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닥가닥 흩어진 미소 뒤에
아른한 그대가 있었네
옅게 들리는 바람 한가운데에도
희미하게 그대가 서 있었네
몇 번이고 놓칠뻔한 어여쁜 손을 당겨
어디론가 향하고자 발길을 재촉할 때
'그리웠던 거로구나' 하시며
바쁘던 걸음을 멈추시네
그러다, 조금만 있으라 하시고는
영영 안 올 듯이 멀어지시다가
그림자마저 부서지는 듯 두려움을 품은
숨이 가슴에 들어 먹먹해지더니
곧
어디선가 꽃 분홍빛 물든 향을
이리저리 잔뜩 묻혀서는
어디로부터 인가 너울너울 빛줄기 마냥
걸어서 내게 폭 안겨오시네
어제 가시 었는지 두해 전 가시 었는지
여전히 곱고 정다운 모습을 하시고서
조용하고 가지런히 팔을 굽혀
나를 이리저리 매만지실 때에
그 모습에 흠뻑 젖어 손길따라 맡겨두고는
문득 미운 마음이 일어 눈을 흘기다가도
내가 미워져 또 가실까 옷깃을 부여잡고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들숨따라 애원하네
겨울 햇살이 깨어진 조각처럼 모든 창에 들을 때
그대 나를 마음에 들여주었고
해님이 달님을 깨끔발로 마중 나갈 때가 되어
요처럼 돈독히 품어주시더니
새하얀 종이 위에 떨어진 수채화 물감
한 방울처럼 흩어지고 찢어진 채
내게로 안기어 세상 둘도 없이 다정할 것처럼
고운 말을 늘어놓으시다가
그 모습 그대로 깨지다, 부스러지다
사방으로 흩어지셨네
그대 보드란 살결에
나의 온 신경이 전율하고
이미 돌아선 발걸음에도
잔향이 남아 풍겨 올 때에
오도 간 자취 없는 요란함만이
나의 아침을 일으키고
미처 가지 못해 남은 향기가 이리저리
옷자락 주위에 내려앉아 스며드네
떠나가는 향기처럼
'차라리 모두 잊으라' 노래하듯 읊으시더니
말처럼 간 곳없이 그대는 사라지고
나는 남아 잔향만 애처로이 붙잡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