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과 노력 사이
2025년 12월 20일 한국시각 4:02 AM
여기서 재수란 운(運)을 뜻한다.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자랑 같이 들릴 수가 있는데, 상당히 많은 부분 운이 좋았다. 삶에서 운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혹자들은 나의 재수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매우 재수 없을 것 같고, 실제로 나의 아내는 필요할 때 귀인이 척척 나타나는 나를 보며 상당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운을 중요시하는 듯하다. 그래서 사주나 점을 보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일 수 있는데, 운의 중요성을 알기에, 혹은 타고난 운명의 중요성을 알기게 그렇게 운에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한창 뜻을 세우고, 하고자 하는 일에 매진할 무렵인 20대 초 중반. 교육심리학 관련 수업을 들으며 귀인이론을 접할 무렵, 한 가지 신념이 생겼었다. 무엇이 잘되지 않았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를 나의 노력 부족으로 볼 것인가(내적 귀인), 운이 나빠서 혹은 상황이 좋지 않아서(외적 귀인)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였다. 당시에도 나는 상당히 자기주도성이 높은 편이었기에, 외적 귀인은 무시할 정도로 당연히 '나는 내적 귀인 성향이지!'라는 매우 얕은 수준의 개똥철학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연구 결과들에서도 나오듯, 내적 귀인을 갖고 있을 때 자신의 어떤 것을 통제할 수 있을지를 찾기 때문에 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잘 된 대부분의 것을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진정으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여 여러 여건상 잘 풀리지 않는 분들의 인생을 가볍게 재단하는 등의 오만한 행동으로 타인의 삶에 공감을 못하고 상처를 주는 일들이 발생한다. 우리의 삶에 타인이 미치는 영향, 환경이 미치는 영향, 운이 작용하는 것을 항시 자각하지 않는다면 오만방자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삶의 많은 부분이 오만했고,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주었을 상처에 미안함을 느끼며 반성한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전략을 잘 짰기에, 좋은 멘토를 만나서, 목표가 명확했기에, 내가 환경 선택을 잘했기에..." 등의 이유를 그간의 성공의 요인으로 포장할 수 있겠지만, 핵심은 운인 것 같다. 물론 준비도 부단히 했다. 여기서는 재수 없게 운 좋은 수많은 사건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독자들께서 이것이 노력의 결과인지 운인지 판단해 주시면 좋겠다. 운이라면 이는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조상이 쌓은 덕으로 특정 날에 태어나서 이런 운명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혹은 내 전생이 관련디어 있지는 아닐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는데, 하늘이 돕는 것일까?
#1. 지하철에서 만난 인연
석사 과정 때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과 경력 닻 유형의 관계"라는 논문 주제를 갖고 골몰하며 일산과 서울을 오가고 있었다. 통학을 위해 왕복 3시간 매일같이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하철은 나의 숙제하는 공간, 문제 푸는 공간, 영어 듣는 공간, 때로는 잠을 보충하는 공간이었다. 진득하니 책상에 앉을 시간이 없었기에, 20여 년 전 나는 항상 노트북을 휴대하며 다녔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한국에는 경력 닻 관련 연구가 많지 않은 상태기도 하고, 연구자도 많지 않아 문헌 연구에 어려움을 느끼던 때였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노트북 가방을 무릎에 놓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렴풋이 어느 두 남녀가 누구누구가 경력 닻 연구를 했는데,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귀가 번쩍 뜨였다. '아니, 한국에 관련 연구자가 별로 없는데, 대체 이 분들은 누구지?' 나는 그분들에게 말을 건네야만 했다. '저.... 안녕하세요? 죄송한데요, 저... 지금 경력 닻 관련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는데요...." 알아보니 두 분 중 여성분이 얼마 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관련 주제로 받고 한국에 들어오신 것이었다. 나의 친한 선배의 친구 셨기도 했고...
감사하게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며 수집한 자료들을 모두 내게 넘겨주시겠다 했다. 내 기억으로는 바로 다음날 그분을 찾아뵙고 모든 자료를 넘겨받았다. 석사 논문과 이를 아티클화 하는 부분에서 검토와 조언까지 주셨던 감사한 경험이 있다. 이때의 운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2. 취업 운 1: LG 디스플레이 편
군대 갔다 온 것을 제외하면, 석사 마친 후 나의 첫 직장은 LG 디스플레이였고, 박사 마친 후 첫 직장은 모로코에 있는 Al Akhawayn University in Ifrane이었다. 사실 많은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재밌는 사실은 나의 첫 직장 들은 내가 먼저 지원하여 뽑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원해도 될까 말까 한데,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붙었다니 재수 없지 않기 어렵다.
LG 디스플레이는 당시 LG.Philips LCD라는 명칭의 회사였다. 석사과정 막학기, 취업에 관심을 갖고 여러 군데 지원하던 중이었다. 054로 시작하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투리가 심한 억센 경상도 중년 남성의 말투였다. 남성: "여기.. LG. Phlilips LCD인데요, 면접하러 오이소!" 나는 지원한 적도 없는 금시초문 회사였다.
