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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20. 2016

사랑의 과정과 끝,
달콤하고 씁쓸한 일련의 사건사고들

알랭 드 보통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스포일러가 살짝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책을 읽고 쓴 나름의 감상문




사랑은 진부하면서도 흥미롭고 늘 새롭게 다가오는 주제다. 조금만 신경 써서 듣고 보면 우리의 대화는 사랑과 관련된 주제로 점철되어 있다. 몇 천년 간 모든 이의 입에서 오르내린 진부한 주제인데 동시에 새로움과 짜릿함을 가져온다.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25살,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 때 펴냈다. 

첫 구절부터 쭈욱 읽어 내려가며 실존 인물과 나눈 사랑 이야기를 일기 쓰듯 써 내려간 것인가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날카롭다. 드 보통의 다른 책들은 철학과 인문학에 무지한 나에겐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져 끝까지 읽은 것이 없었는데, 이번 책만큼은 다 읽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나 어려워하던 철학이 이렇게 실감 나게 풀릴 수 있나 놀라워 몇몇 구절을 곱씹어 읽어보기도 했다. 

줄거리는 그저 "우연히 만난 여자 클로이에게 깊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헤어지는" 아주 평범한 내용인데, 그것을 서술하는 문장들은 재치와 지성, 통찰력이 한꺼번에 담겨 정말 눈부셨다. 진부하지만 절절하게 공감되는 묘사와 세밀한 생각들. 첫 부분부터 밑줄 친 부분이 너무 많은 탓에 중고책으로 되팔 생각은 일찍이 접어버렸다. 


대화는 두서없이 이어져 나가면서 서로의 성격을 흘끔거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에서 잠깐씩 경치를 구경하는 것과 비슷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았다. 엔진에는 역추진력이 걸려있었다. 비행기는 지상 이동으로 터미널로 향하더니, 혼잡한 입국 관리실에 짐을 토해냈다. 짐을 챙겨서 세관을 통화했을 때 나는 이미 클로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중학교 시절, 그 가슴 뿌듯한 감정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겠다. 그가 나에게 살며시 들어오는 순간, 여기서 헤어 나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달까. 같은 반이 된 그와 교실 짝이 되고 음악실, 체육 시간에도 짝이 되는 그 우연에 벅찬 가슴을 안고 어딘가로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그와의 교집합을 곱씹어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하던 나의 어린 짝사랑, 그때의 그 감정과 화자가 클로이에게 느끼는 감정과 참 닮아있었다. 


나는 그를 무작정 좋아했다.


그에게는 내가 미칠 듯이 빠져들만한 그 어떤 특출 난 점이 없었고, 뛰어나도록 잘생겼다거나 뭐 어떤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 아주 평범한 남자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에게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미친 짓을 스스럼없이 해 보였다. 


"그를 왜 좋아하니?"

글쎄. 사랑이라는 주관적인 감정 앞에 뚜렷하고 객관적인 이유가 있을 리가 있나.


짝사랑의 감정이 다시금 떠올라 참 따듯하고 아련한 기억에 잃어버린 구슬을 찾아낸 듯 괜스레 신났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겪으며 들었던 감정과 그때의 기분, 바래고 희미해진 탓에 미화된 나만의 그 모든 기억들을 드 보통이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왜 나를 좋아할까? 지금도 바로 이 순간에도 나를 사랑하는 게 맞을까?" 


나는 보그 잡지에 나오는 슈퍼모델처럼 아름답지도 않은데, 세상 도처에 충분히 아름답고 멋진 여자가 널렸는데 하필 왜 나를 좋아할까 싶은 의문은 주로 새벽 때에 들이닥친다. 그는 아까 데이트하면서 나에게 "넌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워."라는 고백을 했는데 말이다.

그는 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사랑이 먼저일까, 아름다움이 먼저일까? ... 나의 상상력은 클로이의 치아 사이의 틈에서 노는 것을 즐겼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에 창조적 재배치가 가능했다. 클로이의 얼굴은 그 모호함 때문에, 오리와 토끼가 둘 다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그림과 비슷했다.... <보그> 편집자라면 클로이의 사진을 자기 잡지에 넣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내 여자 친구에게서 독특한 면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확인해줄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영혼으로 그녀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그에게 나의 얼굴은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그림과 같이 보이기 때문에 칼같이 판단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 애매함들 사이로 스며드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은 아름다운 감정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가 아무리 아름답지 않다 한들 사랑하는 이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사랑의 콩깍지를 두고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그림을 떠올리다니.

