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론을 말할게

미안해, 어차피 나는 완벽한 엄마는 되어줄 수가 없단다.

by 민포기
내 바깥쪽은 아이가 쉼 없이 내는 소리로,
내 안쪽은 내 나름의 사정으로 시끄러웠다.



최근 들어 분노 조절이 참 안 된다. 원래도 다혈질인데, 그래도 ‘엄마니까’라는 생각으로 버티던 것들이 내 육아의 아킬레스건(다들 하나씩은 있겠지)인 ‘밥’과 함께 끊어지면서 와르르- 도미노처럼 넘어지고 있다.

나도 안다. 그럼 안 된다는 걸. 상대는 고작 23개월짜리 아이다. 상식도 윤리도 도덕도 없는, 사실상 ‘짐승‘. 그 짐승이 ’인간’으로 넘어가느라 ‘내가! 내가!’라는 말과 ‘이히잉이! 징지잉이이!’이 하루종일 귓가를 맴돈다. 정말 하루종일 같이 있는 날이면 사운드가 비는 일이 없다. 소리에 예민한 나같은 엄마들은 귀마개도 사서 낀다더니 그게 곧 내 얘기가 될 것 같다.


내 바깥쪽은 아이가 쉼 없이 내는 소리로, 내 안쪽은 내 나름의 사정으로 시끄러웠다. ‘쉽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홍보문구에 시작했던 내 작은 온라인 스토어는 그 성장세가 아주 귀여운 수준이이기 때문에. 3개월이면 누구처럼 월 천을 벌 수 있는줄 알았는데,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녹록하던가. 그리고 솔직히 유명 스토리의 누구들처럼 새벽까지 신들린 듯 일했던 것은 고작 12월 한달이었다. 남편의 월급과 실업급여가 따박따박 계좌에 들어오니 배부르고 등따셨던 걸까? 이상하게 떨어지는 매출과 함께 내 집중력도 바닥에 떨어졌다.


뭐라도 되어야 했다.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말투를 쓰는 좋은 엄마, 그게 아니면 돈을 펑펑 벌어오는 능력자, 그것도 아니라면 집안을 완벽히 정돈하고 살뜰이 가계를 운용하는 주부.. 뭐든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무엇도 되지 못하였다.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불안하게 했기에 나는 언제나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바빴다. 이런 날이 반복될수록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차라리 퇴직을 결정했을 때, 정확한 예산을 살피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맘 편히 놀고먹을 수 있는지 계산해두고 지냈다면 덜 아쉬웠을 것 같은데. 나는 계획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렇게 허술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주부'가 된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논다'는 느낌 덕분에 퇴직금과 실업급여 등을 맘 편히 쓰는 것도 눈치가 보였는지 모르겠다. 우리집 그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은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난 대체 누구의 눈치를 봤던 것인지.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던 오늘 아침. 등원 후 몰려오는 죄책감과 미안함, 내 하루의 시작 하나 계획대로 하지 못해 불쾌해진 기분, 한풀이랍시고 남편에게 쏟아낸 불평, 불만들 그로 인해 또 칙칙해진 내 기분..답답하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이 막연함에 하루종일 멍하니 있고, 책이나 읽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 내가 꼭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지금 완벽하게 다정하고 친절한 좋은 엄마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나는 애도 보고 살림도 꾸리고, 동시에 돈도 벌어오는, 그런 만능의 슈퍼우먼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은 내 하나 뿐인 아이가(표현이 좀 그렇지만)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이며, 주양육자인 나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이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게다가 지금의 내 모습은 그간 상상하고 기대했던 '나'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괴로움은 이상과 현실 간 괴리에서 온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사실 ‘불확실성’으로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생각없이 들여다 본 인스타 속 멋지고도 완벽해 보이는 엄마가 되지 못해 괴로운 것이었다. 참으로 속이 쓰린 사실이다.


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려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하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 초점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을 하는 편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도 좋다는 걸 받아들여야 겠다. 이 미련을 놓아야 내가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 같다. 어린 아이는 어쩔 수 없다. 하루하루가 다 불규칙하고, 변동성이 많다. 울고 웃고가 5초 간격으로도 일어난다. 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가 규칙성을 원한다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부족하고 모자르다는 것을 인정해보기로 한다. 그래야 내가 못하는 것들(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지만)에 대한 자기방어가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쉬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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