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인간이 가능한 일일까?
삶과 반대되는 말은 죽음이라고들 한다. 생명이 있다와 없다인 것이니 이분법적인 말이다. 내 삶을 정의한다면, 정의할 수 있을까?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난 학교를 가는 것이 즐거웠고, 지금도 즐겁다. 아마 돈을 많이 벌더라도 일은 꼭 하겠다는 나의 현재 의사와도 동일하다. 사람마다 일에 대한 관점이 이렇게나 다른데, 삶이라는 것을 정의 내릴 수가 있을까?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지만, 자신의 삶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일 수 있다. 우리는 완벽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고,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나의 삶을 알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본다. 그 자체가 나인 것이다. 굳이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우러러보는 그렇게 큰 성공을 이루지 않아도, 나는 내 브런치를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과 구독자 23분에게 나의 글을 보여주는 그런 소소한 삶을 살더라도 그것은 나인 것이다.
삶을 살아갈수록,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한다. 직접경험과 간접경험. 누군가 멋지게 사는 것도 보고, 누군가 허망하게 죽어가는 것도 목격한다. 우리는 순간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순간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그 순간을, 우리는 매일, 매 시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경험으로 우리는 성장하고, 경험으로 우리는 시야가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때로는 우리의 시선이 제한되기도 한다. 그렇게 배웠다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외국인인데, 속은 한국인인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그런 사람들은 외모만 다르지 생각은 한국인과 거의 유사하게 할 확률이 높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를 그렇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경험의 장점도 있지만, 그 한 가지 경험을 나의 잣대로 삼아버리는 순간, 그 경험은 나를 가두는 울타리가 된다. 그래서 모임을 하더라도 다양한 모임을 가고자 하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더라도 다양한 사람, 신문을 보거라도 다양한 이야기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가지고 있는 관점이 다르듯, 우리는 각자의 삶이 다르기에, 누구도 답을 정의할 수 없다. 완벽이라는 것은 누군가와 비교한 나 자신인 것이다.
2등만 해도 완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크레블이라는 영화를 보면, 아마 2였을 것이다. 달리기를 잘하는 능력을 가진 둘째가 학교 체육대회를 하는데, 그들의 가족은 그에게 2등을 하기를 요구했다. 1등을 하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고, 늦으면 그 아이가 나간 의미가 없는 것이니, 그 가족들은 그렇게 그에게 완벽한 2등이라는 등수를 요구한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스스로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면, 그것이 완벽한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과거와 미래가 겹쳐지는 매 순간을 살고 있다. 저 제목을 썼을 때의 나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다른 나라는 것이다. 생각이 달라졌고, 글의 구조가 달라졌고,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게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고, 완벽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