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공집합일까

공집합은 원소가 하나도 없는 집합이다.

by 작가 윤영진


공집합.


아무것도 없는 집합.
혹은, 서로소인 두 집합의 교집합.


다르게 말하면,
‘서로 존재는 하지만, 아무것도 겹치지 않는 상태’다.


이보다 더 외로운 개념이 있을까?


누군가와 분명히 연결돼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나눌 수 없을 때.
그게 진짜 외로움이다.
그리고, 나에겐 그런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늘 집엔 나와 동생 둘뿐이었다.


부모님은 맞벌이.
아버지는 회사일과 낚시로 바쁘셨고,
어머니는 집안일과 회사일 사이에서 숨 쉴 틈도 없으셨다.


동생과는 친했다.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내가 기댈 어깨라기보단,
내가 챙겨야 하는 작은 존재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비밀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 게.


친구들은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다 털어놓진 못했다.
혼자 삼킨 이야기들이 늘어갈수록,
내 마음의 교집합은 점점 작아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혼자 수학 문제를 풀었다.


숙제가 아니라도,
문제를 풀고 있으면 집중이 됐고,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이 공집합처럼 사라졌다.
나와 문제 사이엔,
명확한 정답이 있었으니까.


대학교 4학년.
복학 후, 다시 외로움이 찾아왔다.


다들 취업 준비로 바쁜데,
나는 게임에 빠져 있었다.


기숙사 방 안.
커튼은 늘 닫혀 있었고,
책상 위엔 초코파이 한 상자와 1.5리터짜리 콜라.
그걸로 이틀, 삼일은 충분했다.


게임 속 내 캐릭터는 인싸였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하소연도 들어줬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말 그대로 ‘아싸’에 가까웠다.


누구와도 진짜 감정을 나누지 못했던 그 시절.
내가 속한 모든 관계는,
서로 교차하지 않는 집합들이었다.


딱, 공집합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외롭지 않다.


공집합이었던 내 마음 안에
원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그리고 카톡 속에서도
늘 나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해.”
이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주고받는지, 이젠 세지도 않는다.


딸은,
내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스터디카페에 다니면서
수시로 메시지를 보낸다.


“아빠, 나 문제 풀었어!”
“오늘 간식 뭐야?”


그 작은 카톡 한 줄이,
내 감정 그래프를 웃음으로 휘게 만든다.


외로움은,
누군가와 교집합이 없을 때 생긴다.


하지만 잊지 말자.
공집합은 ‘영원히 없음’이 아니라,
‘아직 없음’일 뿐이다.


나는 이제 안다.


공집합이었던 시절에도,
내 마음 어딘가에는
누군가를 향한 원소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그건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혹은 미래의 나 자신일 수도 있었다.


지금 나의 마음은 공집합이 아니다.


딸이 웃고,
아내가 묻고,
나는 대답한다.


그 세 가지가 교차하는 지금,
내 인생의 감정 그래프는
비어 있지 않다.


외로움은 공집합일까?


나는 이렇게 정리해본다.


한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공집합이었던 나의 마음은,
이제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 찬 집합이 되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이제 ‘함께 있는 나’를 살아간다.


다음 편 예고

: 분노는 어느 순간 폭발하지 않는다.
늘, 조용히 축적되다가
한순간, 지수함수처럼 급등한다.
그 곡선의 기울기를 낮추는 방법.
8편. 분노는 급등하는 지수함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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