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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숲 Sep 12. 2021

보험설계사가 되기로 했다

내 담당 설계사는 왜 그랬을까?

나는 대학 시절 처음 보험을 가입한 이래 지금까지 총 4명의 담당 설계사를 만났다. 보험을 4개 가입해서가 아니라, 처음 가입한 보험의 담당이 계속 바뀌어서다. 


첫 번째 설계사에 대한 기억은 나쁜 부분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청약서에 사인할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자동 이체를 설정한 보험금이 엉뚱한 날짜에 이체되었을 때부터 인상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이체 날짜를 20일 이후로 적당히 맞춰달라고 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5일에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담당에게 연락해 날짜를 바꿔달라고 하자, 원래 자기가 하는 일이 아니지만 해주겠다던 그는 일처리를 차일피일 미루며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결국 나는 콜센터에 연락해서 날짜를 변경했다. 며칠 동안 기다렸던 일은 고작 3분이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보험회사에서 고지서가 날아왔다. 보험 유지 내역을 알려주는 정기 고지서였다. 고지서에는 보험 유지 사항 외에 보험금이 소폭 할인되는 사항도 안내해주고 있었다. 읽어 보니 자동 이체 외에 건강체 할인 특약이란 것이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담당 설계사에게 연락을 해서 건강체 할인에 대해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묻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그걸 물어본 게 아니라고 하자 시큰둥한 대꾸가 돌아왔다. 

 

'뭘 물어보는지 모르겠는데 맘에 안 들면 다른 데 연락하시던가요~' 

 

그래서 콜센터에 연락해 담당 설계사를 바꿔달라고 했다. 이번에도 콜센터는 내 바람을 쉽고 빠르게 들어주었다. 며칠 안 되어 새로 배정된 담당 설계사가 인사 겸 만나자며 연락을 했다.  

 

두 번째 설계사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으로, 자신은 이 일을 오래 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자신의 나이가 많긴 하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계속할 거라고도. 아무래도 콜센터에 전화해서 담당을 바꿔달라고 한 것을 신경 쓰는 눈치였다.  

 

“어유 건강체 할인 그거 받아봤자 얼마 안 되는 푼돈이에요~” 

 

하지만 얼마 안 되는 푼돈이 아쉬운 고객의 마음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보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어째서인지 결혼 고나리를 시작했다. 

 

“여자가 결혼은 꼭 해야지~결혼 안 하다가 집에서 쫓겨나면 어쩌려고?” 

 

그는 내가 자신을 마음에 안 들어할까 봐 일을 잘한다고 한껏 어필했으면서도 자신의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걱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첫 만남에서 또 콜센터에 연락해서 담당을 바꿔달라고 하기 피곤했다. 그러나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계속할 거라 호언장담했던 그는 고작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일을 그만두어 버렸고, 내게는 다른 설계사가 배정되었다. 

 

세 번째 설계사는 학습지 일을 하다 보험 영업을 시작한 주부였다. 아직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선배 설계사와 함께 첫 만남을 잡은 그는 앞선 두 사람과 달리 보험에 대해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었고, 건강체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검사 신청도 해주었다. 하지만 다른 사정이 생겼는지 몇 년 후에 그만두어 버렸다. 

 

네 번째 담당은 보험 일을 10여 년간 했다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며 상대에게 공감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그는 제법 믿음직한 설계사로 보였다. 보험에 대해 상담하고 싶다며 연락할 때까지는 그랬다. 

 

“주계약 담보액을 줄이고 싶은데요.” 

“……얼마나 줄이고 싶은데요?” 

 

잠시 간격을 두고 나온 담당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여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어쩌면 말하는 방법이 나빴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담당은 새로 계약을 따낼 기회라고 느껴졌을 테니까. 난 조금 어물어물거리며 얼마나 줄일 수 있냐고 물었다. 

 

“주계약 담보액을 줄이면 보장이 줄어들게 되는데요…….” 

 

그야 그럴 터다. 내는 돈이 줄면 보장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야기니까.  

 

“그건 알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요.” 

 

나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도중에 해지하면서 손해 보긴 싫고, 그렇다고 유지하긴 어렵고. 그렇다면 지금은 보상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주계약을 줄이고 실손을 포함한 특약 담보면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감액완납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해약환급금으로 나머지 보험료를 일시에 납부하고 보장내용을 줄이는 제도다. 담당은 여전히 떨떠름한 눈치였다. 보장내용이 줄어드는 거라 영 내키지 않았던 건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는 그저 보장이 줄어든다든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다가, 일단 사무 쪽에 물어보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난 후 다시 내게 전화를 하더니 그렇게는 처리가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곤 보상이 줄어드니 주계약을 줄이지 말라고도 했다. 슬슬 안 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데 ○○씨, 지금 저축하기 좋은 보험 하나 있는데요~” 

 

지금 내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상담을 부탁했는데, 되레 새 보험 권유만 받았다. 여유가 없다는 내 말은 귀에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난 보류하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담당 설계사에게 보험에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모두 버렸다. 아무래도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어딘가에 나와 맞는 설계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인연이 닿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보험설계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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