하긴, 생각해보니 헤어진 그 남자는 내가 느낀 바처럼 그렇게 잘생기지도, 몸매가 좋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이걸 두고 내 친구들은 이별을 맞이한 나에게 "너 콩깍지 씐 거였어"라고 알려줬었다.


화자는 왜 어떤 점 때문에 사랑을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와중에 서 정형화되지 않은 채 그저 타오를 뿐인 사랑의 절정 꼭대기에서, 마음 깊이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채워지지 않을 그 행복한 갈증을 느꼈다. 그 어떤 사랑과 관련된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여도 충족되지 않을 것 같은 그 느낌.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 것 같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사랑한다는 의미가 다 전해지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이라는 표현이 너무 진부한 탓에 그에게 내가 축축이 적셔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느낌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다.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사랑은, 적어도 클로이와 나에게는, 이제 단순히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 지름 몇 밀리미터의 달콤하고 말캉한 물체였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화자는 클로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마시멜로"한다고 고백한다. 언어가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부르짖는 "사랑"이란 단어는 닳고 닳았기 때문에 클로이에게 완전히 닿을 수 없다는 생각은 사랑의 절정에서 감정대로 끌려다니던 과거에 내가 느꼈던 그 생각과 참 닮아있었다.


이런 별명들의 중요성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이르게 된 어떤 특정한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애초에 서로의 이름을 다시 짓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있다. 내가 그녀를 티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경리부의 로이가 그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그녀가 머리를 빗을 때 내는 독특한 소리]을 나는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클로이는 그녀의 시민적 신분에 속해 있고, 티지는 일반적인 사회적 영역을 넘어, 더 은밀하고 독특한 사랑의 정치를 넘어서, 좀 더 유동적이고 좀 더 독특한 사랑의 우리에 놓여 있었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가끔 나는 닭살 돋도록 상대방에게 애칭을 붙여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애칭을 붙여주고 싶지만 문득 거추장스럽고, 안 붙이자니 괜히 애매한 그 느낌은 왜 드는 것일까. 평소 이름의 의미에 대하여 깊게 생각한 적이 없어서 그랬던 탓인 듯했다. 


나만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을 전부 포괄하여 부르고자 붙이는 것이 바로 애칭.

둘 만의 것을 공유하려는 욕구로부터 나온 것. 


드 보통보다 상대적으로 날카롭고 순수한 감수성이 부족한 나는 이런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내가 무딘 건가 싶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사랑만 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도 싸우는 걸까? 딱히 상대방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는 그에게 가끔 모진 생채기를 내버리는 걸까? 

나름대로 머리가 컸다고 느끼는 현재까지도 왜 나는 쓸데없는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어린아이의 투정을 왜 자꾸만 부리곤 한다. 나이를 얼마나 먹든, 얼마나 많은 경험을 겪었든 패턴이 되어 반복되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 같다.


