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뒷모습을 읽는 기술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말만큼 애매한 칭찬도 없다.
지시를 빠르게 수행한다고 칭찬받는 건 1~2년차까지다.
그 이후부터는 다른 기준이 생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
그건 ‘맥락을 읽을 줄 아는가’다.
한양대 차경진 교수는 『데이터로 경험을 디자인하라』에서 좋은 마케팅이란 고객의 말에만 의존하지 않고, 고객이 처한 맥락과 감정을 이해해 그에 맞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라 했다.
이건 조직 안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리더는 또 다른 고객이다. 묻는 것만 하는 사람보다 묻지 않아도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쏠린다.
리더가 말했다.
“이건 급하지 않으니까 나중에 해도 돼요.”
A는 말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정을 미뤘고, 한 달 뒤 회의에서 지적받았다.
"왜 이게 아직 안 됐죠?"
당황한 A는 "급하지 않다고 하셔서..."라고 말했다.
그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걸 놓쳤다.
맥락이었다.
같은 말을 들은 B는 다르게 해석했다. ‘지금 급하진 않지만, 이건 중요한 신호다.
먼저 해두면 기억에 남겠다.’ B는 조용히 처리했고, 회의 전 날 슬쩍 공유했다.
리더는 B를 다음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같은 말, 다른 결과. 차이는 맥락을 읽었느냐, 아니냐였다.
리더는 모든 걸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지 않는 걸 관찰하길 원한다.
어떤 키워드를 반복했는가
어느 슬라이드에서 침묵이 길었는가
누가 불려갔는가, 왜 그 사람인가
이건 전부 ‘맥락의 힌트’다.
그 힌트를 엮어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설계하는 사람이 눈에 띄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자주 찾는 브랜드 A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
앱을 켜면 내가 자주 마시는 메뉴가 뜨고, 생일 즈음엔 그 음료를 할인해준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해주는 브랜드는 남는다.
조직도 똑같다. 말하지 않아도 준비된 사람, 기억된 사람이 프로젝트 중심에 선다.
현장 미팅 도중, 소장이 무심하게 말했다.
“요즘 날씨가 좀 심상치 않네.”
A는 그냥 덥다는 말로 들었다. 작업자들 안전 교육 정도로만 신경 썼다.
하지만 J는 다르게 느꼈다.
‘이건 일정 지연에 대한 선제적 걱정이다. 비상 플랜을 짜라는 사인이구나.’
J는 주간 작업 계획을 수정하고, 우천 시 실내 공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협력사와 일정을 조정해 뒀다.이틀 뒤, 폭우가 쏟아졌다.
J의 팀은 유일하게 작업을 계속했고, 그 날 이후로 J는 모든 조정회의에 불려들었다.
리더의 말은 겉으로는 그저 '생각' 이나 '우려'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경험에서 오는 감각과 예측에 대한 책임감이 숨어 있다. 예방이라는 의도의 시그널로 해석하는 사람.
결국 '누가 그말을 먼저 파악하고 행동하는가' 에 따라 다음 기회의 자리가 달라진다.
‘그냥 열심히 하자’는 말은 3년 차까지만 유효하다.
그 이후부터는 누가 가장 먼저 맥락을 읽고, 조직의 필요를 설계했는가로 평가가 갈린다.
조직은 이름 붙이지 않아도 가치가 느껴지는 일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일을 만든 사람에게 다음 기회를 맡긴다.
리더가 무심코 언급한 단어를 기록한다.
팀장이 ‘웃으며 넘긴’ 슬라이드를 다시 본다.
회의에서 리더가 가장 오래 머문 장면을 체크한다.
리더가 시간을 오래 쓰는 사람을 관찰한다.
그 안에 다음 방향이 있고, 기회의 힌트가 있다.
말은 언제나 결과의 포장지다. 진짜 방향은 말이 오기 전 행동과 맥락에 있다.
결정되기 전에 눈치챈 사람, 기준이 정해지기 전에 설계한 사람, 그 사람이 ‘다음’을 만든다.
고객이 말하지 않아도 그 감정을 읽고 서비스를 설계하듯 리더가 말하지 않아도 그 의도와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이 ‘보고의 대상’이 아니라 ‘논의의 파트너’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리더의 뒷모습을 읽는다
회의 중 떠도는 시선, 반복되는 키워드, 침묵의 길이.그 뒷모습 속에 담긴 맥락을 읽는 것.그게 회사에서 생존하는 기술이고, 기회를 설계하는 기술이다.
말은 힌트다. 맥락은 해답이다. 그리고 그 맥락에서 가치를 설계하는 사람이 기회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