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2를 보고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by 유민재

오늘 흑백요리사 마지막 화가 업로드 되었다. 퇴근을 하고 토달볶을 만들어서 식탁에 앉아 넷플릭스를 켰다.


이전 에피소드를 볼 때도 느꼈었지만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경외감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무언가를 저렇게 열정 있게 해 본 적이 있었나.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답을 들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무쇠팔 셰프님 프랜치 파파 셰프님, 후덕죽 셰프님을 비롯한 많은 셰프님들의 이야기와 행동과 열정을 보고 나면 "난 아직 그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마지막 화를 보았다. 이하성 셰프님의 요리는 멋졌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의 고통을 이기고 얻어낸 순댓국을, 스무 살 이후 외국에서 받은 고통을 이기고 얻어낸 실력으로 다시 만들어낸 게 멋졌다. 아직 부족함이 많은 자신에게 스스로 하신 말들이 납득이 될 만큼.


그리고 최강록 셰프님의 요리는 따뜻했다. 그릇을 심사위원과 셰프님 본인 앞에 놓는데 김이 나더라. 이런 음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본인에게는 90초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로지 이 세계관에서만 할 수 있는 음식이라며. 절대 본인에게 다시는 해주지 않을 음식이라며. 안성재 심사위원을 비롯한 수많은 참가자들도 본인에게는 그렇게 정성을 들여 음식을 해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음식을 할 줄 아시는 분들이.


위화감과 비슷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몇십 시간을 들여서 육수와 소스를 만드는 분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과 몇백만 원 와인의 어울림을 깨달으신 분들이. 그럴 줄 아시는 분들이. 노동주, 취침주라고 소개한 이천 원짜리 빨뚜에 위로를 얻으신다는 사실이. 묘했다.


우승자가 정해지고 난 뒤 최강록 셰프님은 우승을 준 의미가 무엇인지를 빨리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요리사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안성재 셰프님, 레이먼킴 셰프님, 선재스님, 프랜치 파파 셰프님, 이준 셰프님을 비롯한 모든 셰프님들의 말은 다 같았다.

나의 일이다. 모든 것을 걸었고, 최선을 다했다. 57년을 해도 60년을 하고 싶은 나의 일.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난 아직 그런 적이 없다.


요즈음 업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었다.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나이이고, 모두가 하는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만, 이직을 결심한 후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를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이건 내가 원하던 개처럼 사는 인생이 아님을 알았지만 잘 안되더라. 업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흑백요리사 2를 보며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저 셰프들과 같은 감정을 선물해주고 싶다. 나에게 아주 정성 들여서 요리를 해주고 싶다. 셰프님들처럼 나의 일에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해서 해보는 경험을 나에게 주고 싶다. 그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내 업의 마지막이 어떤 것일지 모른다. 생각했던 대로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듣는 광고를 기획해서 만들어 보면 끝일까. 국내나 해외 광고제에서 상을 왕창 받아보면 끝일까. 아직 방법도 루트도 감이 안 잡히지만, 저 셰프님들이 최강록 셰프님의 말을 듣고 느꼈던 느낌. 그 느낌을 나에게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 광고업의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 위로가 필요하면 이천 원짜리 빨뚜를 짜배기로 마셔야지.


너무 진지하게 끝내긴 싫고... 주니어 광고인에서 시니어 광고인으로 성장하고픈 마음을 담아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