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전시를 한다고 포스터를 찍었다. 첫 전시라 돈을 들여 포스터를 의뢰하고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와 나름 자신감이 붙었다. 날짜를 못 박은 건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다짐일 수도 있다. 반드시 정해진 날짜에 오픈을 하리라.
오픈 전날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평범한 음식점도 아니고 물건을 파는 가게도 아닌데 나 홀로 오픈런을 기대하는 건가. 누군가는 공휴일에 놀러 갈 생각으로 설렐 때 나는 다른 불안감으로 설렌다.
잠을 어떻게 잔 건지도 모르게 6시에 눈을 뜬다. 일어난 김에 집을 나선다. 기도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듯싶었다. 감사한 일인지 8시부터 첫 손님을 맞게 되었다. 예전에 같이 일한 상사가 멀리까지 찾아왔다. 궁금하다는 이유였다.
한동안은 이런 일들의 연속이리라. 누군가 오고 축하를 받고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앵무새처럼 설명을 반복하고 높은 텐션을 유지하면서 내가 꾸민 공간을 설명하고 서로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드는 시간들.
결혼이 아닌 사업을 시작한 덕분에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들도 편하게 찾아오기도 했다. 친구와 남편과 아이들이 다 함께 찾아와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공간이 끊어진 옛 인연들을 이을 무언가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그러나 정작 슬프게도 절친들과는 더 멀어지고 있었다. 폭염에 벽에 미장을 하느라 진이 빠지는 날들을 보낼 때 친구는 아이를 낳았고 다른 한 친구는 육아로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도저히 같은 어려움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시간이 명확한 선으로 그어졌다.
친구들은 아이들의 소식을 실시간 업뎃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친구의 사업이나 오픈 따위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신생아가 침대에서 떨어지고,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실려가는 사건이 당연히 더 중요하다.
매일 통화하면서 일상을 이야기하던 친구는 어느샌가부터 전화연결이 안 되고 나는 말을 잃는다. 이제 어디에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을 때 마침 다른 존재들이 틈을 비집고 올라온다. 말을 잃은 나는 저항한다. 더 이상의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싶다.
그럼에도 사업을 벌인 모순적 상황에서 전업작가의 생활고에 대한 이야기나 갤러리의 기득권과 착취 구조에 대한 작가들의 성토를 들으며 함께 분노한다. 초대한 손님들과도 안부를 나누며 나는 포화상태가 되어간다.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정신없는 오픈 첫 주를 보내고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살기 위해 선택한 일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늘이 도와서 가능했다던 어쩌면 무책임한 이야기를 나는 떠들어댔다.
사실이 그랬다. 뉴욕에 다녀온 지 일주일 만에 공간을 계약하고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브랜드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로 한주를 보냈다. 조급한 마음으로 인테리어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덕분에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반복했던 생과 사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들 그리고 수십 년간 나를 옭아매고 괴롭혔던 과거의 사슬에서 어느샌가 풀려나고 자유롭게 되었다. 그야말로 저절로 일어난 일이었다.
오픈 첫 주가 지나자 감사한 마음은 어느새 걱정으로 변해있다. 누군가의 발길이 없는 시간들, 공허로 가득 찬 공간에 대한 근심이 그림자 지듯 삶에 내려앉는다. 누군가 알려준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카페를 가입하면서 허기를 달래 본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자영업자로 지킬 앤 하이드 같은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이 후회보다 급하게 찾아오는 것에 대한 무게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를 뿐이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아서 예약이 없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쏟아지는 전시회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고 내일의 손님을 찾아 헤맨다. 다른 방법은 잘 모르고 제일 쉬운 방법으로 손님을 찾는 게으름에 대한 자책도 하지만 이번주까지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