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첫 '자격증'보다 더 귀한 것
여섯 살 아들의 첫 한자 자격증 시험은 작년 11월 말쯤이었다. 시험의 결과 발표는 약 3주 후로 예정되어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다림의 시간, 아이의 초조한 모습에서 결과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본인 말로는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쉬웠다’지만 공적 자격 시험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여섯 살 아이가 아닌가. 엄연한 자격 시험, 혹 답지라도 밀려쓰기라도 했다면 시험을 잘 풀어놓고도 자격을 얻지 못하는 냉혹한 세계가 아니던가. 우리식구들의 하루하루는 행복했지만 결과 발표까지의 시간은 꽤나 더디게 흘러갔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아내와 나는 아이가 ‘기능’과 ‘자격’에 따른 보상에 너무 치중하지 않게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아이가 과업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고 있는 한자의 수(數)’로 혹 오인하게 될까봐 그런 성취에 대한 칭찬을 줄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험의 결과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여섯 살 아이도 시험을 보고 나서는 끊임 없이 그 결과를 궁금해했다. 노력과 과정이 중요했던 것만큼이나 결과도 아이에게 중요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대하는 부모로서 우리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이에게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떤 격려와 칭찬을 해주어야 할지 같이 상의하곤 했다.
상의 끝에 우리는 아이의 도전의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같은 마음과 같은 표현으로 독려하기로 했다. 아이가 이룩한 점수의 높낮이보다는 노력한 ‘과정’과 도전하려는 ‘자세’를 칭찬해주기로 한 것이다. 아이는 시험을 앞두고 조금 힘들어 했었다. 한자 공부 자체는 재미있게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시험’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를 시간 안에 풀어내고, 그 답을 또 답안지에 옮겨야 하는 자격 시험이었다. 게다가 부모가 떠난 시험장이라는 자리에는 그에 대한 돌봄의 의무가 전혀 없는 ‘감독관’이 앉아있지 않은가. 이모와 함께 모의 시험을 겪으면서 아이는 답안지에 차례대로 옮겨적는 과정을 유난히 힘들어했고, 몇 번은 포기하고 싶다고까지 했었다. 하지만 엄마와 이모의 따뜻한 격려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그의 용기와 도전은 혹 시험의 결과가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퇴색되지 않는, 그럴 수 없는 그의 칭찬 거리였다. 점수가 혹시 높게 나오더라도 우리는 아이가 자신의 점수에 취하기보다 자신이 도전한 것에 대해 뿌듯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 불합격하게 되더라도 아이가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냈던 용기를 떠올리면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험 결과가 나오던 날, 우리(아내와 나, 처제, 영원이)는 약속을 했다. 아무도 먼저 열람하지 않기. 모두가 같이 모인 자리에서 확인하기.
그런데 나는 본의 아니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당일날 한국어문회에서 문자가 와 버린 것이다. 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축 합격
김영원님(수험번호:757805062)
급수증 수령 2주 이상 소요 예상 – 한국어문회
사실 내 시험 점수가 잘 나왔던 경험보다 훨씬 기뻤다. 저번에 배운대로 아빠는 그 성취감에 너무 취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치미를 떼고 있으려고 해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드디어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모인 자리. 우리는 영원이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의 마음을 담아 아이를 격려하기 위해 소소한 파티를 준비했다. 자격증이 나오려면 또 몇 주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의 성취보다도 더 값진 그의 도전과 용기를 칭찬하는 우리의 축하장을 아이에게 건네기주기로 한 것이다. 작성된 축하장은 오로지 한 가지 버전이었다. 합격했을 때와 불합격했을 때의 멘트는 구분되지 않았다.
아이의 생년월일과 수험번호를 넣고, 클릭! 클릭은 영원이가 스스로 했다.
그리고 펼쳐진 화면, 그의 합격 사실과 함께 그의 점수가 기재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고득점이었는지 아이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자신이 해석한 자신의 점수가 맞는지를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성취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얼떨떨한 표정의 녀석에게 엄마와 이모, 아빠와 소원이의 축하가 쏟아졌다. 아이의 첫 가시적인 성취의 순간이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축하장 수여식이 열렸다. 축하장의 문구 하나하나가 아이의 마음 속에 깊이 들어가기를 바라며, 점수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을 바라보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2주 후, 2020년의 마지막 날,
우편함에는 한자어문회에서 온 아이의 자격증과 함께 우수상이 동봉되어 놓여있었다. 어찌보면 종잇장일 뿐이지만 아이는 그 종이들을 껴안고 하루 종일 행복해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만들어 준 축하장보다는 진짜 자격증과 우수상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이가 순수하기에 우리가 이야기한 가치들을 잘 받아들인 부분이었다. 점수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고, 으스대거나 거만해지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도전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요즘 녀석은 더 상위 단계의 한자 공부를 처제와 열심히 하고 있다. 한자를 한 자 한 자 깨달아 알아가는만큼 평소에 구사하는 단어들의 깊은 뜻을 알게 되어 더 기뻐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깨달음은 단순히 칭찬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변화는 칭찬의 양보다는 방향성에 있다. 결과에 대한 칭찬을 줄이고, 과정에 대한 관심을 늘려가면서 늘 아이 본연의 가치를 묵상하곤 한다.
영원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든 어떤 성과를 내든 영원이가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인 것에는 당연히 변함이 없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아이, 실패가 없는 것을 자랑하는 아이이기보다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쓰러지지 않는 아이로 자라주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