야 하는 책임감 또는 불안 때문에 한 명은 대전에 있어야 해요.
- 혹시, 월요일에 정원이 등교해 줄 수 있어? 나 작가들 모임이 서울에서 있어. 저번엔 대면수업하느라 못 가서 이번엔 한번 가고 싶어.
- 응 등교는 괜찮지. 그런데 저녁 회식이야. 혹시 저녁도 먹고 와?
- 아니, 5시까진 정원이 센터까지 복귀할 수 있어.
- 오케이. 그럼 등교는 가능.
하지만 아이의 촉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다 알아들은 것이겠지요. 아님, 저랑 공명하는 걸까요? 매일 10시 전에는 잠들었는데 가기 전 날 새벽 2시까지 잠들지 않아요. 엄마의 두근거림을 눈치챈 걸까요? 잠과의 투쟁은 해마다, 달마다, 계속되고 늘 변화에 대응해야 하지요. 오랜만의 2시 취침은 참으로 피곤하네요. 엄마가 평소와 다르단 걸 눈치챘나 봅니다. 눈뜨자마자 주섬주섬 씻고 챙기고 오늘 정원이를 돌봐주거나 만날 어른들에게 릴레이로 메시지를 남겨둡니다. ‘잘 부탁합니다. 어제 늦게 잠들었어요. 혹시 컨디션 안 좋으면 연락 주세요.‘ 아, 이런. 곱게 화장하고 만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서울역. 태양만큼 환한 미소의 대빵작가님이 환대해 주십니다. 초면인데 어색한데 반가워요. 고맙습니다. 일 년 만의 서울. 20대 시절 등하교(?)하던 1호선 라인. 10년째 지도교수님을 못 찾아뵙는 서울.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서울인데, 그 시절 지인들은 아직 못 만나고 있어요. 내 손에 쥐어진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몬문이라도 하나 쥐고 만나지금 제 손엔 무려 [성심당빵 7번 세트]가 있습니다. 부추빵 둘, 튀김소보로 둘, 튀소구마 둘. 곧 만나게 될 빵순이들의 만남엔 나름 환영받을만한 것이겠지요?
익선동. 처음 와 본 거리입니다. 10년 전엔 서촌에서 자주 모였었는데. 처음 가 본 작은 골목길을 어제도 왔던 것마냥 익숙하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어요. 3시간 만남은 마치 꿈처럼 흘러갔어요. 별 이야기 안 한 거 같은데 시간이 금방 지납니다. 시간은 마치 자유로웠던 옛 시절처럼, 빠르게 그리고 소중하게 지나갑니다. 아, 어느새 눈이 내리네요. 그리고 마치 신데렐라처럼, 2시 33분 대전행 기차표 시간은 다가옵니다. 아이랑 손가락 걸고 약속했거든요. 5시엔 꼭 만나기로. 미처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합니다.
내려가는 기차 안 작은 선물들에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고맙습니다. 환대해 주셔서, 평안의 일상에 저를 맞이해 주셔서. 마치 수상소감처럼 감사를 나눠봅니다. 힘들 때 더 감사하란 말, 아시나요. 정말 그렇거든요. 감사해요. 인팁의 정원 연재글 언제나 재밌다고 응원해 주시는 윤슬작가님의 까눌레, 제가 뽑아서 제가 다 먹었어요. 무척 맛있습니다. 고마워요. 제 꿈의 직업을 가지셨어요. 만나고 싶었어요. 언젠가의 댓글에 아픈 맘 치유하라며 만나면 호랑이밤 연고 주신다던 캐서린의 뜰 작가님. 고맙습니다. 마음이 따듯해져요. 민송 작가님. 먼 길 왔다며 주신 에그타르트, 남편과 함께 잘 먹었어요. 고맙습니다,등대처럼, 묵직하게 여정을 밝혀주시는 이리재 작가님, 고마워요. 함께 빵도 먹고 운동도 하고 조용히 걱정과 기쁨을 나눠주시는 온리 작가님 감사해요. 다른 글에도 썼지만 연둣빛 다이어리와 함께 이것저것 한아름 안겨주신 환대요정, JummaPD 작가님 감사해요. 무엇보다 빵모임 공간을 마련해 주시고, 이 만남을 장만해 주신, 오자마자 책선물도 안겨주신 wishblue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 1일 1 글 하느라 고생하시는 햇살 같은 밝음을 저에게 나눠 주신 햇살드는 방 작가님, 진심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어요. 뵙고 싶었어요. 모두. 오늘 못 뵌 병 밖을 나온 루기 작가님, 나중에 꼭 보기로 해요.
집에 오니, 마치 꿈같던 시간들이네요. 매일의 마주한 현실 안에서 따듯한 위안의 기억을 안고 한주를 보냈습니다. 고마워요. 초면인데 곁을 내주셔서.
우리, 또 만나요.
에필로그)
랜덤으로 뽑은 카드의 글귀를 다시 읽어봅니다. "잊지마, 벽을 눕히면 다리가 돼."
장애라는 벽 앞에서 사람만나기 조금 힘들었던 나날, 이렇게 글이 다리가 되어 인연을 쌓아갑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