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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된 사람들

✒️ 2025.10.24. 라라크루 금요문장

by 안희정

1. 오늘의 문장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주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행복하게 해주는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대단한 걸 도모하기 보다

그저 산책길에 동반자가 돼주는 거,

주머니에 핫팩을 하나 넣어주는 거,

뭐 그런 거지요

행복한 인생, 뭐 별건가요?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


2. 나의 삶 속 문장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알고 지낸 건 꽤 오래되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 그녀를 처음 본 건 2019년, 그녀가 시작한 온라인 독서 모임을 통해서였다. 우리는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고 매주 일요일 저녁 한 시간 동안 영상으로 만나 책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시간이 흐르자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었다. 가끔은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두고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좋아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서. 이유는 달랐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고단함을 털어놓고 서로를 위로하는 그 시간이 좋아서 모임에 계속 남았다.


그사이 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갔다. 개중에는 꽤 오랫동안 참여한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엔 그들도 떠났다. 마침내, 모임에는 그녀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그녀가 물었다. “독서 모임, 계속할까?”.

내가 대답했다. “응, 난 계속하고 싶어.”

그녀가 말했다. “그럼 그만둘 이유가 없지.”


이후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직장을 그만두고 꿈꾸던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간 그녀의 계획을 들어왔던 터라 진심으로 응원했다. 새 사업은 신체기능과 인지력을 동시에 향상할 수 있는 일종의 운동센터였다. 사업 신고, 기계 구매, 인력 문제 등 많은 일이 생겼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녀는 잠시 독서 모임을 쉬자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줘. 사무실이 생기면 놀러 갈게.”

나는 그렇게 그녀와 잠시 이별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떴더니 아침이 온 것처럼 두 달이 지났다. 인스타그램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그녀의 사업 홍보 게시물을 보았다. 임시 전시 공간을 구했고, 곧 사람들을 초대해 기구를 체험하게 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꼭 놀러 가겠다고 말했었는데, 어느새 잊고 지냈다. 순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그녀에게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톡으로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물었다. 그녀는 아직 할 일이 많지만, 조금씩 헤쳐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언제 놀러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방해라니. 꼭 와주면 좋겠어!”


그 말에 바로 약속 날짜를 잡았다. 월요일 저녁, 퇴근 후 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는 사이, 해는 넘어가고 하늘은 옻칠한 것처럼 한층 어두워졌다. 그녀의 사무실 근처에 도착했는데, 입구를 찾지 못해 잠시 당황했다. 그녀에게 전화했더니 금방 내려오겠다고 대답했다. 곧 내 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주로 화면으로만 보던 얼굴을 실제로 마주하니 반가움이 배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꼭 안으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건물 안은 퇴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조용했다. 그녀의 안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그간 말로만 듣던 기계들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버튼을 누르며 다양한 운동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워 처음엔 실수를 연발했다. 몇 번 해보고 익히며 곧 운동을 즐겼다. 이마에 땀이 살짝 맺힐 때쯤이 되자, 배가 고팠다.


우리는 근처 치킨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치킨집은 퇴근한 직장인들로 북적거렸다. 얘기하기 좋은 장소로 가려고 했는데 좀 시끄러워 후회했지만, 조금 지나자 맥주 두 잔이 우리를 목청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문득 그녀가 말했다.

“힘들긴 하지만, 하고 싶은 일하는 지금이 행복해. 그래서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우린 늘 서로에게 힘이 되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걸 잠시 잊고 있었어. 내가 원래 도와달라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잖아. 그런데 오늘 깨달았어. 네가 이렇게 오니까. 정말 기뻐. 아마도 그동안 내게 필요했던 건 이런 거였나 봐.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와 마음을 주고받는, 그런 시간 말이야. 정말…. 고마워.”


그녀의 말이 내 가슴을 꼭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삶에 대한 불평으로 늘어놓을 때마다 내 등에도 밝은 햇살은 온다는 사실을 알려 준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오늘은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탰다는 생각에 행복이 솟아올랐다.


“후후. 난 내 미래를 위해 너한테 아부하는 거야. 나중에 성공하면 내 자리도 하나 마련해 줄 거지?”

그녀가 호탕하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럼, 당연하지!”

함께한 공간을 웃음과 우정으로 가득 채우고, 서로의 행복이 된 채로 우리는 그날 헤어졌다.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금요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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