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늦게 떠난 어학 연수
뒤늦게 간 어학연수, 3주차였다. 겨울에 도착한 LA에는 즐거운 이벤트가 많았다.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첫 주말을 수퍼 볼 Super Bowl을 시청하며 박스채 아이싱된 시원한 맥주와 온갖 멕시코 음식을 잔뜩 먹으며 보냈다. 다음 주말은 그래미 어워드 Grammy Awards였다. Mary J. Blige가 상을 여러차례 받았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시상식을 TV 화면으로 보는 건 매 한가지였으나, LA에 와 있으니 마치 옆집에서 열리는 공연을 지켜보는 것처럼 착각에 빠져 몹시 흥분이 되었다.
곧이어 아카데미 시상식 Academy Awards이 열렸다. 어느 채널에서 시상식 생중계를 하는지 TV 가이드를 며칠 전 미리 확인까지 했다. 나는 마치 영화 평론가라도 되는양 홈스테이 가족들 앞에서 TV 화면 안에 드레스를 근사하게 입고 등장한 배우들에 대한 작품 설명을 끝없이 해댔다. 시상자로 나선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체>라는 체 게바라 전기적 영화를 찍었으며 어쩌구어쩌구, 블라블라.. 홈스테이 가족의 자녀는 둘이었다. 첫째는 중학생, 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크게 관심이 없어보였다. 체 게바라 따위는 그들에게 듣도보도 못한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과 한마디라도 더 섞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으니.
하루는 초등학생인 막내를 붙들고 ‘내가 말할 때 문법이 틀리거나, 발음이 틀려서 말이 안 되면 네가 꼭 지적해 줘야해. 알았지?’ 하고 다짐을 받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영어가 빨리 늘어야 하는데..’ 미국에 도착한지 고작 3주차였다.
3주간이 지나가도록 나는 한국어를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비싼 돈을 들여 어학연수를 왔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내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초조함이 가슴을 내리 눌렀다. 나는 결심했다. ‘최대한 빨리 미국인처럼 말하고 싶다’라는 허무맹랑한 목표를 가지고 한국어를 잊기로 했다. 이메일도 확인하지 않았고, 한국 인터넷 포털은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당연 한국의 가족과의 연락도 두절 되었다. 이런 나의 무심함에 내 가족들은 매우 익숙했다. 대학교 부설 어학원엔 한국인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과 눈도 안 마주치는 나를 그들은 당연히 일본인이라 여겼다. ‘난 한국어로 수다 떨 여유가 없어.’ 세월을 여기서 실컷 허비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생들 그룹은 유럽/남미/아시아 대륙별로 구분되어 비슷한 문화 배경을 공유하며 무리지어 어울리고 있었고, 한국 학생들 그룹엔 오로지 한국 학생들만 있었다. 자기들끼리 떼지어 같이 움직이고 점심을 함께 먹으러 다녔다. 그 중 몇몇은 이미 중고차를 한대씩 뽑아 타고 있었다. 저들처럼 한국어로 떠들 바에 왜 미국까지 왔대?
난 등교 첫날 치른 레벨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같은 반에 배정된 일본인과 대만 친구들과 어울렸다. 하루종일 영어로만 대화하고 영어로만 생각했다. 나만의 몰입 방식이었다. 앞에 있는 허들을 어서 넘어 가고 싶었다. 내게는 한정된 예산이 있고 이걸 넘기면 안 된다. 오늘도 나는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불안해졌다.
‘회사 신입으로 입사할 수 있을까, 나이 제한에 걸려 1차부터 불합격하면 어쩌지?’
한국인 어학원생들 면면을 보니 그들은 아직 어리디 어린 대학 학부생들이었다. 그들에겐 타지에서의 생활이 그것으로 이미 힘들었을텐데 내가 그들을 마음 속으로 가혹하게 책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시간이 많을지 몰라도 난 아니다. 단기전이다. 난 곧 서른이라고!
