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y & Travel - 학업과 여행 사이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다니. 스무 살 신입생의 나는 어디로 갔고 벌써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학창 시절 중 가장 그리운 것 하나를 꼽으라면 일 년의 절반 가까이를 쉴 수 있던 것. 한 번 시작하면 두 달 넘게 쉴 수 있는 여름 및 겨울방학과 시간표만 잘 짜면 학기 중에도 꽤 많이 쉴 수 있었기에 아무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과 돈은 반비례의 관계인 것인가? 대학생의 나는 시간이 많았지만 애석하게도 돈이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어른 흉내를 내며 씀씀이는 커져가는데 여전히 학생 신분인 나에게 지금과 같은 고정수입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이 와중에도 여행은 하고 싶었다. 무슨 패기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한 학기에 한 번은 여행 다녀오기'라는 나름의 목표도 있었다. 1학년을 마친 뒤 겨울방학을 시작으로 졸업 전까지 한 학기에 최소 한 번 이상은 여행을 했으니 그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돈은 없지만 여행하고 싶은 마음만은 불타올랐던, 평범한 대학생의 나는 어떻게 여행할 수 있었을까?
내 나름대로 택한 전략은 Study & Travel. 별 다른 묘책이 있던 건 아니고 학업은 이어가면서 그 외에 시간을 활용하여 여행할 수 있었던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어쩌면 조금은 뻔한 이야기일지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건 아르바이트였다. 사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여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집에서 약간의 용돈을 받기는 했지만,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놀러도 다니고 싶고 무엇보다도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나에게는 턱 없이 부족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카페, 리조트, 행사 진행요원 등 나의 대학생활은 아르바이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많이도 해봤다. 보통은 방학 기간을 활용해서, 때로는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생활비 충당을 위해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아르바이트는 여행경비 마련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 되어주었다. 왜냐? 돈을 버니까.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내 힘으로 떠난 첫 여행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다녀온 일본 오사카. 여행경비를 모으는 건 오래도 걸리더니 정작 여행 한 시간은 2박 3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보상을 받는 기분처럼 달콤했다. 내 돈과 시간을 투자해 가는 여행의 즐거움 맛을 처음 보게 된 순간. 한 번 맛을 보고 나니 그다음을 벌써 기대하게 되더라. 여행이야말로 아르바이트의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횟수로만 치면 대학생활 중 나에게 여행할 기회를 가장 많이 준 일등공신. 지금도 그러한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학부생일 적에는 학교 생활 외에도 기업의 대학생 서포터즈 등과 같은 대외활동을 하는 것이 꽤나 유행이었다. 취업준비 커뮤니티 같은 사이트에 가면 각종 대외활동 공고들이 올라오곤 했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경험을 쌓기 위해서 등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는 경험 + 여행의 기회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래서 내가 주로 공략한 대외활동은 여행사와 항공사 대외활동. 두 분야 대외활동의 가장 큰 혜택은 숙박 및 항공권을 지원받는다거나, 비용 일부를 지원받는 식으로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그에 대한 대가로 나는 주최 측의 마케팅 목적에 부합하게 블로그와 같은 플랫폼에 여행 후기나 관련 서비스 소개글과 같은 콘텐츠를 생성하면 되었다. 지금이야 유튜브가 대세라지만 그때만 해도 블로그의 시대였으니 대외활동을 위해서도 블로그는 필수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글 쓰는 재미도 알게 되었으니 나름 일석이조.
대외활동 하면서 해외여행 4번과 제주도 여행까지 한 번 다녀왔으니 이 정도면 꽤나 덕을 봤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여행도 하고 경험도 쌓을 수 있었던, 지금 생각해도 대학생활의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계신 대학생 분이 계시다면, 요즘도 대외활동 많이들 하시나요? 갑자기 궁금하네요.)