우리가 서로 소리 지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생존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서로 파괴하려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내가 클로이와 함께 얻은 행복은 깊은 철학적 숙고 뒤에 나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 성취의 결과도 아니었다. 단지 신의 기적적 개입에 의하여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런 행복은 위험했다. 자족적인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클로이와 나의 관계는 마치 신들이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신의 보복에 대한 원시적인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 신비한 '나'는 가장 약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지점에 자리 잡은 자아로 간주된다. 내가 너에게 약해 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하니?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하니?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나의 그 모든 쓸모없는 행동들은 어린아이의 투정이 맞다. 상대를 굳이 질투하지 않고 속박하지 않으며 "난 쿨하니까 그의 사랑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좋아"라고 외치면서도 늘 진정한 사랑에 대한 확답을 듣고 싶어 했던 유치한 투정. 나를 이루는 면모 중 가장 약하고, 보잘것없는 모습까지도 사랑하는가- 나의 단점에 대한 두려움과 그 단점 때문에 그를 놓칠 수 있다는 막연함이 뭉쳐져 만들어 낸 결과다. -내 소망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나'만 남았다고 해도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녀의 짝이 자신의 목에 입을 맞추는 방식,..., 농담을 하는 방식에 유혹당했던 여자는 바로 이 점들 때문에 짜증을 낸다. 마치 사랑의 끝은 그 시작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랑의 붕괴의 요소들은 그 창조의 요소들 안에서 이미 괴괴하게 전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당황해서 황금시대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하지 않고 있는데 과거에는 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것은 지금 그렇게 화를 돋우는 것이 바로 과거의 자아이며, 따라서 나는 해체를 향하는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일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상대의 마음이 먼저 식어버려 이별을 맞이하기 전까지 내가 느꼈던 그 일련의 감정들이 추억이라는 빛에 바랜 모습으로 잠잠히 떠올랐다. 잠잠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씁쓸한 뒷맛이 남는 구절을 한 번 더 곱씹었다. 사랑의 시작과 끝은 같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거구나, 막연하게 이해됐다.


세상은 내 행복에 기꺼이 편의를 제공했지만, 이제 클로이가 떠났다고 해서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이슬링턴을 수도 없이 걷고 나서야 이슬링턴이 클로이가 살던 곳일 뿐 아니라, 쇼핑을 하거나 저녁식사를 하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낙타는 시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짐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계속 등에 실린 기억과 사진들을 흔들어 사먹에 떨어뜨려버렸고, 바람이 그것들을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낙타는 점점 더 가벼워져서 나중에는 그 독특한 모습으로 뛰어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침내 현재라고 부르는 조그만 오아시스에서 이 지친 짐승은 나의 나머지를 따라잡게 되었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이별 후 그 막다른 골목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것 같은 감정이 물밀듯 밀려들어오고, 쌓여있는 정만큼 힘든 시간을 견뎌 내고 나면 마침내 전 상대는 추억 속으로 묻혀 들어간다. 그와 걸었던 거리는 쇼핑몰이 많아 구경하기 좋은 곳이었고, 그와 먹은 음식은 내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하나 둘 다시금 깨우치며 그를 지워나간다는 것. 드 보통은 그것을 두고 "낙타"에 비유했는데, 참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드 보통이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낙타 대신 나귀에 비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을 하며 우리는 뼈아픈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상대방-어쩌면 나-를 위해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려고 한다. 지혜를 구하고 그간 배운 경험을 토대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늘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만다. 제삼자의 타당한 훈수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참 내가 바보인 걸 아는데도 왜 현명하지 못하는 걸까. 실패와 실수 없는 사랑은 불가능한 걸까.


지혜과 대립되는 것은 지혜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아는 것에 따라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우리가 현자가 되지는 않는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


그래, 우리는 바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며 생각보다 지혜롭진 않다.


비행기에서 시작된 화자와 클로이의 아주 평범한 사랑 이야기는 비행기에서 끝났다. 그리고 화자는 다른 여자와 다시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 대해 무뎌지고 잊어간다. 아주 평범하고 사랑을 하는 모든 이가 한 번쯤은 생각하고 고민해봤을 것들을 일련의 사건과 이야기로 한꺼번에 풀렸다. 내 나이일 때 써 내려간 이 책은 생각보다 (살짝 치기 어린 면모가 보이긴 하지만) 깊이가 있다. 라이프 모티브, 아메바 등 디테일한 비유와 묘사에 공감했는데, 모두 하나하나 언급하며 다 쓰기 어려워 생략해버렸다.


사랑은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한 종류이며, 관계가 모여 인생의 한 부분을 이루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 인생 부분에 대한 생각까지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만나고, 나누고, 헤어지는 것은 비단 사랑에서만 나타나는 형태가 아닐 테다. 이 책이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위트 있게 풀어내어 사랑을 설명하지만, 동시에 관계 전반에 대한 물음과 나름의 해석을 뽑아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다 그런 맥락일 테다. 드 보통은 책을 통해 성숙한 사랑의 끝이 결혼이라고 결론짓던데, 불타는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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