수업이 끝나면 캠퍼스를 돌며 미국 사람들과 영어로 떠들 궁리를 했고,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다 지루하면 도서관 사서와 영어로 떠들었다. 미국인들은 꽤 친절했다. 심심해서 내 대화를 받아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대학 안에 있는 우체국에 가서 게시판에 붙어있는 모든 공고를 꼼꼼하게 읽고는 이해가 안 가는 문구들을 그곳 근로 학생에서 하나씩 물어보았다.
“게시판 위쪽에 써 있는 저 문구는 뭐에요? 스탑 위닝?”
“스탑 와이닝이요. Stop whining. 불평 그만해라. 우리 보스가 붙여놨어요.”
우체국 안에서 대화하던 우리 둘은 낄낄 웃었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배운 표현들을 그 자리에서 순차적으로 외워두었다.
한달쯤 지나니 말이 늘었다. 선생님과 이민법 관련한 정치적 주제로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교실에 앉아있는 외국인 학생들을 모두 미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잠재적 이민자들로 취급했다. 실제 캐리비안 국가 출신 이민자인 그였다. 중간에 그가 내 주장을 끊으려 하자 선생님을 제지하며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Let me finish!’ 나 말 안 끝났어! 하고 그의 말을 막았다. 그 순간, 내 영어가 선생과 언쟁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라 뱅크스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America’s next top model>에서 한 참가자가 썼던 말인데 나도 적재적소에 한번쯤 활용해 보고 싶었다. 성공이다!
별안간 외국으로 떠나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단기간에 빨아들인다는 건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내 경우는 그랬다. 한 언어를 단기간에 얼른 성취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스스로에게 강한 최면을 걸고 있었고 이러한 계획은 상당 부분 효력이 있었다. 한달쯤 되어보니 나처럼 고군분투하고 있는 외로운 인물들이 보였다. 뒤늦게 무리해서 어학연수를 온 케이스, 학교에 등록한 기간이 끝나도 이곳에 남아 있으려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인물들, 불법 체류까지도 불사하겠다 결심하고 온 그들은 미국이라는 사회를 최대한 과식을 하듯 흡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제 인생을 걸고 인생 2막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영혼들이었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미국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이다. 왜냐, 신분증을 대체 할 수 있으니까. 안락한 어딘가로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과 이 자리에 남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이들은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나는 휴가를 떠나온 게 아니다.
그보다 몇해 전의 일이다. LA 다저스의 코리안 특급 찬호박이 한국에 와서 기자회견을 할 때,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대체 LA에 몇개월이나 있었다고 저렇게 발음을 굴리냐? 교포 다 됐네?’ 나도 그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를 이해한다. 불같은 강속구로 공만 잘 던지던 그가 완벽히 새로운 사회에 홀로 당도했을 때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 세계와 사람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들의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얼마나 벅찬 순간들을 헤쳐나갔을지. 전속 통역가가 있기에 영어가 크게 필요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언어를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토록 애썼을 그가 존경스럽게까지 했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다. 단기간 한국말을 안 써도 한자어 단어 활용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제 나는 찬호박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에게 찬사와 사과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찬호박, 미안해요!’
그런데 나는 왜 이리 영어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매우 정확히 당시 심정을 풀어 놓자면 말이다, 나는 영어만 잘 하면 인생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답 없고 막막하던 이 상황을 바꾸려면 다 집어치우고 회사 입사 준비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영어 점수가 필요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 친구들과 함께 베벌리 힐스에 구경을 갔다가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된다. 비싼 부티크가 있던 쇼핑가에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홈리스 할아버지가 있었다. 빳빳한 새 스타벅스 종이컵을 들고 다니며 근처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할아버지는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내쪽으로 다가왔다.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노숙 할아버지의 영어가 이렇게 유창할 수가!
1차적 깨달음이 왔다. ‘저렇게 영어를 잘해도 노숙자일 수 있구나!’ 곧이어 2차적 깨달음도 있었다. ‘그래, 뭘 말하는지가 중요해. 핵심은 내용이다.’ 이토록 유창한 언어 구사에 집착했던 내 자신이 한순간 덧없이 느껴졌다. 생각을 곱씹어야했다. 어륀지든 오렌지든! 언어는 본질이 아니라 수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