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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여행가 Sep 25. 2024

처음 혼자 떠난 한 달간의 태국 여행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진 않아


No.2

처음 떠난 혼자만의 여행, 태국과 말레이시아

지금까지 총 33개국을 여행 다녔다. 그중 태국은 내가 좋아하는 국가로 횟수로 따지면 6번 이상 방문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태국으로 떠났던 1999년도를 기록해 보려 한다. 

대학교 1학년, 나의 첫 여행은 유럽여행이었지만 2학년 겨울 방학에 간 두 번째 여행부터는 대부분 아시아를 여행했다. 

이렇게 아시아로 방향을 턴하게 된 이유는 첫 번째는 아시아가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느껴져서였고, 두 번째는 대학생 신분으로 여행비를 마련하기가 아시아가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이 당시 나는 한 달에 비행기와 숙박비, 여행경비를 모두 포함해서 100만 원 정도로 경비를 잡았는데 여행경비는 대부분 장학금과 추가 아르바이트를 통해 마련했다. 


여행 루트는 방콕, 치앙마이 -빠이 2박 3일 트래킹 - 치앙라이- 핫야이- 말레이시아 페낭- 콰알람푸르 -싱가포르였으나...

애초에 여행 루트는 태국과 말레이반도를 통과해 싱가포르까지 가는 거였다. 그런데 이 여행의 최종 루트는 방콕, 치앙마이- 빠이 트래킹, 치앙라이- 핫야이- 페낭(1일) 찍고- 치앙마이- 방콕 아웃이 되었다. 

이야기를 풀어보자. 

99년 대학교 2학년이던 나는 호기롭게 배낭 하나를 매고 태국으로 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물들지 않은 태국인의 친절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방콕, 아유티야를 여행하고 나이트 버스를 타고 10시간이 걸려 치앙마이로 갔다. 

처음 만났던 치앙마이의 상쾌함이란! 비록 아직도 현실로 이루진 못했지만 이때 나는 처음으로 치앙마이에 윈터 하우스를 가질 거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노마드족에게 치앙마이가 매력적인 도시이지만 당시에도 이미 많은 유럽인들이 치앙마이에 반해 은퇴 후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앙마이 인근의 빠이의 고산족 트래킹이 당시에 유명하다는 것을 <론니플래닛>을 보고 알게 되어 빠이에서 트래킹을 가기도 했다 


태국 가족을 만나다

치앙마이에서 여행을 하고 치앙라이로 넘어갔다. 치앙라이는 치앙마이보다는 도시 느낌이 강한 곳이어서 크게 매력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숙소 근처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던 태국 대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바로 키티야 언니였다.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차, 나는 키티야 집에 초대를 받았다. 

이렇게 만난 키티야 언니, 수마차 오빠, 그리고 태국 엄마, 아빠 ...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너무 대견하고 신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초대를 했다고 하셨는데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에게 무한 애정을 주시고 아껴 주신 분들이었다. 

치앙라이에 있는 내내 키티야 언니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고, 인근 관광지와 나이트 마켓을 함께 가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치앙라이를 떠나 페낭으로 떠나다.

하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남은 2주간의 일정을 보내기 위해 아쉽지만 핫야이로 향했다. 

지금 찾아보니 방콕-핫야이 소요 시간이 버스로 13시간 반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방콕 카오산로드에서 미니버스로 16시간이 걸렸다. 지금이라면 이런 일정을 잡지 않을 텐데... 그때는 젊었나 보다. 나의 일정은 이동만 30시간이 걸리는 고생길이었다.

치앙라이 -(버스로 12시간) - (방콕) -(미니버스로 16시간)- (핫야이) - (말레이시아 국경 넘고, 페리로 이동 토털 4시간 이상) -페낭, 이렇게 총 30여 시간을 들여 페낭으로 갈 수 있었다. 

