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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Sep 08. 2016

사랑꾼인가, 난봉꾼인가 - 에곤 실레

저는 결혼할 생각입니다. 다행히 상대가 발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에곤 실레는 그의 후원자 뢰슬러에게 편지를 보냈고 편지속에서 언급된 발리와 즐겨 찾던 카페에서 발리에게 이별을 전한다.


에곤 실레와 동거하며 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파격적인 누드화의 모델이 되어 에곤 실레 그림의 에러티시즘을 최고조로 이끌어올렸던 발리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를 떠났다고 한다.


그녀가 원한다면 에곤 실레의 결혼 후에도 연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함께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는 제안에 그녀는 눈물마저 말라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그녀가 종군간호사가 되어 전장을 누비는 동안 철도청 고급관료 집안 출신이었던 에곤 실레는 철도청 공무원의 딸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한다.


에곤 실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 <죽기 직전의 에디트 실레> 속 그녀다. 스페인독감으로 뱃속의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난 그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나흘만에 그마저도 스페인독감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발리는 23세의 나이로 발칸반도의 야전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녀에게 에곤 실레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니, 에곤 실레에게 발리는 어떤 존재였을까!


재능있지만 야심찬 청년과 불꽃같은 시기를 보낸 발리는 에곤 실레의 난봉꾼과도 같은 제안에 담배연기만을 깊이 들이마셨다. 만일 발리가 그의 곁에 오래 머물렀다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마지막 그림이 보다 에로틱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에로틱한 작품도 그것이 예술적 가치를 가지는 이상 외설이 아니다.


그의 작품을 비난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당히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발리의 존재덕분이다. 도발적으로 그녀의 몸을 드러내 예술작품이 되게끔 외설이라는 질타를 받는 주인공이 되었음은 물론, 외설의 죄를 물어 감옥에 갔던 그를 매일 찾아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그를 격려하고 지지했던 발리를 떠올려 본다



참조 :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서해문집) , 에곤 실레 (시공사)

끌리다,거닐다,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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