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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소비 중계석 Jul 15. 2023

청소

인생의 지뢰 제거

“야! 거기 밟지 마! 똥강아지가 오줌 싸 놨다! 이 좌식이~!”     


어둡고 고요한 밤. 키우는 반려견은 간혹 배변 실수를 하곤 한다. 그것이 아무리 아끼는 반려견의 것이라고 해도 어질러진 뭔가를 치우는 행위는 내게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잔꾀를 부리며 게으름을 피우며 그 지저분하고 귀찮은 것을 피하며 뜬 눈을 가리고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누가 치우지 않으면 결국 닦아내는데 더 고생스럽고 혹시나 내가 저 녀석의 소변을 밟은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품고 불안한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다. 


 “에잇! 치우고 말지!”     


치우는 행위는 몇 분 걸리지 않는다. 고된 노동력이 드는 것도 아니다. 되려 치우고 나면 불안한 마음 없이 발을 디딜 수 있고 강아지 냄새도 제거되고 조금 더 보태서 나열하자면 깔끔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하기 싫다.      


동물이 사람처럼 한 번 가리킨다고 죽을 때까지 실수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오죽하면 술 취한 사람보고 ‘개 된다.’라고 할까만은) 그 녀석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그 녀석의 뒤치다꺼리는 내 몫인 것이다.     

녀석의 실수를 치우면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도 어쩌면 내 인생에 나 모르게 놓인 저 숨겨진 지뢰 같은 것들을 제거하며 살아가기 위한 것 아닐까?’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끝을 알 수 없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것이고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라는 보호장비로 큰 탈 없이 성인이 되는 20여 년의 인생길을 무사히 지나왔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노화해 가는 과정은 나 스스로 선택하고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 길은 그 누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나에게 주어진 삶, 내가 선택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 내게만 닥치는 변수를 알 수 없는 돌발상황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하고 불현듯 벌어지는 돌발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예측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보통 좁은 시야를 빗대어 말할 때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유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의 좁은 시야는 밥공기? 종제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자기가 무슨 무소의 뿔인 줄 알고 그저 들이받을 줄만 알았지 주위를 살피고 가능성을 알아보고 내게 맞는 것인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좋아하는 것이지, 하고 싶은 것인지, 가장 중요한 내가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할 줄 몰랐다. 그저 들이받았다. 


공부를 하며 급한 성격은 조금 차분해졌다. 오죽하면 MBTI 결과가 바뀌었을까? 대단한 일이다. 또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이것저것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것을 접해보기는 했지만, 그것은 낭비라고 할 수 없다. 나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을 기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판단력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하고 계획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이런 판단, 선택,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무소의 뿔처럼 단단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스스로에 대한 불만과 세상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뚫어지지 않는 벽을 향에 달려들어 들이받고만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게 필요하지 않은 고민은 제거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치우며 어쩌면 앞으로도 지뢰밭이었을 그 길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재배치해가며 내 길로 만들어 가고 있다.      


청소하고 세탁하고 설거지해야 할 것들은 치우고 돌아서면 쌓이는 것들이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은 말이다. 결국, 다시 사용하기 위해 나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 공부는 내가 살기 위해 평생 해야 하는 청소이고, 빨래이고 설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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