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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Nov 29. 2016

계절의 굴레.


나를 떠나보낸 이에게 왜 그랬느냐고 이유를

묻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보낸 건지 그가 스스로 떠나간 건지 아무것도

확실치 않았지만 그저 보내주기로 결심을 했었다.





그와 만나는 동안은 나는 단 한순간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의미 있을 만남일 것' 이라며

그 만남의 결과가 이미 내 안에서 정해진듯한

알쏭달쏭한 관계를 이어갔지만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까지는

도무지 닿지를 않았다.

어쩌면 나는 마지막까지

그를 사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꿔 봤을 때

선명하게 그려지는 어떠한 확신이나 욕심이 없었고

나는 나대로 그것이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순환

몇 번인가 반복하는 동안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늘 곁에 딱 붙어살았으며

가을에 시작된 우리의 연애는

늘 계절에 걸맞은 산책도 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두 사람의 정신이 몽롱하리만큼의

향을 내고 있는 길가를 걷고 있노라면

두 사람 모두 특정한 계절에 취해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음악을 자연스레 선곡해주었다.






넘칠듯이 아슬아슬하게 감성적이던 나와

남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불안한듯 좇던 그.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역시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연인이었으며

늘 그렇듯 닮았고 닮아갔고 닮아가려

노력하면서 서로에게 추천해주기 위해

좋은 노래를 만나면 열심히 기억해두었고, 공유했고, 계절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매일의 공기를 열심히도 잡아두며 우리가

걷고 있는 풍경의 배경음악속에 녹여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상들을 함께

보낸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왜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설명할 길이 마땅치가 않지만

굳이 찾아본다면 아무래도 그와 연애하는 동안

그를 사랑하려 부단히도 노력했던 내 모습 때문에 그렇게 느꼈겠구나 싶다.





뭐랄까,

자연스레 그를 안고 싶어 지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다정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다독여야만

이야기가 연결이 되는 이상한 구조속에서 바둥거렸다.






여기까지 글을 써놓고 어느덧 10일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나는,

여전히 답을 못 내린 상태에서

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고

답을 찾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으나

사실은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거였구나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던 답은 이러했다.
'늘 힘에 부쳤지만 인정하기는 싫었으며
나는 다만 외로웠고 때마침 외로웠던

그와 만나게 된 것.'





절실하게 누군가의 의미가 되고 싶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기대고 싶었던 그에게

난 적절한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 역시 그러했던 것이다.






매일매일이 복잡한 연애를 했다.

날은 아름답고 하늘은 맑은데 나는 수면 아래

혼자 바쁜 오리의 발처럼 쉴 새 없이 버둥거렸다.


늘 긴장했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늘어놓아야 하니

가끔은 말들이 제멋대로 엉켜버려서

더듬기도 했다.


그 친구 또한 늘 나와 있으면

편하면서도 불안해했다.

자신도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묘하게 모든것이 불안하다고.







정말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여

기뻐본 사람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내 앞에 펼쳐진 이 아름다운 순간들이

아무런 분석없이 온전히 아름다워야 하는데

'내가 놓인 순간이 사람들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까' 라는

조잡한 생각부터 드는 절대적인 객관화.





나는 내것이 아닌 순간들 속에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면 끝이 좋지 않다는

불변의 이별 공식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부합하듯

그 겨울, 나의 연애의 끝도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렇게 그와 함께하는

계절의 굴레가 마침내 끝이 나고

나의 시계가 제 일을 마치고

제 자리로 돌아왔을 무렵
나는 너무 많이 무너져있었고 

너무 많이 초라했었다.







끊임없이 드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외로움을 제어하지 못해

잘못된 인연인 줄 알면서 놓지 못했던

그 잠깐의 무절제함.

 


그리고 자꾸만 차오르는 자기혐오

발로 꾹 꾹 밟아 마음 바닥에 깔아 내리고

그 겨울의 끝에 걸린 위태로운 오만함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며 나는 쓰게 웃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그 절벽의 끝에서

나의 어리석음과 오만함에서 오는 분노가

얼마만큼 귀중한 시간들을 움직였는지 

슬퍼하며 무너지려는 찰나 싱그러운 봄내음이

눈 앞에 찾아왔고 마치 '이때다' 싶게

예상을 한 건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제각각의 색이 물든

작은 생명들 앞에서 모든 기억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생명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는 모습에 취해, 봄에 취해

걷고 또 걷는 동안 나는 하루하루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의미도 깊이도 없는 둘이 걷던 봄길을 걸을 때보다

차라리 혼자 걷는 지금의 봄길이 생각보다

포근하고 풍성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 앞을 감싸고도는 꽃들의 향기 덕분이었다.








모여있는 꽃들도 향기가 진하지만

홀로 피어있는 꽃도 동등하게 아름답고 고귀하며

우아하다는 것을 꽃을 통해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알 수 있게 되었다.
봄이 만연해졌고 햇살은 포근해졌으며

드디어 혼자가 되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

용기를 내어 행복을 찾는 나 자신이 이제는

꽤나 믿음직스럽다는 것을 말이다.



봄은 왔고

나는 그렇게 계절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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