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나에게 돌아가는 시간
『나의 아저씨』는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인물은 가족을 위해, 어떤 인물은 빚을 갚기 위해, 또 어떤 인물은 사랑했던 사람을 잊기 위해 견딘다. 그들의 낮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반복되는 업무, 말없이 쌓이는 스트레스, 말 한마디로 인생이 바뀌는 조직 안에서 그들은 고요히 버틴다.
하지만 드라마가 특별한 건, 퇴근 이후의 시간이야말로 그들이 진짜 삶을 살아내는 시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회사 밖, 퇴근 이후의 그 짧은 순간들 속에서 인물들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회복되어 간다.
이지안은 회사에서조차 투명한 존재다. 비정규직 계약직 직원, 누군가의 심부름꾼, 모두가 피하는 인물. 하지만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퇴근 후에 펼쳐진다.
알콜 중독 할머니를 돌보는 소녀. 단전된 집에서 휴대폰 불빛으로 어둠을 견디는 사람. 밤마다 지하철 청소를 하고, 잠깐의 휴식 시간에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존재.
그녀의 퇴근은 해방이 아니다. 생존의 연장이다.
하지만 박동훈을 도청하면서, 처음으로 그녀는 ‘사람의 따뜻한 말’을 듣는다. “고생했어.” “괜찮아.” “수고했다.” 이런 말들이 스피커 너머로 들려올 때, 그녀의 퇴근 후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말없이 혼자 무너져가던 그녀는, 퇴근 후의 짧은 시간 속에서 살 이유를 발견한다. 그건 아주 작고, 조용한 온기였다.
박동훈은 겉보기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다. 대기업 부장, 가족, 친구, 동네 사람들과의 인연까지. 하지만 그 역시 지쳐 있었다.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참는다. 사람을 믿지 않고, 말도 아낀다. 일터는 전쟁터이고, 그는 생존자다.
하지만 퇴근 후, 동네 골목길을 걷고, 오래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말없이 벽을 바라보다가 결국 조용히 눈물짓는 그 순간. 그가 진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은 회사 밖, 퇴근 이후다.
이지안을 마주한 이후, 그는 그 고요한 시간을 조금씩 다르게 써간다.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고, 묻지 않아도 그녀를 도우며,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다시 묻는다.
“착하다.”
그 말은 이지안에게 했지만, 사실은 자신에게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퇴근 후에, 다시 ‘사람’이 되어간다.
드라마 곳곳엔 집이 등장한다.
이지안의 어두운 반지하, 박동훈의 아파트, 형제들이 모여 밥을 먹는 어머니 집.
퇴근 후의 장면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벌어진다. 회사에서의 피로와 감정을 끌고 들어오는 공간, 그곳이 ‘집’이다.
박동훈은 집에서도 말이 적다. 아내와는 대화가 끊긴 지 오래고, 아들과도 어색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다시 집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아내의 외도를 용서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고통을 이해한다. 아들과는 말없이 게임을 함께하고, 어머니 집에서는 형들과 싸우면서도 결국엔 서로를 안는다.
회사의 평가와는 다른 가치.
누군가를 지키고, 함께 밥을 먹고, 말없이 같은 공간에 머무는 일.
그 모든 것이 퇴근 후의 삶에서 회복되어 간다.
『나의 아저씨』는 사람을 사람으로 회복시키는 이야기다.
이지안은 돈도, 명예도, 특별한 기회도 없이 회복된다.
단지 한 사람이 자신의 퇴근 시간을 조금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너도 살아.”
“넌, 착한 애야.”
“힘들었지?”
그 말들이 그 어떤 명언보다 더 강력하게 그녀를 다시 일으킨다.
박동훈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에서의 지위가 무너지고, 동료들의 배신을 겪지만,
그는 자신의 방에서, 거울 앞에서, 가족과의 조용한 식사 속에서 다시 ‘사람’으로 회복된다.
누가 위로했는가?
퇴근 후의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둘은 서로를 사람으로 회복시킨다.
드라마는 말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 무엇을 해야 한다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묵묵히 보여준다.
그 시간을 버티는 법,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회복되는 사람들.
누군가는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옥탑방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오늘을 반성하고,
누군가는 울컥하는 감정을 견디며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는다.
그것이 『나의 아저씨』가 보여준 진짜 퇴근 후의 시간이다.
누구의 시간도 아닌, 오직 나의 시간.
회사를 이기는 힘, 인생을 다시 살아낼 수 있는 힘은
그 고요하고도 단단한 시간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