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바다 Jan 05. 2021

원숭이와 골프공, 그리고 내 삶

예전에 류시화 시인의 책에서 원숭이와 골프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내가 기억하는 대로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에 영국인들은 인도에서도 골프를 즐기고 싶어 '캘커타'라는 지역에 골프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영국인들이 골프채로 쳐올린 골프공이 필드에 떨어질 때마다 원숭이들이 골프공을 자꾸만 엉뚱한 곳에 마음대로 놔두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원숭이를 쫒아내려고도 해보고 골프장 담장을 높여 원숭이들을 막으려고도 해봤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지친 영국인들은 결국 골프 규칙을 바꾸었다. 원숭이들이 공을 옮겨놓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니 골프 경기는 그야말로 복불복이 됐다. 골프채로 골프공을 솜씨 좋게 쳐올려 홀컵 가까이에 놓아도, 원숭이가 제멋대로 골프공을 홀컵에서 멀리 떨어뜨리면 불리한 위치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반면, 골프공의 원래 위치가 홀컵에서 멀었더라도 운좋게도 원숭이가 골프공을 홀컵에서 가까운 데 놓거나 아예 홀컵 안에 넣어버리는 일도 생겼다.

그때부터 영국인들 사이에서 '원숭이가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속담이 생겼다고 한다.

내 인생도 그런 모양이다. 그 옛날 god의 예전 히트곡 '길'의 가사처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날 데려가는지 그 길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다. 원숭이가 골프공을 자꾸만 엉뚱한 곳에 가져다 놓는가 보다. 내 인생의 진로가 자꾸만 제멋대로 이리로 튀고, 저리로 튀는 걸 보면 말이다.

김창완밴드(구 산울림)의 보컬 김창완 씨가 <스타특강쇼>라는 티비 강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인생한테 배워가는 것이라고. 내가 아직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거의 전적으로 공감한다.

앞으로 내 인생이 또 어디로 튈지는 모르겠지만 원숭이가 떨어뜨린 곳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인생한테 배우는 마음으로, 인생에 몰아칠지 모르는 어지간한 풍파나 행불행엔 의연한 자세로 겸허히 내 삶의 길을 걸어가 보련다.


2020.09.24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드리나무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