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늘 누군가를 바라보는 이유
“앞집 철수는 또 100점을 맞았다더라.”
90년대생이라면 어릴 적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우리는 비교라는 말의 뜻을 배우기도 전에, 그 감정을 몸으로 먼저 익혔다. 앞집 철수는 늘 뭔가를 잘했고, 옆집 미희는 대회에서 상을 탔고, 사촌은 로스쿨에 갔다. 우리의 성적표는 그들보다 항상 모자라야 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방은 돼지 우리와 비견되었으며, 밥을 먹는 모습은 우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 비교의 역사는 철수나 미희에서 시작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뒷집 개똥이가 모은 땔감의 양을 부러워하던 이웃, 더 많은 사냥감을 잡아온 이복형제를 경계하던 원시 시대의 인간처럼, 우리는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비교하고 있었을지도. 인간은 생존을 위해 주변을 살피고, 때로는 부러워하고, 때로는 그 부러움에 등을 돌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철수와 개똥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친구의 스펙, 동기의 연봉, SNS에 올라온 여행 사진과 자격증 게시물이라는 더 좋은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켜기만 하면 비교 대상이라는 피가 실시간으로 수혈되고, 알고리즘이라는 돋보기로 바라본 세상은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며칠 전엔 입사 동기가 내가 가고 싶어 하던 회사로 이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의 입은 그를 축하했지만, 가슴은 그러지 못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반대로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대단한 시기심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허탈감. 내가 뒤쳐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그렇게 뇌리에 남아 나의 하루를 망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 비교를 ‘현실 검증’이 아닌 ‘자존감 채점표’로 사용할 때 시작된다. 비교는 원래 방향을 잡는 데 쓰여야 할 나침반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속도를 재는 스톱워치로 변해버렸다. 나는 왜 저만큼 못 갔을까, 왜 저 사람은 나보다 빠를까? 인생은 본래 방향을 찾아가는 긴 여정인데, 우리는 그것을 눈앞의 결승선을 향해 달려야 하는 레이스처럼 착각하고 만다.
비교는 인간 본성의 일부일지 모른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생존을 위해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한다고 말한다. 내가 부족하면 위험에 처하고, 내가 우위에 있으면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는 고대의 본능이 지금까지도 작동 중인 셈이다. 문제는 그 비교의 범위가 이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가족, 친구, 동네 사람들만 비교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셀 수 없는 얼굴들과 그들의 삶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물론, 비교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떤 비교는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며,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을 보며 나도 한 발짝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비교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비교가 내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할 때, 문제는 달라진다. “나는 저 사람만 못하니 실패한 인생이다.” 그런 결론은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무리한 속도로 앞서가려다 결국 결승선에 닿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다.
우리는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눕게 되는 그 순간까지 철수의 아들이 마련해준 1인실 침대와 내가 누워 있는 6인실 병상을 비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나는 어제보다 오늘 얼마나 성장했는가?”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나 가까이 가고 있는가?” 남과의 비교가 아닌, 나 자신과의 비교.
당신은 오늘도 스스로를 저울에 올려 놓고 있는가? 그 비교는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가, 아니면 계속 제자리에 멈춰 서게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