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살림, 그 반복에 대하여
평화롭지만 지독히도 단조롭다
아기와 함께 생활한 지 벌써 두 달하고도 이십일이 지났다. 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은 나름 방귀 좀 꼈던 커리어 우먼을 순식간에 '아기 엄마'로 바꾸어 놓았다. 아침이 되면 아기의 뒤척임, 낑낑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한다. 남편을 배웅하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아기와 놀아주고, 재운다. 이 루틴은 하루 약 4번 정도 반복된다.
아기가 잠드는 시간은 최소 30분에서 최장 2시간이지만, 최장 2시간은 내가 '인간소파' 또는 '인간침대'가 되어야 하니, 사실상 하루 중 내게 주어진 개인시간은 매일 불규칙적인 편이다.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주어진 소중한(!) 짧은 시간들은 핸드폰과 함께 허비되기 일쑤이며, '집에 있는 사람'이 된 마당에 집안을 엉망으로 둘 수 없는 일이니(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기가 있는 집이 비위생적일 수도 없는 일이니) 그나마 생산적인 활동인 집안일을 하게 된다. 보통 그 집안일이라는 건 해도 티도 안나는 청소, 빨래, 요리(조리), 설거지의 무한 반복. 엄청난 난이도는 아니지만, 매일같이 반복 되야만 하는 일들이다.
아기와 함께 집이라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매우 평화롭다(물론 울 때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너무 평화롭다 못해 라디오라도 틀지 않으면 오롯이 나와 아기의 숨소리, 옹알거리는(또는 울음) 소리로만 채워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먹고, 자고, 싸고, 놀고를 반복한다. 희한하게도 이 무료한 반복은 잘도 시간을 먹어치운다. 정신차려 보면 벌써 오전이 다 가 있고, 그렇게 82일간의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과거 내가 지내던 시간은 달성해야 할 목표들이 산재해 있고, 불평과 불만이 흔했다. 살아남기 위한 굽신거림과 자존심을 구겨넣는 소리가 하루종일 들렸다. 거기선 그게 정상이었다. 물론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동료들과의 시덥잖은 잡담, 간혹 회사 내 어르신들과의 인상 깊었던 대화, 숱하게 마셨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귀갓길 남편과 종알대던 회사에서의 일상들... 무려 11년 가까이, 나는 그 공기 속에서만 살아왔다. 회사를 벗어난 시간, 주말은 언제나 '여가시간'이었고, 자기계발과 성장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랬던 내게 이 '단조로운 매일'은 처음엔 당혹스러운 수준이었다. 그치만, 이제 여기선 이게 정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거다. 나는 금새 익숙해졌으며, 아기의 발달 퀘스트에 맞춰 차근차근 적응해나가고 있다. 다만, 이 시간은 너무나 단조롭다 못해 따분하다. 무료하다. 이 일상은 끊임없이 비슷한 활동이 반복된다. 똑같은 동요를 계속해서 부르고, 똑같은 장난감을 쓴다. 내가 하는 말들도 매일매일 거기서 거기다. 심지어 우리는(아기와 나) 언제나 단둘이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이런 일상 속에서 말수를 잃어 갔을까? 꽤나 말이 많은 나인데도 점점 할 말이 없다(정확히는 말할 상대가 없는 걸지도..). 아기가 잠들어 있는 그 짧은 시간 속에 겨우 김밥을 입에 털어 넣고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으면 배경음악처럼 세탁완료 벨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자칫 정신을 놓아버리면 순식간에 온갖 잡생각들이 떠오른다.
내가 뭘하고 있지?'
'뒤쳐지는 거 아닐까?''
'시간을 가고 있는데 이렇게 멍하니 하루하루 보내도 되는 걸까?'
'아기를 키우기 위해 쉬는 거면 무리하지 말자'
'이런 강박을 버려야 해'
'스트레스 받지 말자'의 반복.
돌아가야 할 곳을 떠올리면 정체된 것 같은 내가 걱정인 동시에 서둘러 사람들 속으로 가고 싶지만, 한 편으로는 내 유년시절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될 이 작은 아이가 가엽다. 이런 종잡을 수 없게 떠오르는 잡생각들이 머리에 가득 차서, 집중력이라곤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자꾸 세탁기에 물티슈가 들어가 버리는 건가;;?
누군가가 보면 복에 겨운 나이지만, 오늘 점심을 먹다가 문득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어른의 언어마저 잊어버릴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져;;; 오랜만에 글을 쓴다. 아기와의 시간이 싫은 건 아니다. 어찌보면 좋기도 하다. 내 평생 이렇게 평화로운 시절이 없었다. 이런 귀한 시간을 가지게 된 것에 무척 감사하고 있다. 다만 '나'를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아기'를 생각하느라 '나의 시간'을 놓치는 것 같아서 심란한 거다. 뭐라도 해서, 내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해야 밸런스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이렇게 해야 아기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것 같다.
아기와의 루틴 속에서 살아남기
자, 어쨌거나, 그간의 아기와의 루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내 방법은 다음과 같다. 부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깥 공기를 쐬야 한다. 햇볕도 쬐고. 그래야 우울감도 안 생기고, 숨통이 트인다.
'나'로서 지내던 시절을 지키기 위해서... 집에서 듣는 거랑 느낌이 다르다! 아기가 유모차에서 자고, 바람 산뜻하고, 햇볕까지 비추면 기분전환 제대로다.
복귀를 위한, 또는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마음이 놓인다..-_- 뭐래도 하는 척이라도 해야 맘이 편하다;;;; 화면을 보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산책할 때 이어폰으로 듣는 편이다(내용 정리는 꿈도 못 꿈 ㅋㅋ).
이 시간에 있어서는 주객전도가 없도록, 육아휴직은 이걸 위함이라는 걸 리마인드!
청소는 로봇청소기와 걸레 로봇, 세탁은 세탁기, 건조는 건조기, 식기세척기(얘는 제 역할은 잘 못하고 있지만 어쨌건)가! 문명이 만들어준 혜택은 반드시 누린다. 살림에서 완벽을 추구할 수가 없다. 최대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효율적인 동선/활용 순서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산책을 나가면서 로봇청소기와 세탁기 돌리기, 돌아와서 바로 건조기에 세탁물 넣고 수유/놀이하기. 아기가 잠들면 걸레 로봇을 돌리고 건조기에서 세탁물 빼서 접어두기. 집안일은 직접 해야 하는 것도 쎄도 쎘다. 기본적인 것은 성에 안 차도 무조건 기계에게 위탁하기-_-
8시 육퇴는 아.주. 중요! 8시 이후에 널부러지든, 자기계발을 하든...그건 중요치 않다. '나의 시간'이 되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 신생아 시절부터 잘 지켜지는 중...!
내 생각, 감정, 일상을 글로 남기자. '육아일기'라는 이름 말고, 그냥 나의 글로 남겨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