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여든세 번째
병원 약을 먹지 않게 된 지 꽤 되었다. 잠을 못 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이제 그 고통은 우울함까지 깨버리는 정도가 되었다. 낮에 휘청거리는 내 몸을 느낄 때마다 묘한 희열을 느낀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하는 생각은 이상하게 기쁨을 가져온다. 삶이 곧 끝날 것 같은 기쁨. 고통이 얼마 안 남았을 것 같은 기대. 그런데 우습게도 몸이 고통스러울수록 삶의 불씨는 조금씩 살아난다. 밥을 먹고 잠을 자려 애쓰고 발버둥 친다. 왜 그런 것일까.
습관을 들인 일들이 점점 몸에 잘 붙어 온다. 아침에 이불 개기, 주말에는 반드시 1시간 이상 산책하기, 수면제 먹지 않기 등등.
최근 더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게 있다. 나는 요즘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싫다고 얘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니요, 별로예요,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얘기한다. 회사에서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난 이 회사를 영원히 다닐 게 아니니까. 그들 중 나와 다시 만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내 나이를 봤을 때 같은 업계면 돌고 돌아 다시 만난다는 얘기도 틀렸다. 이제 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변변하지 않은 계약직이나 일용직을 전전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모두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별로 인 것 같아요라고 얘기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너무 쉬운 것들이었다. 20년이 넘는 사회생활 끝에 얻는 깨달음은 고작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다른 것이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들이었다. 나 항상 누르는 것은 가족들. 그중에서도 엄마였다. 엄마는 항상 내 머릿속에 있었다. 그리고 난 그걸 떨쳐 내기가 어려웠다.
엄마 뭐 먹고 싶어 하면 예나 지금이나 엄마는 너 먹고 싶은 거 먹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음식을 시키면 이게 안 좋다 저게 안 좋다 불만을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본인은 혼잣말을 하는 것이지만 네가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는 듯이.
그래서 나는 안다. 몇십 년을 엄마한테 음식을 사 주다 보니 지금쯤이면 무슨 음식을 좋아할지 깨닫게 됐다. 모처럼 고향에 내려왔다. 이유가 있어서 긴 시간 버스와 지하철과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엄마한테 절대 음식을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 신신당부했다. 어떠한 음식이 있지도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내가 사갈 거니까 그걸 가지고 나눠 먹자고 했다.
차를 안가지고 가서 포장해서 가긴 힘들었다. 결국은 배달을 시켰다. 엄마 장어구이시킬게요. 요즘 민물 장어 좋아요.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너 좋아하는 거 시키지 굳이 무슨 장어냐 집에 먹을 것도 많은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장어를 사 갖고 오면 엄마가 해줄 텐데라고 말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살림하고 자식들 걱정하고 그런 걸로 삶이 대부분 채워져 있다. 난 그 삶에서 나오고 싶다. 이제는.
하루 종일 내 탓만 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원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미움받는 걸 너무 두려워하는 것도 알았다. 그중에서 제일 많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엄마였다. 회사에서 시작한 나의 '싫어요'운동은 그 정점을 치고 있었지만 무엇인가 한계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 집으로 내려왔다. 난 엄마에게 무엇이 싫다고 얘기해야 되는가. 난 엄마한테 무엇을 안 된다고 얘기해야 될까.
어이없게도 장어는 은박지에 포장돼서 일회용 그릇에 담겨서 왔다. 일 인분이 33,000원. 둘이 합하면 66,000원. 거기에 공깃밥은 별도였다. 이게 7만 얼마짜리인가 한숨이 나왔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거봐라 하는 엄마의 말이 곧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식탁 위에 장어를 올려 놓고 그릇과 젓가락 등을 가져와서 먹기 좋게 차려 놓았다.
우리 엄마는 장어를 좋아하신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멀리 있는 좋은 장어집에 가서 장어를 가끔 먹었다. 생각해 보면 돼지고기도 잘 못 먹던 시절이었는데 우리는 장어를 먹으러 자주 꽤 멀리까지 갔었던 거 같다. 우리 모두는 싫어했다. 아빠는 좋아했다. 엄마는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사실 잘 모른다. 그 기억이 그리우신 건지 진짜 장어를 좋아하시는 건지.
엄마는 틀니 때문에 장어의 껍질과 뼈가 이에 닿으면 아프다고 했다. 껍질과 뼈를 분리하고 있다. 순간 나는 장어 같은 거 말고 복어탕 같은 것을 시켰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머니는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오믈 오믈. 쉬지 않고.
엄마는 내가 장어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신기한 일이지. 내가 집에 와서 외식을 하자고 하면 가끔씩 장어구이집은 어떤지 넌지시 얘기하곤 했다. 가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장어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그때 그 장어집에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를 얘기하신다. 나는 장어를 싫어한다. 그 물렁한 촉감이 항상 싫었다. 엄마는 나와 다른 자식을 헷갈리는 것이다. 장어는 아버지와 장남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항상 듣던 우리 아들. 그 첫아들. 너무나 소중한 그 아들.
다 먹고 음식을 채우고 믹스커피 두 잔을 타서 바닥에 앉았다. 엄마가 갑자기 한숨을 푹쉬시더니 나보고 왜 이렇게 말랐냐고 갑자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너무 말랐다 너도 이제 다시 결혼을 생각해 봐야지 너도 언제까지 혼자 살 순 없을 텐데 그런 얘기들을 또 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아니 듣고 싶지 않아, 상관없는 일이잖아라고 말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뭐 굳이 틀린 얘기도 아니었으니까.
"불쌍한 것..성격이 나 닮아서 너무 예민해 그 예민한 성격 때문에 너무 힘든 거야, 그 예민함을 죽여야 돼"
그때서야 나는 내가 무슨 얘길 해야 될지 알게 되었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왜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되는지 알았다.
"엄마 나 예민하지 않아. 더 이상 예민하지 않아. 그리고 다시는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
엄마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더니 입술을 닫혔다. 한평생 조용했던 자식의 또박 또박한 말에 엄마는 놀랐는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평생을 나한테 저 말을 해왔다. 넌 예민하다고. 자기 닮아서 예민하고 성마르다고. 그래 맞다 난 여기서부터 그것을 끝내고 시작해야 한다. 난 예민하지 않다. 난 둔하고 더 아둔하고 멍청하고 센스 없고 나만 아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엄마 나 되게 잘 살고 있어. 그러니 엄마도 행복해야 돼“
엄마는 동의하지 않았다. 엄마의 눈빛이 다시 날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당분간 내려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반드시 예민해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난 살 수 있다. 지금 병원에 다니지만 약을 먹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일상에 습관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런 건 한순간에 무너지질 수 있다. 왜 모으는지 나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약들을 볼때마다 그 약통은 폭탄처럼 보인다. 저게 내 승리의 트로피가 되어야 할텐데, 나에게 폭탄으로 돌아오기 전에 난 내 마음을 바꾸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터져버리고 난 재로 변할 것이다.
난 예민하지 않고 둔하다. 이제부터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