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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정 Sep 23. 2024

심리 센터에 방문하다

1회기

"오늘 어떠한 도움을 받고 싶어 오게 되셨나요?"


건너편에 앉은 나보다는 어려 보여 다소 경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상담사분이 말했다. 경력이 중요하랴. 상담이랄 게 사실 내 이야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되는 면이 있으니. 그리고 이런 센터에서 근무할 정도면 기본적인 근무경력이나 수련은 했으리라. 그렇게 믿기로 한다.


"아, 음 그게 제가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온 것은 아닌데요.. 우울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


내가 어떠한 도움을 받고 싶은 걸까. 잘 모르겠다.


"아. 먼저 저에 대해 소개를 해드릴게요. 저는 상담심리학을 전공했고요. 혹 세정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비밀유지 서약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내가 대하는 것을 머뭇거리자 상담선생님은 먼저 심리적 장벽을 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간단한 자기소개와 비밀유지 서약서를 내밀었다. 비밀유지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 나는 내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할 자신이 없어 미리 적어놓은 '내가 상담을 받게 된 계기'라는 글을 먼저 선생님께 내밀었다.


"글은 잘 읽어보았어요. 먼저 든 생각은 세정님은 글을 참 잘 쓰시네요. 그리고 겪으셨던 일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잘 쓴다는 칭찬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나는 칭찬에 매우 인색하다. 내가 칭찬 받는것도 너무 어색하다. 내가 글을 잘 쓸 리가 없는데 의례 하는 칭찬이라 생각하면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글은 잘 읽어보았는데, 세정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첫날은 심리검사 같은 것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상담이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아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음.. 다 지나간 일이지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죄책감, 그리고 아빠에 대한 증오의 마음이에요."


결국 올 것이 오야 말았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상담프로그램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왕 내 시간을 내서 상담센터까지 왔으니 내가 지금 풀고 싶은 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결국 그것이 필요하니까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마음속에는 아직도 이 상담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다. 대체 내가 여기 와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람.그러면서도 결국 눈물 콧물 흘리며 또  얘기를 털어놨다.


"정말 힘드셨겠네요. 어떻게 그걸 다 견디셨어요."


내가 힘들었었나? 그래 힘들었었다. 아무한테도 힘들다고 말한 적 없었다. 의례 내가 감당해야 할 짐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엄마가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에서 아빠의 존재는 없었고 그 과정을 혼자 헤쳐나간 것. 엄마가 수술받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에 대해 내가 어떠한 관여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래. 나 정말 힘들었었구나. 내 감정을 이해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에 또 한 번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자체에 너무 감사했다.


"세정님은 정말 강한 분이네요. 제가 그 과정을 겪어보지 못해 감히 그 감정을 다 공감한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그 험난한 과정을 다 견뎌내시고. 업무도 새로 적응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내 한 몸 고사하기도 힘드셨을 텐데 어머니까지 돌보시다니 정말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러고 아버지는 아무 도움도 되질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그 과정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그래 다 맞는 이야기다. 어떻게 견뎠냐고? 나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그냥 견딘 것 같. 다 지나간 일인데 지금와서 이렇게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오시길 정말 잘하신 거예요. 이런 감정을 꺼내는 게 괴로운 일이실 거예요.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힘드실 수도 있어요. 억눌렀던 감정일수록 더 곪아갈 수 있어요. 세정님은 많이 억누르신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실 준비가 되신 것 같아요."


아. 그래. 마음속에 담아놓다고 없어지지 않더라. 결국은 한 번은 이렇게 시원하게 워내고 토해내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담아낼 수 있다. 50분이라는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갔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갈 텐데요. 세정님이 이 만남에서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내가 기대하는 것? 모른다. 그런 건 없다. 하지만 묻는 말에는 무엇이라도 대답을 해야 한다.


"음, 엄마에 대한 죄책에서 벗어나고 싶고, 아빠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음 사실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부분은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남자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 가고 싶어요."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지. 그게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이왕 시작한 거 앞으로 남은 9번의 상담을 통해 많은 것치유하고 변화하고 싶다. 이곳에서 상담하는 이 시간만큼은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내 버리리라.





달리기와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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