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선택일까, 확률일까

기댓값으로 이해한 삶의 순간들

by 작가 윤영진

확률 단원 첫 문제는 늘 이렇다.

“동전을 한 번 던질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은?”


답은 간단하다.

이분의 일. 50%. 앞이든, 뒤든 둘 중 하나니까.


그런데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오늘 내가 행복할 확률은… 몇 퍼센트지?


살짝 무리한 질문이다.

왜냐면 이건 정답이 없는 문제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계산한다.

‘좋은 일이 생겼으니 오늘은 70점쯤?’

‘아, 출근길에 커피 쏟았으니… 30점 이하다.’


행복을 숫자로 가늠하려는 순간,

그건 이미 ‘삶’이 아니라 ‘수험생활’이 되어버린다.


나는 SNS 속 사람들을 보며 행복을 착각했던 적이 있다.

하와이에서 찍은 인증샷,

고양이랑 커피 마시는 브이로그,

아이 성적표에 박힌 올백 도장.


그들은 늘 웃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찌뿌둥한가?


답은 간단했다.

그들은 그 찰나만 보여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슬퍼 보이는 사진, 밥 안 넘어가는 날,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후회한 밤은

스토리에 절대 올라오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의 찰나가 우리에겐 ‘전부’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착각한다.

나만 그런 것 같고,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가짜 같다.


나는 불행했던 적이 없다.

대신, 가끔은 행복이

나를 살짝 지나친 적은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고

동생과 단둘이 있던 시간들.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혼자 TV를 보던 저녁.


그때도 행복은 있었다.

동생과 보드게임을 하며 깔깔 웃던 순간.

소시지 하나에 행복해하던 그날.


조금 작았고,

조금 덜 풍부했지만,

행복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의대를 포기한 날,

내 행복의 표본공간이 사라진 줄 알았다.


남들은 묻는다.

“괜찮아? 후회 안 해?”


솔직히 말하자면… 후회는 살짝 했고,

괜찮은 척은 매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의사가 아니어도,

사람을 살리는 일은 가능하다는 걸.


제자가 내 말 한마디에 웃을 때.

딸이 "아빠, 수학이 좋아졌어"라고 말할 때.

그 순간, 나는 확신한다.

이게 내가 택한 삶의 정답이었다고.


요즘 나의 행복은

꽤 안정적인 분포를 가진다.


가족 덕분이다.


일요일 오후, 딸이 말한다.

"아빠, 오늘 볶음밥 해줄까?"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맛있는 건 사실이다.


퇴근 후, 아내가 묻는다.

"오늘 수업 어땠어?"

그 말 하나면, 피로가 녹는다.


행복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하루에 몇 번씩 찾아오는 작은 조건들의 조합이다.


딸들이 웃는다.

아내가 기다린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만족되는 확률?

나에게는 백 퍼센트다.

왜냐하면, 내가 그걸 선택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예약이 안 된다.

프리오더도, 미리보기 기능도 없다.


과거의 행복은 추억이고,

미래의 행복은 희망일 뿐.


진짜 중요한 건 지금이다.

지금, 내가 어떤 시선을 갖고,

누구와 함께 있고, 어떤 마음을 품는가.


행복은 늘 선택 가능한 문제다.

다만, ‘지금’만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본다.


나는 불행했던 적이 없다.

그저, 가끔 행복이

나를 지나쳤다는 걸

내가 몰랐을 뿐이다.


5편 예고: 「불안은 무한 등비수열처럼 다가온다」

처음엔 사소했다.
단 한 번의 실수.
그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마음속에 끝도 없는 수열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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