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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달걀 Jun 27. 2016

짤강짤강, 민트 줄렙

얼음 소리에 되살아난 그 한 대목의 기억

월요병을 이길 한 잔의 커피를 사러 아침부터 카페에 들렀었다.

늘 가던 몇몇 곳이 있었지만 오늘따라 잘 안 가던 곳에 갔는데, 이 집의 특징은 얼음을 다른 곳보다 아주 작게 얼려 쓴다는 것. 시원한 아메리카노 안에서 경쾌하고 청량한 소리를 내며 부딪는 조그만 얼음들을 보며 이 소리를 꼭 맞게 나타내는 의성어가 있었는데.. 뭐였더라.. 하고 아침내 고개를 갸웃하다가, 점심때쯤 문득 생각났다. 짤강짤강. 얼음들이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딱 그거였다. 짤강, 짤강. 그리고 바로 뒤이어 소령의 민트 줄렙이 떠올랐다.


나는 미국의 작가 오 헨리를 좋아한다. <마지막 잎새>로 가장 많이 알려진 바로 그 작가로, 그 작품 말고도 그야말로 미국적이면서 달콤씁쓸한 위트가 있는 단편이 많다. 두툼한 단편선을 사서 몇 번을 읽었는데, 그 중에 <하그레이브스의 일인이역>이라는 작품이 있다. 미국 남부 출신의 꼬장꼬장한 퇴역군인(남부+군인 콤보라면 보수 중에 상 보수 늙은이임은 익히 짐작이 가능하다) 탈보트 소령과 젊은 연극배우 하그레이브스에 대한 이 이야기의 중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그레이브스는 소령이 민트 줄렙을 만드는 모습을 볼 때면 넋을 놓곤 했다. 칵테일을 만드는 소령은 예술가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으며, 그 과정을 결코 간단히 생략하거나 바꾸는 법이 없었다. 박하를 빻을 때의 그 정교한 솜씨며 재료를 계량할 때의 그 정확성, 그리고 그 혼합물 위에 반짝이는 붉은 색 과일과 초록색 잎사귀를 얹어놓는 세심함까지. 마지막으로 잘 고른 짚풀 빨대를 짤강대는 얼음 사이로 끼워넣고 손님에게 권하는 그 우아한 모습!


단편선을 몇 회독을 하면서도, 이 대목에서 매혹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줄렙이라는 이국적 단어와 선뜻 짐작이 가지 않는 그 음료의 맛을 더듬어 보며, 막대기처럼 딱딱한 소령이 우아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정확히 음료를 만드는 모습을 숨을 죽이고 상상하는 나는, 넋을 놓고 소령을 지켜보는 하그레이브스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빨대가 꽂히는 대목에서 내 귓가에 차고 깨끗한 얼음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짤강, 짤강.


오 헨리의 단편을 심심파적으로 읽어대던 스무 살 전후의 나는 민트가 박하인지도 모르고 술 맛은 더더욱 잘 알지도 못했기에 민트 줄렙이라는 음료를 실제로 먹어 보는 상상은 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월이 훌쩍 지나 민트 들어간 모히또를 여름마다 찾는 내가 된 지금은, 이 대목이 기억에 되살려진 김에 한 잔 마셔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보면서 상상한 맛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왜 책으로 접한 모르는 음식은 무조건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미국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해온 칵테일 한 잔 알게 되는 것은 나쁘지 않을 테니.


때마침 시원하게 한 잔 하기 좋은 계절이지 않나. 짤강이는 얼음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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