나: "네? 어디라고요? 잠깐만요... 저는 회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요.., 거기가 어디에 위치해 있나요?
남성: "구미입니다. 경~북 구미."
나: "네? 아... 죄송한데요, 저는 관심 없습니다." 마치, 내게 원치 않는 물건이라도 팔려고 다가오신 것인 양.
남성: "네, 알겠씹니다. 뭐."
실시간 검색을 해봤다라면 좋았으련만, 전화를 끊고 검색을 해보니, 당시 LG 그룹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삼성을 꺾는 LCD 쪽으로 세계 1위를 하고 있는 탄탄한 회사였다. 본사 기능이 구미에 있고, 현장과 밀접하게 HRD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World's No.1이라는 것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었는데, 상당히 끌렸다. 파주에 공장도 짓고 있어 파주로 올라올 가능성도 있으니, 일산에 사는 나로서는 몇 년만 고생하면 더 좋은 결과가 올 수도 있는 상황.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드렸다.
나: "죄송합니다. 제가 잘 알아보지도 않고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면접 볼 수 있을까요?
남성: "네. 면접 오이소."
그리고는 나는 지원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하게 되었다.
상황은 이렇게 된 것이었다. 면접 제안이 오기 1-2달 전에 교내에 LG 전자에서 개최하는 취업설명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LG 전자가 좋아 보이기도 했고, 나는 인사 관련 직무를 원하니 설명회가 끝난 후, 설명회에서 소개를 하셨던 인사팀장님께 따로 찾아가서 자기소개를 하고, 이메일 주소를 받아서 직접 나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만들어 놓은 것을 그분께 보내드려 놓았었다. LG 전자와 LG.Philips LCD가 인재풀을 상시 공유하지는 않는데, 그분이 보시기에 괜찮아 보였는지, LG.Phililips LCD의 연수팀으로 내 정보를 넘긴 것이었다.
#3. 취업운 2: Al Akhawayn University in Ifrane 편
박사학위를 마치기 직전 아이가 태어났다. 무슨 깡이었는지 졸업 이후에 풀타임 잡을 잡아놓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하던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적게 받더라도 하던 연구의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하며 한 학기에 한 과목씩 티칭을 하며 지내던 중, 미국의 교수직, UN의 HRD 스태프 포지션, 커리어 분야 사기업,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조직개발 컨설턴트 포지션, World Bank 등 전방위적으로 지원서를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Higheredjobs.com에 재미있는 공고가 난 것을 보았다. 교수직이었는데, 지도를 보니 북아프리카에 있는 어느 알프스 같은 산골짜기에 있는 동네에 있는 학교에서 HRD 전공 교수를 뽑는다는 것이었다. 모로코 Ifrane에 있는 Al Akhawayn University in Ifrane이다. 지중해를 가로질러 배 타고 30분이면 스페인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유럽과 매우 가까운 조건이기도 했다. 이슬람 문화권이기도 하고, 아프리카라니... 흥미와 모험심이 발동했다. 궁금증이라도 해소하고 싶었다.
나중에 지원을 하더라도, 사전에 공고에 나와 있지 않는 몇 가지를 짚을 필요가 있어 커미티 체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이 포지션에 관심은 있는데, 지원을 결정하기 전에 이 포지션이 12개월 계약인지, 한 학기에 몇 과목을 가르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에 대한 정보 없이 그냥 질문만 보내면 답변을 못 받을 수도 있어, 나의 CV(학계에서 쓰는 긴 이력서)를 첨부했다.
1주일 여가 지난 후, 거의 잊고 있을 무렵, 답신이 왔다. 어떤 조건의 포지션일까를 궁금해하며 이메일을 열었는데, 답신이 "Congratulations"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엥? 지원도 안 했는데?" 인터뷰 초청을 하기로 결정이 되어서 축하하며, 빠른 시일 내에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현재 근무하는 학교의 조직개발 컨설턴트 자리의 2차(최종) 면접을 앞둔 상황에서 갈등이 되었다.
일단 인터뷰에 응하고, 매우 빠른 속도로 오퍼레터를 받았다. 나의 비전 중의 하나인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경험은 필수처럼 느껴졌다. 나의 가슴은 이미 모로코에 가 있었고, 나의 모든 반응은 합리화 모드로 전환되었다. 아내를 설득하고 그렇게 1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007 작전하듯, 구 동독의 Chemnitz라는 곳 까지 가서 중고차를 구매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을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모로코 탕헤르 항구에 내려서, 아틀라스 고산지대 (해발 1600미터)에 위치한 Ifrane이라는 곳에 도착해서 생활을 시작했다.
