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서여행가 Sep 25. 2024

여행에서 배운 삶의 이야기

미지의 세계로 디딘 첫 걸음, 첫 배낭여행


No. 1

오지 여행의 시작은 유럽 여행 

나의 첫 여행지는 서유럽에 속하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5개국이었다. 

"오지 여행을 좋아했다면서 웬 유럽여행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이 있다. 나에게는 이 여행이 인생 여행의 시작이었다. 

사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던 내가 이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선견지명이 있는 아빠의 '강요 같은 권장' 덕택이었다. 

요즘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취업을 준비한다지만 '라떼'는 대학 1학년은 암묵적으로 노는 시기였다. 

"대학 들어오느라 고생했으니 첫 여름방학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놀아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날 아빠가 나를 불렀다. 


나는 IMF 시기에 대학을 들어갔었다. IMF 전까지 대한민국은 경제 호황이어서 달러가 800원에서 900원을  횡보했고 많은 대학생들은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환율이 1800원대까지 치솟자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시기(당시 환율 1400원 정도) 갑자기 아빠가 나를 불러서 해외여행을 가라고 했던거다. 

'아니, 여유가 없다고 서울도 가지 마라고 해놓고 웬 유럽여행?'이야 싶었다. 

"첫째야, 여름방학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가지 않을래?"

"네? 아빠?? 저는 여름방학 때 여행 갈 생각 없는데요?"

"음.., 내가 언제까지 안정된 직업(당시 아빠는 대기업에 근무 중이었다)이 있을지 모르겠어."

"네???"

"아빠는 네 첫 여행을 이번 방학 때 갔으면 좋겠어. 여행을 통해 세상을 많이 보고 배우면 좋겠어."

"아빠, 너무 급작스러운데요? 저 다음에 가면 안되요?" 

"이번에 가면 아빠가 특별히 여행비의 반을 대주려고 해. 경비의 반을 지원해 주는 건 이번뿐이야." 

...... (정적)

 "생각해 보고 추진해 볼게요."


이날의 대화의 전부를 기억 못 하지만, 핵심은 이거였다. 

1. 아빠가 이제 곧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려고 한다. 

2. 안정적인 직업에 있을 때 너의 첫 여행을 지원해 주고 싶다. 

3. 하지만 기회는 딱 한번 뿐이다. 빠르게 결정해라. 


아빠는 허튼 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그럼 기회는 한 번뿐이니 잡아야 하는 거였다. 

경비의 반은 어떻게 갚는 거지?라고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까 말씀드리면,  당시 아빠의 가정내정책은 '장학금을 받으면 돌려준다.'였고 장학금을 받아 갚으라는 말씀이셨다. 

자 그럼은  빠르게 이야기를 끝내야 했다. 

배낭여행(What)의 목적지(Where)와 시기(When)는 정해져 있었기에 Who와 How를 준비할 차례였다. 



대학생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에서 만들었던 유럽 캠핑 여행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에게 등 떠밀려 준비한 첫 유럽 여행이 캠핑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부산에는 대학생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인 블루 여행사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니 교통편과 숙소만 예약해 주는 '호스텔 팩'을 가려고 연락을 했다가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여행 타입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덥석 '유럽 캠핑 여행'을 선택했다. 

국내에서 아빠가 캠핑을 가자고 하면 기겁을 하던 나였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아마 '새로 나온'에 혹 했던 것 같다. 


생각 없이 신청했지만 내가 선택한 여행은 23박 24일간 서유럽 5개국의 캠핑장을 베이스로 여행 다니는 실험정신이 뛰어난 패키지로, 처음에 스위스로 들어가 렌트를 해서 거의 매일 500Km씩 이동하며 여행하는 투어였다. 

여행은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베스트 프렌드이고, 지금은 초등학교 선생님인 H를 꼬셔 함께 캠핑 여행을 신청했는데 한 차로 이동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 신청자는 우리 둘과 부산대를 다니는 오빠 1명이었고 가이드 겸 운전자는 당시 원광대를 다니던 복학생 오빠였다. 


"매일 500km를 운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밥까지 해먹이고, 가이드까지 하라고?"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당시 가이드 오빠에게 정말 미안한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라면 절대 못했을 것 같다. 

결국 운전자 겸 가이드에겐 혹독했던 이 프로그램은 이후 모든 여행사에서 한 번도 없는 실험적 프로그램으로 끝나버렸다. 


유럽 캠핑 여행을 다시 한번 가고 싶다

다시 한번 나는 운이 참 좋다 

첫 여행은 보통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나의 첫 여행은 자연에 푹 빠지는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도 캠핑이 대세다. 캠핑템의 발전으로 야외에서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25년 전 우리나라는 캠핑장이라곤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캠핑이라고 하면 노지 캠핑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럽은 정말 별천지였다. 

25년 전에도 캠핑 자리가 다 있어서 5-6만 원짜리 여름 텐트와 침낭만 가져갔을 뿐이었는데 전혀 불편함 없이 숙박이 가능했다. 전기도 쓸 수 있었고, 대부분 세척과 식사 준비가 가능한 별동이 있었다. 

파리 인근의 캠핑장에는 제법 근사한 펍도 들어와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노인슈반슈테인성이 보이던 아름다운 호수 옆 캠핑장, 별이 쏟아지던 오스트리아의 캠핑장, 융프라호 자연 폭포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캠핑장, 독일의 이름 모를 성 근처의 캠핑장 등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몰랐던 나였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리운 추억이다. 


유럽 여행이 다음 여행으로 이어진 까닭

첫 여행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 외에 배운 것은 여행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정해야 한다는 거였다. 

가이드 오빠의 권고로 우리는 일정에서 미술관들을 살짝 걷어내고 현지 시장과 대학을 방문했다. 

갓 대학생이 되었던 나는, 융프라호 자연 폭포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맥주 한 캔을 따며 "그래, 여행은 이 맛이지!"라고 이야기한다든가, "그 지역의 시장과 대학은 꼭 방문해야 해" 등의 말을 100%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의 경험들은 이후 나의 여행과 취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 첫 유럽 여행이 여행이 끝날 즈음, "여행을 계속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유럽 여행을 다시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고, 유럽보다는 좀 더 역동적인 곳을 가고 싶다는 바람이 컸기 때문에 아시아를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돈을 모아 2학년 겨울 방학 때 태국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친구 H와도 여러 번 그때 이야기했다. 

"우리가 별자리를 공부하고 갔더라면,...", "우리가 그때 미리 공부하고 갔더라면... 더 많이 즐겼을 건데."라며 말이다.  지나고 보면 늘 아쉬운 점이 많다. 

하지만 후회해서 뭐 하리...

덕분에 늘 여행 전에는 대략적이라도 꼭 공부를 한다. 어디를 갈 것인지 보다는 그 나라, 수도, 사람들의 모습 등에 대해 말이다. 

아빠의 배려 섞인 강요로 시작한 여행으로 성격과 인생의 행보가 많이 바뀌었다.

아빠가 그때 여행을 나에게 권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다시 생각해도 그때 아빠가 이야기할 때 여행은 참 잘 간 것 같다. 


나에게 하늘이었던 아빠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 뭐가 그리 급한지 투병도 별로 하지 않으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물론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고 계속해서 여행을 이어나갔지만 만약 여행의 시작이 늦어진 상태에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는 상황이 왔다면 쉽게 엄두를 못 냈을 것 같다. 

선견지명으로 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셨던 아빠,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유럽 여행은 결국 나를 새로운 여행,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해 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