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보라색

반 고흐, 붓꽃

by 끌로이


1. 한 번도 본 적 없던 보라색


반 고흐의 <붓꽃 Irises>을 처음 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방학 때 엄마를 따라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외국 서적 코너에서 우연히 반 고흐의 명화집을 펼쳐 들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그림이 바로 <붓꽃 Irises>이었다. 원작도 아닌,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었지만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의 장면이 생생하다. 조용한 서점 한켠, 나지막이 흘러나오던 음악, 종이 냄새, 그리고 그 페이지 위의 색.


나를 붙잡은 건 그림 속 붓꽃의 강렬한 보라색이었다.
일상에서 본 적 없는 색이었다. 훨씬 더 선명했고, 마치 스스로 빛나는 것 같았다. 그 색엔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와 생명감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페이지를 뚫고 서점바닥에 뿌리를 내릴 것만 같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고흐의 그림 대부분이 그런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색, 붓의 속도, 질감 — 모든 것이 감정의 언어였다. 그게 바로 반 고흐가 다른 화가들과 다른 이유일 것이다.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있던 나를 보더니 엄마는 결국 그 명화집을 사주셨다. 아마 “얘 이거 안 사주면 여기서 못 나가겠다” 하고 생각했을 거다. 그렇게 고흐의 명화집은 서점 한 켠 조용한 코너에서 우리 집으로 탈출하게 되었다.

그날 보라색 붓꽃은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림 여행으로 응답했다.

반 고흐, 붓꽃 1889




2. 반 고흐의 〈붓꽃 Irises〉이 궁금해졌다


그림을 잘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반 고흐’(1853- 1890)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명화집을 들고 집에 돌아온 어린 나 역시, 그의 이름 외에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노란색 〈해바라기〉와 스스로 귀를 자른 일화 정도가 전부였다. 그날 이후 나는 고흐의 삶과 작품이 궁금해졌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한때는 선교사가 되고자 했지만 목회자로 인정받지못했고 대신 그림을 선택했다. 정신적 고통이 많았던 그에게 그림은 곧 삶이자, 아픔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계획한 길이 틀어져도 결국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또 다른 길이 열린다. 나도 아직 그 길 위를 걷는 중인 것 같다. 언젠간 새로운길이 열리길 믿으면서. (아니면… 그냥 내가 새 길을 낼 차례인지도 모른다)

〈붓꽃 Irises〉는 고흐가 남프랑스 생레미의 정신병원에머물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스스로 병원에 들어갈 만큼 힘들었지만, 병원 정원에서 피어난 붓꽃을 바라보며 붓을 들었다. 자연 속에서 위안을 찾던 그에게, 보라색 붓꽃들은 어쩌면 이렇게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인생은 그래도 아름다워.”


그림을 자세히 보면 붓꽃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보라색 꽃잎, 초록색 잎사귀, 붉은 흙 - 색의 대비는 강렬하다. 생명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왼쪽 구석에 흰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강렬한 보라색 속에 조용히 서 있는 그 흰꽃은 처음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보이면,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남는다. 미술사에서는 이 흰꽃을 고흐 자신으로 해석하곤 한다.

지금은 가장 유명한 화가이지만, 생전에는 세상이 그의그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외면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색을 포기하지 않았다. 흰꽃은 어쩌면 그런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외로움 속에서도 피어나던 꽃.

그의 꽃은 지금도 조용히 피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3. 17년 만의 재회


1월의 LA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맑았다.


공기는 잘 다려진 셔츠처럼 구김 없이 선명하고 맑았다. LA는 여러 번 왔지만, 게티센터는 처음이었다. ‘언젠가 가겠지’ 하며 미뤄두었던 곳. 교보문고 한 켠에서 그 그림을 처음 보던 날로부터 꼬박 17년이 지나서야 오게 되었다.


게티센터는 LA 서쪽 브렌트우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하얀 트램을 타고 천천히 언덕을 오르면 도시는 점점 멀어지고,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처럼 느껴졌다. 트램 문이 열리고, 나는 천천히 미술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물결처럼 펼쳐진 초록 잔디, 그 위에 놓인 하얀 게티센터의 건물.


모든 색이 선명했다. 고흐의 그림처럼.


나는 곧장 〈붓꽃〉이 전시된 갤러리의 위치를 확인했다. 걸음은 어느새 빨라지고 있었다.

누가 보면 미술관이 아니라 백화점 오픈런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 그림이 있었다.


연세가 있는 도슨트 선생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고, 나는 사람들 뒤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17년 동안 책에서, 인터넷에서 수없이 보았던 그림.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상상했던 보라색보다 더 부드러웠다. 명화집 속에서처럼 강렬하게 터져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잔잔했고, 소박했다. 그 순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천에 널려 있는 꽃에게도 의미와 생명을 부여해 그려온 사람, 반 고흐. 그의 마음이 붓터치 사이로 조용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림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너도 충분히 소중해.
있는 그대로 피어나는 모습이, 이미 충분히 아름다워.”


그림이 나에게 건네려 했던 말을 나는 17년 만에 이해했다. <붓꽃〉을 마음속에 천천히 담아두고, 게티센터를 천천히 걸었다. 오늘의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는지 처음과 달리 발걸음이 더 여유로웠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LA를 바라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고흐가 이곳에 왔다면 어떤 색으로, 어떤 풍경을 그렸을까…?


게티 센터로 올라가는 트램




17년 만에 직접 본 반 고흐의 <붓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