성찰:
아... 이렇게 적다 보니, 아무리 운이 좋았다 하더라도, 과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반문을 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오지에서의 생활이었으므로 학교의 입장에서 나의 지원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으리라. LG.Philips LCD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방근무는 기피하는 분위기가 강했기에, 현실의 편안함을 고려하는 분들은 아무리 회사가 World's No. 1이라 한들 잘 고려하지 않는 직장이었기에 나는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운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운도 작용했지만, 일련의 선택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가 그리는 미래에 퍼즐조각이 맞아갈 때에만 선택을 했고, 선택한 환경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4. 취업운 3: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모로코에서 3년 차에는 이미 HRD 전공의 주임교수로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있던 학교는 3년에 한 번씩 전공별 외부 평가를 받는데, George Washington University와는 자매학교처럼 관계가 맺어져 있어서 그쪽 학교의 교수님들이 우리 쪽에 1주간 오셔서 과의 곳곳을 들여다보셨다. 우리 교수들의 CV도 검토하고, 수업참관도 하고, 학생들, 졸업생들과 미팅도 하고 하며. 그러면서 많은 미담도 들으셨을 것이다.
정확히 금요일에 모로코를 떠나셨는데, 모로코로 오셨던 교수님 한 분으로부터 월요일에 이메일을 받았다. 나는 친절한 환대에 대한 인사겠거니 했는데, 내용은 "우리 전공에 사람을 뽑습니다. 공고를 공유하니 관심 있는 사람에게 공유해 주세요." 그리고 젤 마지막 한 줄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If you are interested, please let me know." 의미심장했다. 당시 아내도 아프고, 가족과 떨어져 살기도 하며 미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을 때였어서, 재고 없이 답신을 보냈다. "지원하겠습니다." 그렇게 또 일이 차근차근 진행이 되어, 그분들은 이미 나를 알기에 1차 면접은 생략, 2차로 캠퍼스에 방문하여하는 Job Talk (연구 프레젠테이션)과 다양한 분들과의 면접을 통해 채용이 확정되었다. 모로코에서 고생을 많이 했는지, 합격 소식을 접하고 목 놓아 울었다. 왜 연예인이나 체육인들이 수상을 하면 눈물을 흘리는지 그제야 이해했다. 재밌는 것은 매우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고, 정말 우연히 이 기회가 내게 찾아왔던 것이다. 예정되어 있었던 첫 처럼...
#5. 취업운 5: Penn State University
그렇게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미국에 돌아왔고, 이제는 정착할 마음으로 대출을 왕창 받아 워싱턴 디씨 근교에 집도 샀다. 잠시 떨어져 있던 가족과도 다시 함께 지낼 수 있었고, 그렇게 희망차게 새 출발을 했다. 8월 말에 학기 시작을 했는데, Penn State(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의 나의 지도교수셨던 William Rothwell교수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Penn State에 자리가 났으니, 지원을 고려하게." 모로코에 있을 때에도 학교의 허락을 받아 Penn State의 Master of Professional Study in Organization Development and Change 프로그램에서 Graduate Faculty로 과정도 개발하고 강의도 하고 했었고, George Washington University로 오면서 여력도 안되거니와 학교의 불허로 Penn State 티칭을 중단한 상태였다. '이제 막 시작했고, 이렇게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고, 집도 샀는데 이 자리는 내 것이 아닐 거야'라는 생각이 강했다. 지도교수님께 "이제 막 여기서 일을 시작하여 잘 모르겠지만, 고려하겠습니다."라는 정중한 답변을 드리고,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지원을 하지 못했다.
2개월여 후, 또 이메일이 왔다. 이번에는 지원을 고려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Joon, you should apply"라는 강경한 태도셨다. 심각성을 눈치채고, 일단 지원하겠다고 하고, 지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절차를 충실히 밟고, 최종합격에 이르렀다. George Washington University의 동료들과 학장님께서 많이 배려해 주셨는데, 죄송함을 안고 떠나게 되었다. 어떻게 설명하지? 고민이 되었으나, 사실 답은 명확했다.
George Washington University의 자리는 주기적으로 계약이 갱신되는 계약직이었고, Penn State의 자리는 종신고용이 보장되는 조건이 될 수 있는 tenure-track 자리였다. 사실 교수들에게 있어서 이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인지라 바로 이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고민을 했던 이유는 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는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30년 넘게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대가들이 몇 계셨고, 계약직 교수가 학과장도 할 정도로 평등한 구조가 있었다. 호기롭게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기도 했던 때였다.
내가 George Washington Univerisity에서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Penn State으로 올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거기에서 근무했기에 더 좋은 조건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P.S. 지하철에서 만난 인연 전에 발생한, 군생활 중에 있었던 정훈장교 보직을 맡는 운에 대한 또 다른 스토리는 라이프 크래프트 책에 수록되어 있다.
이상 재수 좋은 커리어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운이 좋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특정 영역에서는 혹자의 눈에는 불행이 있었을 수 있고요. 저는 일단 커리어 차원에서는 복 받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 가질 수 없기에, 주어진 삶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삶에서 운의 비중이 얼마나 차지한다고 보시나요?
글 마침 시각: 2025년 12월 20일 (한국) 5:48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