특히나 미니버스 탑승이 압권이었다. 다국적 사람들로 이루어진 승객들은 서로 꽉 끼여 16시간을 보냈으니 녹초가 안되는 게 이상했다. 이렇게 힘들게 해서 페낭에 저녁에 도착했는데, 나는 바로 다음날 새벽 페낭을 빠져나와 다시 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왜였을까?


미니버스에서 만난 아프리카 흑인의 구애

지금 생각하면 그때 화를 내거나 강하게 싫다고 이야기했으면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당시 순진한 대학교 2학년 여학생은 그러지 못했다. 

좁은 미니버스에서 살결을 부딪히며 16시간을 달려 방콕에서 핫야이로 그리고 핫야이에서 페낭으로 넘어올 때, 나를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던가 보다. 

페낭으로 가는 페리에서 그는 나에게 아는 체를 하고, 심지어 내가 찜했던 숙소로 향했다. 

그는 아프리카 북부, 케냐 출신 흑인이었다. 학창 시절에 부시맨이나 영화에서 봤지 아프리카 흑인을 본 적이 없었는데 케냐나 북부 지방 사람들은 남부와 다르게 키가 엄청 크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190은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사람이 그날 저녁 나에게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필요하면 옷도 사주고 뭐도 사준단다. 아니 왜??? 

너무 무서웠다. 싫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 큰 덩치를 보면서 그러지 못했다. 

머리를 쥐어짜서 그에게 한 이야기는 "지금 너무 피곤하니 내일 보자."는 것이었다. 돌려보내는 것도 힘들었는데 혹시나 문을 두드릴까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계속 생각을 했다. 

"이놈의 말레이시아 정말 안 맞나 보다. 페낭 좋다더니 거짓말이네. 진짜 거지 같아." 

태국의 따뜻함, 태국 가족의 사랑 어린 애정을 그리웠다. 


다시 태국, 치앙라이로!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미친 짓을 다시 감행했다. 

다시 go back! back to 태국, back to 치앙라이를 감행한 거다. 

그에게 들킬까 살금살금 걸어 나와 늦은 밤 체크아웃을 하겠다고 게스트하우스에는 이야기하고 정산을 미리 완료했다. 그리고 새벽 5시 반 첫 페리를 타기 위해 나서서 택시를 타고 페리 승강장으로 가서 몸을 실었다. 

페낭에서 다시 핫야이로 핫야이에서 기차를 타고 방콕으로 그리고 나이트 버스를 타고 다시 30시간이 걸려 치앙라이로 갔다. 지금 생각해도 참 미친 짓이다. 그 흑인이 뭐 나한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덕분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갈 수 없었고, 이 두 나라를 아직까지도 제대로 여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고 했던가? 덕분에 나는 제2의 가족을 만나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남은 여행 기간 내내 치앙라이의 키티야 집에 머물렀다. 키티야 네는 방콕의 중산층이었는데, 중국계인 아버지와 태국계인 엄마를 둔 키티야 언니는 명문대 졸업생이었고, 수마차 오빠는 치앙라이 대학 연구원으로 당시부터 근무 중이었다. 

남은 1주일, 오빠 친구 집도 가고 오빠네 대학도 가보고 언니랑 장도 보러 가고 이곳저곳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태국 가족과 만남은 한 번으로 그치진 않았다. 1999년에 이어 2000년, 2001년 3년 연속으로 태국 가족을 방문하고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언니와 오빠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당시만 해도 SNS가 활발하지 않을 때라 연락을 이어가기 힘들었던 것 같다. 우리 친엄마 친아빠만큼 아니 더 사랑을 주신 태국 엄마, 아빠가 아직 살아계신지 궁금하고, 언니와 오빠 소식도 궁금하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들딸 놓고 잘 살고 있겠지? 


1999년의 겨울...

나 홀로 여행의 시작이었던 그 시간을, 내 삶의 또 다른 가족이었던 태국 가족을 다시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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