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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Apr 22. 2018

달콤한 낙선

16개 중 16개 모두 서류 광탈

    '너네 학교는 인서울 4년제라고 쓰고 서잡대라고 읽는거 아니야?'


    홍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처음엔 신촌 어딘가에 있는 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나왔다고 말했던, H커피 매니저가 농땡이 피우다 말고 말했다.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이 저주가 되려 내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참고 웃었다. 누워서 뱉는 침 같다고 생각했다. 자소서를 꾸역꾸역 써내며 막학기를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는 이 와중에 복 나갈 짓을 했다간 영영 정규직과 이별할 듯 싶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써보지 그래?'


    자기도 말이 심했다 싶었는지, 가까이 다가와 짝다리 짚으며 거만한 어투로 말했다. 내 상상으로는 '안 썼겠어요?' '떨어졌어?' '붙었겠어요?' 라는 대화가 전투적으로 오고 갔지만, '하하, 써야죠 이제.'라고 또 멍청하게 웃을 뿐이었다. '요새 3점 중반이면 낮은거야. 내 학점이 그래도 꽤 좋았는데. 너는 나이가 많아서 취업이 잘 안될 텐데 그냥 H카페 매니저나 해'라는 둥 헛소리를 반복해대는 그 매니저를 보고 있자니 목 끝으로 '닥쳐주시게!'가 맽혔다. 하고자 하는 말을 순화하고 다듬어서 내뱉었다. 'H커피 매니저가 어때서요? 정규직이잖아요.' 그러자 그 매니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날 측은하게 보는 것 같았다. 그 매니저는 본인 입으로 학점이 2점 대인 것 설파하고 다닌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비둘기 똥을 맞은 기분이었지만 그냥 웃어버렸다.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매스컴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24%라고 떠드는데, 또 신기하게도 붙는 사람들은 턱턱 붙는다. 나만 빼고 붙는 느낌. 네 명 중 한 명은 논다는 것인데, 내가 그 한 명을 맡고 있는 것 뿐이려나 싶다. 이미 취업한 선배들이나 학교 취업팀에게 피드백 받은 바로는 '괜찮은 자소서'라는데, 이메일에는 꿋꿋하게 '불합격' 세 글자가 찍혀 나오고 있다. 열 다섯번 째 불합격 글자를 받은 날은 고추참지와 소주를 먹으며 열 여섯번 째 자소서를 썼다. 물론 아침에 보니까 엉망이어서 뒤집어 엎었지만 아무튼.


    첫 불합격을 받았을 때는 "내가 왜?"라며 어이 없어 했다. 진짜 그 매니저 말대로 학교가 '서잡대'여서 그런가 싶었다. 꿈을 꾸고 이루라더니, 전공과 맞지 않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꿈을 이루려고 쌓았던 그 유관 경력이 있든 말든, 그곳에서 어떤 일을 했든 말든, 대학교 때 경영학과 마케팅 수업을 듣지 않고 교육 하나 이수하지 않았던 것이 발목을 채는 것 같다. 관련 분야 전공자만 모집한다면서 그런 교육 이수 기회조차 안 왔던 걸 뭐 어떡하라고. 아니지, 혹시 토익과 토스 점수가 조금 모자라서일까, YBM 홈페이지에 들어가 12만원을 소비했다. 오픽도 보라는 말에 오픽 책도 빌렸다. 최소한 IH는 받아야 한단다. 결제 창에 카드 번호를 입력하래서 입력하는데, 45xx가 내 학자금 대출금 4500만원을 말하는 것 같았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인가. 인생의 고행을 다 한 승려가 비로소 해탈하는 것처럼 나의 주어진 고행을 충실히 다 해야만 행복을 맛 보는 것인가.




    2017년 12월 31일, 마지막으로 소설을 하나 딱 써보고, 꿈을 빙자한 이런 짓은 좀 그만하자며 문학 공모전에 참가했다. 2017년 마지막 날 23시 59분 59초까지가 제출기한이었다. 한 해와 함께 꿈을 마무리 짓기로 내 자신과 약속하고, 최선을 다해 글을 지었다. 어떤 결과를 받아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쓰고 퇴고했다. 새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겨우 제출을 마감하고 2018년을 맞이 한 그 순간, 눈물이 고였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물밀듯 밀려 들어와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나의 2018년을 눈물로 열어버린 셈이다. 


    결과는 예상했던대로 낙선. 이를 이어 채용 불합격 통지 메일이 도착했지만 열어보지 않았다. 패배의 맛이 그렇게 쓰기만 하던데. 아무리 물을 마셔도 입가의 텁텁함이 가시질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낙선. 글 쓰는 재능이 모자르다는 것을 두 눈으로 목도했다. 글쎄, 속이 시원하다. 납득할 수 있는 사유이기 때문일까. 이 낙선만큼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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