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 Travel의 시작
"당신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주저 않고 나는 호주에서 보낸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이야기할 것이다. 지난 글 말미에 적어둔 것처럼 워킹홀리데이는 나의 대학생활 버킷리스트 1순위였다. 대학 입학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입학 이후에는 언젠간 한 번은 가게 되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2학기, 나는 학교 생활에 조금씩 흥미를 잃어갔고 장거리 통학에 지쳐가고 있었다. 대외활동이며 여행이며 새로운 경험들에 눈을 뜨게 되면서 뭔가 더 새롭고 흥미로운 자극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며칠짜리 짧은 여행 말고, 더 긴 여행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해외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 (Working-Holiday) : 해외에 여행 중인 젊은이가 방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 주는 제도. 보통의 관광비자로는 방문국에서의 노동이 금지되어 있으나 국제 친선을 위해 특별히 설치된 예외적인 제도. [출처: 매일경제]
어학연수나 장기 세계여행은 현실적인 조건(=예산)에 부합하지 않았으므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워킹홀리데이였다. 일을 할 수 있는 비자가 주어져 현지에서 여행 경비 충당이 가능한.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게 됨으로써 일상 그 자체가 여행으로 느껴질 것 같다는 일종의 환상 혹은 로망까지.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워킹홀리데이 국가로 호주를 선택하게 된 것은 단순했다. 영어권 국가이고 비자받는 것이 가장 수월해서. 호주 내 여러 도시 중에서 멜버른으로 가게 된 이유 또한 간단했다. 이전에 여행으로 갔을 적에 그 도시가 마음에 들었고, 친인척이 있으니 초기 적응이 아무래도 수월할 것 같아서. 멜버른으로 가게 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왜냐? 나는 멜버른이 너무 좋았으니까. 왜 좋았냐고 물어보면 아직도 딱 한마디로 그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살아보니 좋았다는 말 밖에는.
그곳에서 살아보기
2012년 7월, 겨울이 한창인 멜버른에 도착했다. 호주는 일 년 내내 따뜻하기만 할 줄 알았던 나의 무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멜버른의 겨울은 꽤나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겨울에서 봄이 되고, 여름이 한창일 때에는 서호주 퍼스로 넘어가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그렇게 나의 인생을 바꾸는 1년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멜버른과 퍼스, 두 도시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서 어디가 더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건 둘 다 참 좋았다는 것! 워킹홀리데이가 아니었더라면 몇 달씩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이 도시의 매력들을 알아가기 쉽지 않았겠지? 며칠 잠깐 머물다 떠나야 하지 않고, 일상을 보낼 수 있었음에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감사하다.
Working
워킹홀리데이는 말 그대로 일과 여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었다. 우선, 호주에서의 일 경험은 단순히 현지 체류 및 여행 경비 충당을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 이 곳에서 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 한국을 벗어나 처음으로 현지인 동료 및 손님들과 함께 일하고 어울리며 배운 다양한 소프트 스킬들. 이 모든 것들이 20대 초반의 나에게 있어 앞으로의 직업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시행착오를 지독히도 겪어야 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았다. 초기에는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고, 언어도 사회 경험도 부족한 나에게는 호주 생활의 매일매일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경험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언어나 문화적인 이해도의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목표를 가지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호주에서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쯤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Holiday
호주는 임금이 높은 나라로 유명하다. 내가 있던 당시에는 호주 환율이 최고치를 찍던 때이기도 하였고, 워낙 최저시급 자체가 높았기 때문에 아무리 물가가 한국보다 더 비싸다고 한들 나와 같은 워홀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체류 중인 이들을 일컫는 말) 신분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고, 여행 경비 마련까지 가능했다.
열심히 일 한 만큼 더 열심히 여행 다녔다. 쉬는 날에는 일상의 공간이었던 멜버른과 퍼스에서의 휴식이 곧 여행과도 같았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뒤에는 조금 더 멀리 여행을 떠나곤 했다. 꿈에 그리던 시드니 새해 불꽃놀이 보러도 가고,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촬영지였던 울룰루도 다녀오고. 옆 나라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까지. 생활비를 제외하곤 거의 다 여행에 쓰고 온 것 같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 돌아올 때 수중에 남은 돈은 300불 남짓. 통장은 텅장이 되어 너무나 가벼웠지만 여행으로 얻은 경험과 추억들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가득 찼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인생의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다.
" Life is Working Holiday "
워킹홀리데이 일기를 기록하던 과거 나의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던 그 말. 호주에서 보낸 1년이 심어 준 새로운 인생관 혹은 20대를 보내는 일종의 신조라 해야 할까. 호주에서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더 다양한 곳들을 여행해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자고. 여행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Work & Travel을 생각하게 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귀국 이후에도 나의 워홀 앓이는 한 동안 계속되었다. 딱히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긴 했어도 웬만한 워킹홀리데이 비자 나이 제한에 걸리는 만 30세까지 1년 단위로 국가를 옮겨가며 워킹홀리데이 하며 여행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봤을 정도였다. 실제로 호주 다녀온 이후에 영어권 국가 워킹홀리데이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아일랜드) 비자 신청은 모조리 다 해봤으니 뭐 아예 시도를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만큼, 워킹홀리데이는 Work & Travel의 삶을 꿈꾸는 나에게 아주 매력이 많은 제도였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앓고 있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다시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온 뒤에 누군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워킹홀리데이,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