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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Mar 24. 2024

시간 방랑자

1. 오늘의 문장     


나는 그와 함께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해 내 생각을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출처.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장편소설/용경식 옮김

    

2. 문장에서 시작된 내 삶의 이야기     


몇 번째였는지. 지친 목소리로 일어나라고 울리는 알람 소리에 그제야 눈을 떴다. 휴대전화를 눌러 시계를 확인했다. 6시 5분. 또 다. 이번 주만 벌써 두 번째다. 몸이 지친 탓일까. 마음이 기진한 탓일까.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잠시 고민했다. ‘이왕 늦은 거 그냥 더 잘까? 아니야. 그래도 왼손 필사와 책 읽기는 해야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어.’ 생각과 달리 눈은 자동문처럼 스르르 감겼다.


‘지그…. 미 아…. 니…. 면….’


찰나에 암전이 뇌리를 덮쳤다. 잠시 후 눈을 뜨고 시계를 다시 보았다. 6시 32분. 꿈결을 헤매던 몸을 올가미로 걸어 순식간에 낚아채듯 일으켰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곧장 거실로 나왔다. 정수기로 뜨거운 물을 한 컵 가득 받았다. 컵을 들고 허둥지둥 아이 방 책상에 앉았다. 바로 왼손 필사를 시작했다. 흐트러진 정신이 손끝으로 전달되었다. 방금 쓴 글씨를 보니 처음 딸의 머리를 땋아주었을 때가 떠올랐다. 삐뚤빼뚤하고 글자의 간격도 영 엉성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6시 46분. 책을 펼쳤다. 오늘따라 내용이 더 눈에 안 들어왔다. 한 문장을 가지고 세 번째 씨름판을 벌이자 방금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속상함이 후두두 떨어졌다.


요즘 내 상태. 괜찮은 걸까? 일찍 일어난 날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는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책을 펼치고 30분 넘게 인스타그램 릴스 영상과 유튜브를 봤다. 지난 며칠간 글도 쓰기 싫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무기력. 아무래도 그분이 다시 오셨나 보다. 시간이, 헛되이 사라지고 있다. (임아. 나를 두고 떠나지 마오.)


현대인들 사이에 시간 대세론이 형성되면서 많은 이들이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목표가 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가장 가혹하다. 가야 할 길은 까마득한데 속도는 턱없이 부족해 안달이 난다. 처음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의 내가 그랬다. 지금은? 요즘의 나는 가지고 있던 열정이란 자원을 다 써버린 느낌이다. 기후변화로 사막화되는 지구처럼 감성도 바싹 메말라간다. 시간의 사막에 있는 모래 수렁에 깊이 빠져 버렸다.


동시에 내 안에서는 다른 감정이 솟구친다. 사람이 가끔 그럴 때도 있다는 말이 광고문구처럼 가슴에 쟁쟁히 들린다. 여백을 만들어야 삶에 색칠할 공간도 만들어진다고 합리화해보기도 한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삶에 반감도 올라온다. 순간, 내 안의 내가 메아리를 만든다.


‘그냥 이렇게 살게 내버려둬!’


생각이 이쯤에 도달하면 더는 이런 상태를 단순 무기력이라 부르기 어렵다. 무기력이라는 무기에 찔리면 머지않아 가슴이 타들어 가는 불안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살게 내버려 두란 말의 속뜻이 이렇게 살기 싫다인 것처럼 내 무기력의 진짜 이름은 불안감이었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이틀 전에 썼었다. 처음 글을 썼을 때의 결말은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손을 바삐 놀리면 시간은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로 들어간 시간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썼다는 괴로움이 아닌 그간 해낸 일들(가령 늘어난 내 왼손 필사 실력과 꾸역꾸역 써 내려간 몇 안 되는 글 같은 것들 말이다)이 시간의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결론지었다.


두 밤을 보내고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미 지었던 맺음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금속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도금한 목걸이를 목에 걸었을 때처럼 껄끄럽고 거북스러웠다. 내가 쓴 글 같지 않았다. 글이 내게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마늘을 으깨듯이 솔직한 마음을 다시 갈고 싶었다. 마음이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다졌더니 숨었던 불안이 그제야 스스로 얼굴을 드러냈다.


길 잃은 소녀처럼 떨고 있던 불안을 마주하고 가만히 안아주었다. 괜찮다고.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고 소리 내 중얼거렸다. 눈물이 샘물처럼 솟아올랐다. 마음에 갈증이 사라지자 힐끗 여유가 보였다. 진작, 이렇게 했었어야 했다.


항상 무언가를 이루며 살 필요는 없다. 성취만을 생각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때 죄책감만 키워주니까. 그보다 중요한 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시간이다. 자기 인생을 위해 산다면 시간도 결국에는 내 편에 설 테니까. 때로는 바람을 맞이하듯이 시간을 지나쳐도 괜찮다.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_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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