사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는 Study & Travel 보다는 Work & Travel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공부와는 딱히 큰 상관이 없었으니. 공부하면서 여행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교환학생. 1년 반 동안의 휴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곧장 다음 학기 파견 교환학생 모집에 지원했다. 결과는 합격이었고 그다음 학기에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교환학생은 유럽 땅 한 번 밟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내가 학생의 신분으로 잠깐이나마 '그곳에서 살아보기'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같았다. 게다가 '학업'의 연장선이라는 그럴싸한 핑곗거리까지 있었던 덕에 부모님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유럽 교환학생에서 유럽 여행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학기 중에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일상의 공간이 되어 살아가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고, 긴 휴일이 있을 때와 학기를 마친 이후에 귀국 전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에는 유럽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런던, 파리, 리스본, 부다페스트 등 어릴 적 세계지도에서만 혹은 인터넷에서만 봐오던 곳들을 두 눈으로 직접 담을 수 있게 되다니!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이때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벅차오른다. 원하던 여행을 원 없이 할 수 있었고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담이긴 하지만, 공부하러 가서 맨날 놀러만 다녔냐고? 아니다. 글에 담기지 않은 대다수의 시간은 학업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스페인에 와서 영어가 늘었다고 하면 다들 웃지만, 100%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 따라가느라 아주 힘들었다. 덕분에 실제로 학문적인 영어 실력이 꽤 향상되기는 했다. (스페인어는..?)
쓸 수 있는 말이 많으면 좋겠으나 아쉽게도 가장 쓸 말이 없는 부분이다. 대학생활 중 장학금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나 싶겠지만 사실은 성적 장학금으로 받은 것보다 국가장학금 제도 덕을 본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성적장학금 받아본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고..) 보통의 경우 장학금은 학비에서 자동 감면이 되는지라 실질적으로 나의 여행경비 마련에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기억은 나질 나지만, 딱 한 번 통장으로 입금이 되는 장학금을 받았던 적이 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성실...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난히 학교생활 잘하고 있던 나에게 그 장학금을 용돈으로 쓰라고 허락해주셨다. 유럽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라서 한창 유럽 앓이를 하고 있을 때라서 그래도 나름 적지 않은 금액의 장학금과 당시 아르바이트하며 모아둔 돈을 합쳐 다시 한번 유럽을 다녀올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더라면 여행의 기회가 더 있지는 않았을까? 물론 나는 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내가 딱히 더 열심히 공부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을. (웃음)
개인적으로 휴학이라는 제도를 참 좋아했다. 학업을 잠시 쉬어가는 대신 그 시간에 다른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에. 대학생 신분으로서 학교 밖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시간. 나에게 휴학은 일 경험을 쌓고 덕분에 (모은 돈과 시간으로) 여행까지 다닐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학교를 다니며 몇 번의 짧은 여행이 반복되면서 며칠 동안만 잠깐 즐겁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정작 여행을 준비하고 이를 위해 쏟는 시간은 훨씬 긴 데 말이다. 아쉬움 남는 여행 말고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한 광고 카피의 문구처럼,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여행이 일상이 되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건 막연하게나마 품어왔던 대학생활 버킷리스트 1순위, 워킹홀리데이.
대학교 2학년을 마친 나는 속전속결로 휴학 신청을 했고, 6개월의 준비기간(=경비 마련)을 거쳐 그 해 여름, 호주로 떠나게 되었다. 본격 Work & Travel의 시작이었던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행은 대학생의 나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동기부여의 역할을 해주었다. 여행을 더 하고 싶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축을 하고, 여행의 기회를 얻고자 공부 이외에 활동들에도 열성을 다해봤으니. 교훈 없는 경험은 없다고, 그때의 경험들과 여행들은 곱씹어 볼수록 삶의 자산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학교 다닐 적에는 왠지 졸업하고 취업만 하면 (돈을 벌게 되면) 더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금전적으로는 여행하는 것이 약간은 수월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나에겐 더 이상 한 두 달씩 꼬박꼬박 주어지던 방학이 없다. 몇 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체력도 더 이상은 예전 같지가 않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는 감수해야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건가.
이 글을 쓰며 오래간만에 여행 좋아라 하던 20대 초반 대학생 나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