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공자와 니체의 삶
퇴근 후의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상사의 시간도 아니고, 팀의 시간도 아니다. 그 시간은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나'는 누구인가?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회사에서의 성공을, 타인의 인정이나 승진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소인의 길을 걷는 것일지 모른다. 진짜 승리는 퇴근 이후 드러나는 ‘자기 자신’의 완성이다.
공자의 사상에서 군자는 단순한 도덕군자가 아니다. 군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사람이다. 『논어』의 첫 문장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학문이란 단지 지식 축적이 아니라, 삶을 정제하는 행위다.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공부를 하는가? 어떤 기쁨을 누리는가? 퇴근 후의 시간, 바로 그 시간이 공자가 말한 진짜 '학이시습지'의 시간이다.
어떤 사람은 책상 앞에 앉아 『논어』 한 줄을 베껴 쓴다. 어떤 이는 하루를 돌아보며 조용히 일기를 쓴다. 또 어떤 이는 고요한 방 안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사유한다. 공자는 자신을 닦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학(學), 문(問), 사(思). 즉, 배우고, 묻고, 사유하는 것이다. 퇴근 후의 삶이란, 바로 이러한 공자의 세 가지 수련이 가능해지는 시간이다.
회사는 우리의 바깥을 단련한다. 하지만 퇴근 후는 우리의 안을 단련한다.
공자는 이를 수신(修身)이라 불렀다.
퇴근 후의 삶은 가정으로 귀결된다. 가족과의 대화, 저녁 식사의 시간, 소소한 일상의 교류. 『대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스스로를 닦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라는 것이다. 공자는 천하보다 수신을 먼저 강조했다. 회사에서의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 되려면, 집이라는 뿌리에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회사를 이긴 사람들은 결국, 퇴근 후에 자신을 회복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니체의 사상을 곁들여볼 수 있다. 니체는 말했다. "너 자신이 되어라." 그는 인간이 남이 만든 도덕과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창조해야 한다고 보았다. 공자의 군자가 자기를 '닦는 존재'라면, 니체의 초인은 자기를 '만드는 존재'다. 공자는 하늘(天)의 도리를 따르되 그 안에서 자기를 연마했다. 반면 니체는 하늘이 없다면,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철학자의 길은 다르지만, 퇴근 후의 시간에 둘은 만난다. 고요히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을 돌아보는 순간, 공자의 군자와 니체의 초인은 모두 우리 안에 깃든다. 하나는 겸손하게 나를 갈고닦고, 하나는 과감하게 나를 새로 창조한다.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퇴근 후다.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나에게 주는 선물
바로 퇴근 후의 자기만의 시간이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누군가는 이 시간을 쌓아간다.
회사를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회복하고 나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퇴근 후에 시작된다.
공자는 말한다.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그 하루는 잘 산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스스로를 극복한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하루 내내 회사에 내어준 감정과 체력, 텅 빈 마음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퇴근할 것이다. 그러니 퇴근 후의 시간만큼은, 잃어버린 나를 다시 데려오는 데 써야 한다.
회사에서는 견딘 이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삶에서는 끝내 자신을 다시 빚어낸 이가 이긴다.
회사를 즐기고,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은 퇴근 후 나를 어떻게 돌보았는가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