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 계기는 예전에 어떤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발견하고 나서부터였다. 저명한 작가의 생각보다는 나 자신이 더 궁금했다. 내가 ‘왜 쓰는지’를 말하려면 처음에 내가 어떻게 글쓰기에 입문했는지를 돌이켜봐야 한다. 여태껏 살면서 써온 글은 진지하게 쓴 글보다는 대충대충 쓴 글이 훨씬 많지만, 그래도 아마추어 글쓰기 인생 어언 만 20여 년이다. 그만큼의 시간이라면 한번 복기해볼 만하지 않을까.
난 언제부터 스스로 글을 썼을까. 그 시작이 초등학생 때였던 건 확실하다. 정확히 몇 살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 초등학교 시절의 언젠가, 한동안 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설을 우리 집 컴퓨터 한글 문서에 베껴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그 모습을 본 우리 엄마와 누나는 그런 내 모습을 무척 신기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의 나는 무언가 범상치 않은 면이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어느새 창작 욕구를 느낀 나는 우선 연필로 공책에 소설을 썼다가, 그것을 다시 키보드로 입력해서 컴퓨터 한글 파일에 옮겼다. 몇 년 뒤였으면 인터넷에 바로 올렸겠지만, 그때만 해도 인터넷을 모르던 시절이라 플로피 디스켓에 저장해 간직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난 글짓기 신동이 아니었기에 마음과 달리 멋지게 쓸 순 없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나중에는 그걸 학교 방학 숙제로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 흑역사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든 우리 반 문집에 실려 지금도 집에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된 후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글을 썼다. 지금은 사라진 커뮤니티 사이트의 온라인 소설 카페에 소설을, 고등학생이 된 뒤에는 블로그와 인터넷 문학 카페에 산문과 시를 올렸다. SNS 시대가 개막한 후에는 그 또한 나의 작업 공간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는 의무적인 글쓰기조차도 좋아했다. 글짓기 외에 포스터 그리기, 행글라이더, 물로켓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교내대회에서도 나는 무조건 글짓기만을 골랐다.
성인이 된 후에는 영화·드라마 감상, 음악 듣기, 유튜브 등 내 취향도 다양해졌지만, 그때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독서와 글짓기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너무 내향적인 성격으로 좀처럼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던 10대 시절엔 정말 그거밖에 없었다. 여럿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종종 부러워했으나 마음뿐이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내내 책을 갖고 다녔다. 좋아하는 만화책이 없진 않았으나, 그보다는 텍스트가 많은 도서를 좋아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어느 시점부터는 단순히 독자로만 만족하지 않고 직접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로워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던듯싶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게 글쓰기란 이른바 ‘자기 구원 행위’였다. ‘읽기’와 ‘쓰기’를 즐기지 않았더라면 난 분명 더 외로웠으리라. 그게 없었더라면, 공부, 운동, 게임 등 어느 것 하나 잘하거나 즐기지 못했던 내가 자존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탁월하게 잘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랬다면 어릴 때부터 교내, 교외 백일장을 휩쓸고 다니는 글짓기의 신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설령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쓰기는 여태껏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초등학생 시절 뿐이지만 교내 백일장으로 받은 몇 개의 크고 작은 상들, 그 이후엔 상은 못 받았어도 내가 쓴 글로 가끔 선생님들께 받은 칭찬들도 있었다. 그것들이 내 삶의 활력이었고, 취미로라도 꾸준히 글을 쓰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하게끔 이끌어준 것 같다.
하지만 이젠 거기에서 만족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 만족에만 그치는 글은 그만 쓰고 싶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평가받고 싶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갈망해왔다, 정식으로 글쓰기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단 몇 달만이라도 글쓰기를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던 차에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는 일이 생겼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회사에서 해고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연하게도 그렇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곳은 코로나에 민감한 다중이용시설이었고, 회사에선 늘어나는 적자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적지 않은 인원감축을 단행했다. 각 부서마다 감축대상 인원이 정해졌고, 불행히도 나도 거기에 포함되고야 말았다. 이젠 어떡하지 하는 마음과 난생 처음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업급여는 공짜가 아니라 꾸준히 구직활동을 증명해야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열심히 취업을 위한 활동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취업 직후부터 운영하던 글쓰기 전용 SNS 계정에 좀 더 진지한 자세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라인 글쓰기 수업에도 수강을 신청했다. 언젠가는 책도 내고 강연도 할 수 있는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겠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