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느릴지라도 어쩔 수 없어

일단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볼게

by 민포기
나는 완벽한 엄마도, 완벽한 직장인도 될 수 없다.
나는 내가 기대하는 모습이 되기까지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지난 주말 동안,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었다. 이 결론까지 도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들었다. 내일모레면 내 딸의 두 돌인데, 그렇다면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장장 24개월을 쓴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난 만 24개월간 내가 '모든 역할'을 다 '완벽하고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달려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 고집도 참 대단하다.


덕분에 나는 외로웠고, 고독했고, 우울하기도 했다.

짜증도 났고, 홧병도 났고,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8할은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행복한 날도 분명 있었다...ㅎ)


어쨌거나 이제 와서 ‘난 모든 역할을 잘 수행해 낼 수 없다.‘는 판단이 나 자신과 내 가족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간 끊임없이 내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람에 이상과 현실 간 괴리로 모두를 괴롭혀왔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 (부끄럽지만) 예를 들어 보면, 완벽한 엄마이자 살림꾼이자, 내조하는 부인이자, 월천 정도는 쉽게 벌어오는 능력자, 날씬하고 탄력 있고, 옷도 잘 입고 언제나 예쁜 그런 여자. 그래, 어디선가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근데 그럴 수 없었기에(너무나 당연히도) 거기서 오는 분노와 우울, 자기혐오와 원망(방향도 없는 원망)은 상당했다. 그런데 이제야 그 늪에서 나는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내가 주 6일은 돈도 벌고, 동시에 엄마이자 아내이자 주부로서의 역할도 잘 해낸다는 계획을 세웠더라도, 실제로는 주 3일은 커녕 2일도 돈을 못 벌고, 애한테는 화를 내고, 집은 머리카락 투성이이고, 남편 출근길에 배웅 한 번을 못할 수 있다. 그렇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게으름이 아님을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 2023년, 두 돌짜리 딸아이와 40대의 남편과 곧 40대인 나는 나라는 사람의 몸과 마음, 정신, 의지 모든 것을 나누어 쓰고 있다. 그 사실은 최소 아이가 세돌을 지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나누어 쓰는 일은 점점 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온전한 나를 쓸 수 있는 날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내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날을 위해 나는 내 기대만은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내 역할들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다만 그 비율을 조정해 가면서 말이다. 나라는 사람의 리소스를 조금씩 조정해 가면서, 중간중간 나를 쉬게 하면서 말이다. 특히 '일'과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을 계속 해낼 것이다. 비록 엄마와 주부의 비중이 불가항력적으로 커진다 해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주 1일이라도 계속해나갈 것이다. 그렇게 묵묵히 시간을 보내면 다시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거다. 이제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리하여,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 아픈 아이와의 가정보육을 마친 나는 금요일 등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커피를 만들었다. 집은 전혀 치우지 않았다. 일하려고 컴퓨터를 켜지도 않았다. 한동안 읽던 책들과 읽고 싶었던 책을 식탁에 쌓아두고, 핸드폰으로 사고 싶었던 '내' 물건들을 찾아봤다. 은은한 노래를 틀어두고, 책을 읽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면 산책을 했다가 돌아와 따뜻한 침대에 잠시 몸을 누일 것이다. 시간은 아직도 정오다. 그렇다. 완벽을 포기하면 이토록 여유가 넘치는 하루가 될 수 있다.


아이가 내 삶에 나타난 뒤로, 내 삶의 목표들은 이전보다 더 긴 '장기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속도는 점점 느려져 버렸다.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속도'일 것이다. 포기하지 않되, 꾸준히.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만 바라봐야 한다. 남의 길을 봐서 무엇하리.. 내 인생도 아닌 것을. 내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보고, 누가 뭐라든 내 갈길을 가는 것이 필요한 거다. 내 나이 마흔을 앞두고 이제는 그걸 조금 알 것 같다.


저의 경우에는 친정이나 시댁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건 오로지 제 몫이었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좌절을 맛보았어요. 좌절 속에서 배운 건,
‘나만의 속도로 가자’였어요. 그게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사회의 변화와 엄마들의 환경. 두 개의 속도가 다르거든요.
(낫워킹맘, 25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