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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r 28. 2017

고흐미술관, 첫번째 걸작 감자먹는 사람들

암스테르담 반 고흐미술관


이전까지의 내 그림은 모두 습작이야
이 그림이 나의 첫 작품이지


고흐 스스로 자신의 첫 작품이라 밝히고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고흐의 그림'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노랑과 거리가 먼 회색조의 어두운 그림 '감자먹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그는 그의 여동생 빌헬미나에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 감자를 먹는 농부를 그린 그림이 결국 내 그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거야"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고흐의 첫 작품이자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일까?


임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감자먹는 사람들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감자먹는 사람들

1884년 그의 고향이자 아버지가 머물고 있던 누에넨으로 돌아와 아틀리에를 차린고흐는 그해겨울에만 40여점이 넘는 농부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뿐만 아니라 농촌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농민의 현실을 그리는데에 집중했던 고흐는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던 그루트가족을 한 명씩 따로 만나 그들을 관찰하고 살피며 습작을 해 나간다. 꾸준한 준비과정끝에 이듬해 4월 대형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테를로의 크뢸레밀러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첫번째 '감자먹는 사람들' 이다. 누에넨 시기에 적어도 280점 이상의 소묘, 수채화, 유화. 특히 1884년 1-4월 사이에만 180점이상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 시기 그림의 상당수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첫번째 감자먹는 사람들이 4,5월에 그려졌고 고흐 스스로 이 시기에 '나는 감자먹는 사람들과 살았고 호흡했다'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감자먹는 사람들을 그리기 위한 습작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고흐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 전 스케치 두 점을 동생 테오에게 보냈는데 이를 통해 고흐는 그림 속 인물의 수, 그들의 시선과 표정 등을 끊임없이 수정보완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그림의 준비과정에서 고흐는 농부들의 손에 집중했는데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손에 대한 의미를 전했다.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민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려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임을 암시하고 있어"


실제로 고흐는 손의 의미를 온전히 전하고자 손만을 따로 그려가며 연습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 '감자먹는 사람들' 을 완성하고 그 달말에는 기억을 되살려가며 아틀리에에서 다시 한 번 '감자를 먹는 사람들' 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바로 암스테르담 반 고흐미술관에 있는 그림이다.흔히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두 번째 그린 이 그림을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농민화가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름은 만종, 이삭줍기 등을 그린 밀레이다. 고흐는 스스로 농민화가이기를 자처하며 밀레를 롤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하지만 자연주의 특유의 부드러움을 유지한 밀레와 달리 고흐는 날 것 그대로의 거칠고 투박한 농부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고흐 초기 작품 특유의 음울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는 왜 농부의 고단한 삶을 그리기 위헤 감자먹는 모습을 그리게 되었을까?


거친 빵도 아닌, 감자를 먹는 농부들


감자는 유럽열강의 신대륙개척시기에 스페인 군대가 안데스 산맥에서 발견한 뒤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서늘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호냉성 작물이지만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분이 많아지는 특수한 성질탓에 햇볕이 귀한 유럽지역의 감자는 대단히 맛이 없었고 생긴 모양이 나병환자의 상처를 연상시킨다는 인식때문에 천시되는 작물이었다. 하지만 일년 3모작이 가능하고 단위생산량이 쌀과 밀 등 다른 작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던 감자는 급격한 인구증가와 18세기 유럽을 강타한 흉년과 연이은 전쟁으로 유럽을 괴롭히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된다. 물론 이 당시에도 '먹을 것이 없는 최후의 시기에나 먹는 것'이 감자였고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하층민이라는 인식이 지배하던 시기였다.고흐가 그린 감자먹는 사람들은 그저 농촌에서 살아가는 농부들의 소박한 저녁식사가 아니라 하층민의 고단함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이야말로 진정한 농민화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리라. … 농민을 소박한 모습 그대로 그리는 편이, 농민에게 진부한 매력을 부여하여 그리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흐는 이 그림을 통해 농민의 거칠고 힘겨운 삶을 그려내기 위하여 모든 열정을 다했다.그런 까닭에 이 그림은 고흐의 첫번째 걸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흐와 사랑에 빠진 시골여인 마르호트(Margot Begeman)가 집안의 반대로 괴로워 하다가 자살을 시도하고 1885년 봄 고흐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망한다. 비록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사망과 장례절차 등을 처리한 뒤 11월 벨기에의 안트웨르펜Antwerpen으로 떠난 뒤 영원히 네덜란드로 돌아오지 않는다.


안트웨르펜에서 루벤스를 만난 고흐는 일본 판화를 처음 접하고 그 강렬한 원색의 매력과 터치감에 매료된다. 1886년 2월 파리로 그림을 공부하러 떠난 그해 여름 벵화랑에서 자연주의적 일본그림을 보고 감명받아 이 시기이후 고흐의 그림은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는 화풍으로 변모한다.


안도히로시게의 소나기를 보고 모작한 고흐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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