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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Apr 03. 2024

슬퍼하는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 편지

“우리 아빠…. 돌아가셨어.”     


금요일 오후. 대학 동기 단톡방에서 친구 S가 불쑥 말했다. 얼마 전 S는 아버지 병환으로 재활병원에 함께 다니느라 정신없다는 얘길 했었다. 이후 한동안 그녀의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우리는 S가 바빠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별다른 말이 없었기에 아버님의 상태도 조금씩 나아지시는 줄로만 알았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황이 없을 S에게 장례식장이 정해지면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몇 시간 뒤 받은 장례식장의 주소는 예상대로 충북에 있는 S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머지 친구들끼리 연락해서 다음 날 장례식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저녁에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가자고 말했다.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퇴근하자마자 남편의 차로 딸까지 데리고 충북 장례식장으로 갔다. 다행히 예상보다 차가 많이 막히지 않아 우리는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자마자 분향한 뒤 영전에 절을 했다. 상주와 친구에게도 맞절한 뒤에야 친구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영정 사진을 보자마자 눈물을 떨군 내게 S는 먼 길 와주어서 고맙단 말을 담담한 고백처럼 했다. S의 안내를 따라 테이블에 앉으니 제주도 사는 A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가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 사는 N, 부산에 사는 J도 왔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다 같이 모인 자리가 언제였던가. 서로 사는 게 바빠 다음에 꼭 보자고 말만 했었지, 실천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육개장을 먹었다. 그간 서로의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도 말했다. 딸의 돌잔치 때 마지막으로 아이를 보았던 S의 남편은 그 작은 아기가 이렇게 자랐느냐고 말하며 술로 달궈진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곧 대학 시절 추억 얘기도 소환되었다. 다 함께 사주 보시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던 일, 수업이 끝나면 들르던 술집 얘기는 볼 때마다 꺼내도 절대 질리지 않았다. S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기까지의 사연을 말했을 때는 슬픔이 재차 올라와 분위기가 일순 숙연해졌다. 내가 오래전 돌아가신 울 아빠 생각이 난다고 하자 S가 대답했다.      


“너희 아빠 장례식에 갔을 때만 해도 내가 철이 없었지. 그때는 부모의 장례가 이렇게까지 큰일인 줄 실감하지 못했어. 엄마는 계속 우시고 나도 눈물이 나네.”

차분한 목소리로 큰일이라고 표현하는 S의 비통함을 잘 알기에 나도 그 슬픔을 조용히 삼켰다.      


모든 죽음은 슬프다. 그중에서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연결된 사람의 죽음은 슬픔의 깊이에 끝이 없다. 슬픔의 농도가 너무 짙어서 나와 슬픔이 구별되지 않는다. 마치 내가 슬픔 자체가 된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괴리감도 발생한다. 현실에 속한 슬픔이란 이름의 내가 마치 넓은 바다를 떠다니는 배에서 유출된 검은 석유 같다. 갑자기 영정 사진 속 부모가 언제든지 내게 웃어줄 것만 같다. 수화기를 타고 왔던 밥은 먹었느냐는 정겨운 잔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쟁쟁하다. 실제로 다신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하늘의 무심한 푸르름에 어깨는 짓눌리고 땅의 단단한 냉정함에도 쉽게 상처받는다.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다가 고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갑자기 생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친구가 이제 보낼 나날들에 내 과거를 쏟아부었더니 짙은 슬픔의 냄새가 진동했다.


A는 제주도행 비행기 시간 때문에 가장 먼저 떠났다. 남은 친구들도 기차 시간이 가까워져 갔다. 우리가 유일하게 차를 가져왔었기에 남편에게 부탁해 친구들을 기차역에 내려주었다. 기차역에 내리면서 인사를 하는데 친구들이 딸의 손에 용돈을 쥐여주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냉큼 돈을 받는 딸에게 친구들은 마냥 웃었다. 6월에는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차에 올랐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딸이 말했다.     


“엄마. 근데 아까 장례식장에서 까만 한복 입은 이모도 나한테 용돈 줬어.” 그 말을 듣는데 장례식장에 괜히 아이를 데려가서 친구 모두에게 신세만 지고 온 기분이 들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운전하던 남편이 우리도 한참 가야 하니 휴게소에 들르자고 말했다. 곧 휴게소로 들어가 화장실도 들리고 편의점에서 먹거리도 샀다. 편의점에서 나와 차로 걸어가는데 딸이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엄마. 왜 그런 날 있잖아. 무얼 봐도 다 예뻐 보이는 날. 난 오늘이 그래.”      


딸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에게 오늘은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었고, 친구의 애통함이 잔뜩 내 몸에 묻어난 날이었기에.


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 딸은 모처럼 엄마 아빠와 차 타고 나들이를 갔다. 가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봄 햇살은 눈이 부셨다. 지나치는 가로수에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은 밝은 빛으로 선명한 연두색드러냈다. 이모라고 부를 수 있는 엄마의 친한 친구들을 보았다. 엄마는 친구들과 추억을 들추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엄마에게 편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모들이다. 이모들이 용돈도 두둑하게 주었고 휴게소도 들러 맛난 것도 사 먹었다. 저 멀리 산 위로 보이는 별은 탐스럽게 빛났다. 딸에게는 오늘이 좋지 않은 날일 이유가 없었다.      


죽음을 위로하는 자리에도 생명의 빛은 자리한다. 아이는 장례식장에서 죽음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았다. 남겨진 가족의 슬픔으로 쓸쓸했던 공간은 공감과 위로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찼다. 고인을 보낸 가족은 그 마음이 고마워 눈물을 떨구는 와중에도 애써 웃었다.


내일 친구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쓰러질 듯 오열할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리움에 잔뜩 부은 얼굴로 겨우 걸어오겠지. 그러다 집에서 사랑하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그나마 남은 힘을 다해 아이를 안아주지는 않을까. 눈물로 흐려진 자기의 눈과는 다른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서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테니까.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인 아버지를 이제 볼  없지만, 그의 생명이 자신에 전해졌듯이 자신의 아이에게로 이어졌다는 것을 아이의 보드라운 살을 통해 생생히 느끼면서.


S는 생이 있으면 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맞는다.

삶은 죽음과 끝없이 함께 돌아간다.     


p.s. 친구야. 너의 슬픔을 함께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나의 생에 의미를 더해주는 너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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