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말한다. “넌 참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사는구나” 또 누군가 말한다. “넌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잖아.” 그들의 현실에는 아마도 없을지 모를 일을 두고 부러운 듯이 툭 던진 말이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란 정확하게 무슨 일을 뜻하는 것이며 ‘다’ 라는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건지 짐작이 가진 않는다.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은 어째서 즐거워만 보이는 걸까.
나는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똥인지 뭣인지 찍어먹어 봐야 안다. 다치든지 아프던지 뭔가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사자가 먹잇감을 찾듯 어떤 황량한 곳에서도 흥미로운 일들을 사냥해 낸다.
짐승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냥하기를 멈춘다면 짐승이 아니거나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또 한편 인간 실존과 공생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사냥하듯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
사업을 시작한 것을 두고 사람들의 반응은 양갈래로 나뉜다. “축하해. 고생했네. “라는 진심 어린 말과 “네가? 왜? 너 진짜 자유로운 영혼이구나?” 식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어떤 것도 아닌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대게 직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이 크거나 중요해 보이는 일을 할수록 더 그렇다. 나에게는 지난 8년이 그랬고, 정말 그런 줄로 알았다. 그런데 매일 고충을 나누며 위로를 주고받던 이들은 어느새 사라져 있다.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관계의 양상은 소속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늘 가변적이다. 아마도 나는 가족이 흩어지면서 한 번, 오랜 직장을 나오면서 또 한 번, 사업을 시작하면서 다시 또 배우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그리는 동그라미는 더 작아진다. 관계의 주체는 ‘나’이며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는 낮아진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그들은 이유를 모를 수도 있고 그 자신이 원 밖에 있다는 것조차 모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