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9
고시키즈카 고훈
고베시의 고가도로를 타고 고시키즈카 고훈으로 향했다. 1995년 1월 17일, 나의 열번째 생일에 여기 효고현 고베시의 많은 고가도로들이 지진에 의해 쓰러지고 무너졌다. 하지만 이들은 쓰러진 고가를 세우고 또 다시 세운다. 고시키즈카 고훈도 아마 그러한 정신으로 세웠을 거라 생각한다. 무너지면 세우고 또 세우고. 고시키즈카 고훈은 좁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길을 다녀야 하니 일본 자동차들이 작은 이유를 알겠다. 고시키즈카 고훈은 200미터 길이의 열쇠 구멍 모양의 아주 큰 무덤이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보면 마치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은 열쇠 구멍이 높은 하늘에서 보인다.
토리소바
또 배가 고픈 우리는 오뤼자상의 안내에 따라 고베시의 토리소바 맛집, 자긴으로 갔다. 이제 도시에 들어왔기 때문에 화산 보러다니던 규슈와는 다르게 주차를 걱정해야 한다. 구석 구석 조그마한 코인 주차장이 어디에나 있지만 손바닥만해서 주차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식당 근처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토리소바 집으로가 치케또를 끊고 줄을 섰다. 20분을 기다려야한다는 직원의 말에 스가와라상은 조금 언짢아했지만 결국 식당으로 들어가 토리소바의 국물을 한입 먹은 후, 그는 기다릴만하다고 했다. 오뤼자상은 그릇을 다 비웠고 장수왕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빨리 식사를 마쳤다.
고베 오사카 한신 고속도로
일본의 고속도로 톨비가 비싸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시간이 더 비싸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고속도로를 탔다. 고베에서 오사카로 가는 한신 고속도로는 공업화된 고베와 오사카를 한눈에 보여주는 멋진 루트이다. 수많은 항구와 커다란 컨테이너들,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랜스포머 트럭들이 미세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과 바다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미치자네는 톨비를 더 줘도 전혀 아깝지 않은 루트였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사카의 사카이시로 들어갔다.
사카이시 박물관/다이센 고훈
다이센 고훈을 보기 전, 맞은 편에 있는 사카이시 박물관으로 갔다. 다이센 고훈을 포함하여 모즈-후루이치 고훈군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해놓았다. 인물들의 모습 중에서 반가운 사람을 발견했다. 행기 스님, 바로 살아있는 보살이라던 쿄우키 사마. 난생 처음 온 박물관에서 다시 만나는 반가움을 느끼는 신기한 경험을 해본다.
오사카 치카츠 아스카 박물관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거대한 작품을 보러 시 외곽으로 향했다. 치카츠 아스카, 가까운 아스카 박물관이다. 겉모습부터 뭔가 다르다. 구멍이 송송 뚫린 밝은 회색의 콩크리트 육면체가 무심하게 계단 위에 놓여있었다. 그 유명한 인스타 갬성이 진즉에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가까운 아스카 박물관은 이 자체만으로 현대식 고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드라마에서만 본 쇼토쿠 타이지를 만날 수 있었다. 아스카 시대의 유물들과 고훈 안에서 발견된 유적들을 깔끔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커다란 고훈군을 미니어처로 만든 전시는 정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새끼 손톱보다 더 작은 사람의 모습을 너무나 디테일하게 만들었기 때문. 한명 한명 더 자세히 보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밖으로 나가는 출구 앞에는 말의 뼈가 전시되어 있었다. 드디어 말이다!
소가노 우마코 석무대
쇼토쿠 타이지, 그러니까 성덕태자는 마구간 옆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렸을땐 우마야도 미코였다. 마굿간 왕자님이라니… 처음 들었을 땐 내가 만약 미코라면 엄청 기분나빴을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대 최고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소가노 우마코도 역시 마자, 즉 말의 아들이었다. 아니 도대체 말이 뭐길래..? 말은 대단한 것이었다. 페라리고 롤스로이스였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대단한 것. 말을 이름으로 짓는다는 것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말의 아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석무대로 갔다. 스가와라상의 말대로 풀밭에 큰 돌덩이 두개만 덩그러니 있었다. 하지만 그 돌덩이 안으로 들어가보니 소가노 우마코를 위해 만든 그 돌무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말의 아들은 지금까지도 대단한 존재다.
아스카데라
아스카데라는 소가노가 만든 절이다. 소가노는 백제 사람들을 일본으로 데려와 당시 최첨단 신문물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드라마 속 소가노 우마코는 백제 옷을 입고 백제 사람들과 백제말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백제를 뜻하는 구다라는 구다라나이라는 말로 지금의 일본 문화 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아스카를 구다라로 만들고 싶었다.
이제 내일은 후지와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