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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명록 Sep 22. 2023

지하철이 위로가 되는 날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피곤하다고 느끼는 어떤 날에 지하철에서 함께 퇴근하는 무리들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외로움과 공허함이라는 감정이 사람 냄새를 맡고선 안정감을 느끼며 마음이 위안을 받는 것이다.


사업장에 손님이 찾아와 그림을 그리는 어떤 날에는 그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성취감 또는 기대감을 만족시켜 줄 요량으로 분주하다. 손님이 찾아온다는 것은 썩 반가운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를 주고 나면 하나가 사라지듯 내게 있는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맺는 일의 연속이다. 오픈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 계약을 하고 인테리어와 집기를 들여놓고 오픈전시를 준비하고 출퇴근을 하면서 손님을 맞던 지난 두 달간의 여정을 돌아본다.


처음보단 차분해지고 여유가 생긴 지금은 사업의 수익구조와 운영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당장의 수익이 나지 않는 것을 조급해하지 않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자연스레 사람들이 알고 찾아올 것이라고. 적어도 직장이 있고 고정수입이 있는 나라면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감정은 기계가 아니고 불규칙적으로 운동한다. 풍선처럼 어디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오른다. 인테리어와 오픈전시를 하는 동안 눌러 놓았던 감정들이 행사가 끝나자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난 8년간의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대개 감정은 의식보다 빠르다. 몸을 일으키기가 버거울 때 쯤이면 이미 우울의 구간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나른한 정신이 생각을, 몸을 잠식해 나갈 때 해야 할 일들을 나는 안다. 밥을 제때 먹고 적당히 사람도 만나고 가볍게 운동을 하면서 일상을 버티는 것이다.


작년 말쯤 아니 혹은 훨씬 전에 못 견디게 우울한 날들이 시작되었다. 가만히 있는 것조차 숨 막히고 온몸이 우울함에 미쳐 날뛰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조용히 한 가지를 다짐했다. 내 삶의 쓰임은 이제 끝났다고, 올해는 내 생의 마지막 해라고 결정을 내렸다.


사건이 있고 무사히 새해를 맞은 나에게 상담사는 도와주겠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 그런 자살 충동은 언젠가는 지나간다. 상담이든 입원치료든 나를 붙잡아 놓고 사로잡힌 생각이 걷혀지길 기다리자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나는 자살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는 기질이라 말하고 의사는 병이라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의지라 하고 어떤 사람은 치료라고 한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고 나는 먹는다. 출근과 퇴근을 하고 빨래를 한다. 그렇게 나를 당연한 질서에 구기어 넣는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시작하게 된 사업은 겉보기엔 자살만큼이나 충동적이지만 오래도록 품어왔던 소망일지도 모른다. 우울증은 우울한 감정과 무기력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정반대의 행동을 할 수 있다. 나는 우울증이 매일의 현실에서 닿지 못하는 이상을 그리다 생긴 상사병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과는 달리 남들이 이루지 못한 이상을 꿈꾸는 것은 아주 치사하고 모순적이다. 이상은 우울을 동반하는 동시에 희망도 준다. 꿈은 꿈대로 꾸지만 현실에서는 찢기는 듯한 노력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 과정을 생략해서 살다 보면 말 뿐인 이상과 공허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남을 탓할 수도 조건과 상황을 탓할 수도 없다. 그저 내 자신, 나를 탓할 뿐이다. 혹여나 나에게 입은 있지만 하지 못한 말이 많아서 울지 못한 시간이 많아서 눈으로 보고도 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했던 시간 때문에 라고 생각해 보지만 찾지 못할 질문을 던지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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