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왜 글을 썼는가.

부제 : 사십춘기 아줌마의 인생 축제 만들기 프로젝트

by 안희정

이제는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스마트폰. 늘 함께하는 이 휴대폰의 저장공간에 사진이나 파일로 용량이 가득 차면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큰 용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카카오톡 채팅방의 사진이나 동영상 파일, 그리고 카카오톡 캐시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삭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을 읽고 바로 카카오톡으로 들어가서 모두 삭제하기 시작했다.

데이터가 삭제되는 걸 확인하는데 머릿속 전구에 반짝반짝 불이 들어왔다. 우리의 마음속 저장공간에도 근심과 걱정이 조금씩 쌓일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하다가 어느새 저장공간이 가득 차면 그때는 감당하기 버거워 삶 전체에 타격을 주고 휴대폰처럼 생각의 로딩이 버벅거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불필요한 데이터를 삭제하듯 생각을 정리하고 걱정 근심으로 가득 찬 마음 역시 주기적으로 버려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리라.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단지 내가 정말 힘들었다는 거다. 남들은 별 탈 없이 잘 사는데 내 인생만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았고, 나는 그 이유를 스스로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찾았다. 평생을 병마와 함께 사셨던 아빠가 뇌출혈로 예고도 없이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도, 신혼 초 내가 5년 넘게 모았던 돈을 남편이 주식으로 허무하게 날렸을 때도, 아이가 아토피 피부병으로 심하게 고생했을 때조차 모든 게 다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자책감은 조금씩 내 세계를 파고들었고, 나는 침략으로 점령당한 나라의 민족처럼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다. 스스로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곪을 대로 곪은 속은 어느 날부턴가 얼굴에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미소를 잃은 사람이 되었다. 그런 눈으로 보는 세상에 미래란 꿈조차 꿀 수 없는 요원한 단어였다. 모든 이들로부터 거리를 두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밤마다 가족들이 잠든 시간이 되면 이불속에서 아이가 깰까 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깊은 슬픔이 여러 해 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외침이 퍽하고 속에서 터져 나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듯이, 내 마음에 봄빛을 비춰주고 싶었다. 밤마다 들려오는 온갖 우울과 슬픔의 메아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새벽 네 시 반 기상이었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매일 밤 아홉 시 반이면 잠자리로 들어갔다. 그렇게 구슬픈 메아리들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호히 작별 인사를 했다. 대신 새벽이 주는 희망의 공기와 새로운 관계를 비밀스럽게 시작했다. 그즈음 하여 유명한 강사 ‘김미경’ 선생님의 새벽 기상 챌린지도 시작했고, 아침마다 책을 읽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꿈이었다. 누구나 어릴 적에 의사나 선생님, 연예인처럼 한두 가지 막연한 꿈을 마음에 품고 자란다. 내게 글쓰기는 딱 그 정도의 모호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치기 어렸던 스무 살, 다이어리에 시랍시고 몇 글자 적어본 나날들, 첫 남자 친구와 이별 후 눈물 콧물 빼며 구질구질한 연애사를 써봤던 시절, 살면서 글을 써본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낸다고 해도 딱 그 정도가 지금까지 내 생애의 전부였다. 일기조차 쓰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마땅히 다른 재주가 없던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글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던 사람이 글쓰기를 시작한다고 하루아침에 한 권의 책이 뚝딱하고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을 비워내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썼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하나의 글을 완성할 때마다 가슴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한결 밝아지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나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열정'이라는 귀중한 보물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열정의 냄새를 맡고 집 나갔던 며느리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얼굴에도 미소가 다시 찾아왔다.

이제 그간의 정리와 비움으로 제법 깨끗해진 자리를 어떻게 감사한 기적의 순간으로 채웠는지에 대해 당신과 나누려고 한다.

나눔의 가장 큰 기쁨은 나눠준 상대가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다.

내게 가장 큰 보답은 당신의 얼굴에도 미소를 되찾아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