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선택만 달랐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문장을 마음속에서 되뇌어 본다. 선택의 순간은 늘 짧았고, 그 이후의 후회는 유난히 길었다. 우리는 이미 지나온 갈림길을 떠올리며, 선택하지 않은 쪽의 삶을 상상한다. 그 길은 언제나 더 빛나 보인다. 더 성공했을 것 같고, 더 행복했을 것 같고, 적어도 지금처럼 애매하진 않았을 것 같다.
어릴 적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학교를 가는 것, 시험을 보는 것, 정해진 순서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선택했다’기보다 ‘따라갔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본격적으로 선택이라는 단어를 실감한 건, 오히려 어른이 된 이후였는지도 모른다. 전공을 정할 때, 첫 회사를 고를 때, 이직을 할지 말지 망설일 때. 그때부터 인생은 더 이상 단선적인 트랙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갈림길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선택 그 자체보다, 선택하지 않은 삶이 계속해서 우리를 부른다는 점이다. 지금의 내가 아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존재했을지도 모를 ‘또 다른 나’. 그는 해외에 나가 있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더 자유롭고, 더 용감하고, 더 나답게 살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 상상의 인물에게 묘한 질투와 애정을 동시에 느낀다.
며칠 전,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는 내가 한때 고민하던 길로 이미 몇 년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그 길의 현실을 이야기해 주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단점보다 “그래도 너는 그 선택을 했잖아”라는 생각에 더 오래 붙잡혀 있었다. 선택의 결과보다,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러웠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왔을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유보한 채 여기까지 흘러온 건 아닐까.
선택하지 않은 인생에 대한 후회는 종종 ‘용기의 부재’처럼 느껴진다. 그때 한 발짝만 더 내디뎠더라면, 한 번만 더 버텼더라면, 혹은 과감하게 포기했더라면 달라졌을 미래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우리는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때의 조건 안에서 할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 시점의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더 불안했고, 가진 정보도,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도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후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후회는 사실 선택의 오류가 아니라, 현재에 대한 불만이 과거로 투사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만족스럽다면, 과거의 선택은 대개 “그럴 수밖에 없었다”로 정리된다. 하지만 지금이 흔들릴수록, 우리는 과거의 갈림길로 돌아가 다른 가능성을 붙잡으려 한다. 선택하지 않은 인생은 그렇게, 현재의 불안을 위로하는 도피처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미 한 번 선택하지 않은 인생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선택을 미루고 있다. 언젠가 더 준비되면, 조금만 더 안정되면, 상황이 나아지면 하겠다는 말로 현재를 유예한다. 그리고 훗날의 우리는 다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때 왜 선택하지 않았을까.”
선택하지 않은 인생을 완전히 잊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인생을 미화하지 않는 법은 배울 수 있다. 그 길에도 분명 실패와 지루함, 다른 종류의 후회가 있었을 것이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르고, 모든 인생에는 감당해야 할 무게가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인생이 더 가벼웠을 거라는 믿음은, 대부분 착각에 가깝다.
그래서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 아니라,
“지금 이 선택을 5년 뒤의 나는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는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인생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훗날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 나름대로 선택했다고.”
그 정도면, 선택하지 않은 인생에 대한 후회와도 어느 정도는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