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윤종신' 이야기
마케팅이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나 좋아하는 사람은 일부인데, 초대박을 꿈꾸면서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붓는 건 아닌가? 별 의미 없다. 그러던 중 트위터가 등장했습니다. 팔로워가 9만, 20만이 넘어갔어요. 이런 시대가 온다고? 마케팅이 사라지면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제가 SNS를 과하게 해석한 면도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음악내면 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테고, 그분들에게 한 달에 한번 "저 음악 냈어요."라고 알린다면?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저는 생각이 나와야 할 시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앨범은 저의 옛 생각이거든요. 1~2년 전 곡 쓸 때와 지금 내 생각이 변했어요. 그런데 앨범은 이제 나오는 거예요. 이건 미련한 짓이다. 그러지 말고 바로바로 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월간 윤종신 3년쯤 됐을 때 '아카이빙의 미학'을 알아버렸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월기(月記)를 쓰고 있는 거잖아요. 2010년부터 지금까지의 흐름을 다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2023년 5월호를 들으면 '이 사람 이때 갱년기였구먼.' 작년, 재작년부터는 50대 넘은 한 남자와 가장이 푸념이 녹아있어요. 그리고 이건 10년, 20년 가면 더 의미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월간 윤종신의 가장 큰 미덕이 '흥했다, 망했다'의 기준이 없어져 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월간 윤종신 노래 잘 안 됐다며?"가 아니고 "월간 윤종신 아직도 해오고 있다며?" 평가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어요. 그게 가장 좋은 점 중 하나입니다.
저는 가끔 저 비난하는 이야기 들으면 "그래요? 다음 달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합니다. 젊은 친구들하고 이야기해 보면 뭔가를 꾸준히 내겠다는 그 선언이 무서운 거예요. 변할지 모르는 자신에 대한. "형, 나 다 좋은데 2년 후에 하기 싫어지면 어떡하지?" 그 번복이 무섭고요. 그럴 때는 저는 "그만 두면 되지. 지금 하는 거 그만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되지. 그 사람들이 너희 집 가서 차압이라도 하니? 뭐야, 하다 말았네? 하지." 의외로 욕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자기 작품을 보석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똥으로 생각해요. 하찮은 게 아니라 창작적 배설물이라는 겁니다. 저는 앞으로 할게 훨씬 중요해요. 그건 보석입니다. 곡도 곧바로 다음 거. 릴리즈한 순간부터는 잘 안 들어요. 저는 그런 편이에요.
저는 일찍 깨달은 사람 별로 안 좋아해요. 일찍 깨달은 건 그냥 그걸 아는 거거든요. 경험하지 않고 뭔가를 아는 사람이 있어요. 좋게 말하면 똑똑한 거지만, 저는 반대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은 늦는 맛이죠. 늦어야 바뀌죠. 우리 나이 때는 영재, 천재, 신동 이런 이야기했는데 다 불행해요. 더 이상 깨달을 게 없어서 불행하게 살더라고요. 저는 깨달음은 늦을수록 좋다 생각합니다. 깨달을 만한 나이에 깨달아야 되기 때문에. 그게 제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식상할 때쯤 그러니까 데뷔 20년 차에 깨달은걸 곧바로 실행해 버렸거든요. 그동안 해오던걸 버리고요. 그러니까 좀 프레시해 보이는 것 아닌가. 지금도 여전히 깨달아 가고 있고요.
나 자신이 어디에도 없는 유형의 사람은 아닐 겁니다. 어디엔가 나 같은 유형의 최고 성공자를 발견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런데 발견하려면 많이 찾아봐야 합니다. 유튜브도 보고 포털도 서치 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훔쳐보고 관찰하는 시기가 2~30대에 있는 거고 40대 정도부터 진짜 자기 게 나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저는 요즘 2,30대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위태해 보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적당하지 않은 시기에 성공해 버린 사람. 위태롭다는 표현까지는 좀 그렇고 걱정되죠. 40대에는 100% 똑같이 유지 못하거든요.
앞으로 인생의 웨이브를 많이 겪을 텐데 파도의 밑단에서 잘 견딜까? 그런 생각 많이 하죠.
뭔가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시대이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나의 서사를 축적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든다면, 'IF'라는 단어를 안 쓰면 됩니다. 만약 내가 이걸 못하면 어떡하지? 포기하면 어떡하지? 지금 괜찮은 보험 하나 들어놓으면 되는 거 같아요. 정말 그냥 돈 나오는 보험, 진짜 물리적인 보험. '만약'은 보험하나 들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내가 지금 이게 떠올랐으니 이걸 하는 거다. 지금을 살면서 가끔씩 지난날을 돌아볼 때 리프레시할 기회가 오잖아요. 그때 바꾸면 됩니다. 내가 3년 동안 뭔가를 해서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지금 하는 게 의미가 있나? 그러면 못하는 겁니다.
취업이 잘된다는, 그저 3교대가 싫어 선택했던 치위생과. 손재주가 뛰어나지 않았기에 진료업무가 아닌 리셉션 업무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리셉션 업무를 보는 직원이 치과위생사라면 베네핏이 있지만 제가 사회초년생일 때만 하더라도 치과위생사 면허가 아깝다고 말리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남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는 이탈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응대가 재밌었고, '어떻게 해야 전문성을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사투리 교정을 하는 게 신뢰가 간다라는 말 한마디에 부산 토박이인 전, 스피치 아카데미를 등록했습니다. 그렇게 전 교통방송 캐스터가 됐습니다. 이후 다시 본업에 복직하고 강의를 하며 '캐스터가 된 치과위생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됐습니다.
더불어 10번이 넘는 이직과 전업을 통해 다양한 조직과 직업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회사, 방송사, 스피치 아카데미, 월매출 5천만 원을 목표로 하는 작은 동네 치과부터 월 11억 이상을 목표로 확장하는 곳까지. 여러 조직을 경험하며 단시간에 이 조직에서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퍼포먼스를 낸다는 강점이 생겼습니다.
저의 인생 핵심가치는 '나의 역량을 키워 타인에게 기여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직업은 수단이 됩니다. 때문에 전 어떤 일을 어디에서 하든 한 사람의 인생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될 때까지, 그러나 아니다 싶은 건 빨리 포기하기도 해서 독하지만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 결과는 확실히 내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타인의 평가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간과해서도 안됩니다. 적어도 내가 가진 본업에서만큼은 '이력서'가 없이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해내는 실력이 있어야 나의 서사를 궁금해합니다. 다만, 그 실력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야 하고, 직업은 도구가 될 수 있어도 그 직업을 대하는 태도는 진심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당시만의 서사입니다.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기여가 얼마만큼 치열했는지.
성공과 좌절이 진실하게 누적된 나의 기록은 유일무이한 나만의 서사입니다.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 중에서
아티클 원문 : https://www.folin.co/article/5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