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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Oct 21. 2017

고독의 심연


깜깜한 어둠 저 편 누군가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도 존재가 있다는 것을

당신도 나도 볼 수는 없지만

하지만 그곳에 있다고 믿기로 하자.



마치 적막한 숲속의 밤하늘

이따금 친구도 길잡이도 되어주는

별 하나에 관한 전설과 같이



호흡을 하는 지, 제 소리를 내어

저 먼 건너 산골짜기로 메아리는 칠 수 있는지

아무도 물을 수 없고 도 침묵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바로 그것을 향해 고독하고 있다.



무겁게 가라앉아 수많은 소용돌이에 둘러싸인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실재(實在)하는 곳.



우리는 그곳을 심연(深淵)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대와 나의 방황속 3.5km쯤 아래에

안락하고 정스럽게 버티고 있는 곳.


나는 그곳을 심연이라 부른다.




걷기에 멀고 뛰기엔 금세 닿을까 두려운

심연, 나의 그곳에서는



내가 가장 잘 흉내낼 수 있는 연기이자

일상 빠져사는 고독이란 액체가

나의 시각 저 아래에서 홀로 일렁거리는

마음을 제발로 두드리고 밟아가며

언젠가 가라앉을 나를 위해

바닥을 편평히 다지고 있다.



그렇게 끊임없이 가라앉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중간 그 어디쯤에

묶인 나의 감정들이,



내 모든 절정들이


흩어지고 부서져 무수히 많은

을 그곳에 만들어 박아놓았다.



스스로 빛나기도 하고

누군가 빛난다 알아주어

빛나기도 하는 그것들을



나는 때로는 위안을 삼고

친구삼아 들여다보기를 즐긴다.



내 것이었던 것들,

내 것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것들,

내 것이기에 나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들.




넘칠 듯 찰랑대는 그것들을

시각너머 그 깊은 곳에 꾸역꾸역 가득 채우고

비틀비틀 위태롭게 또 당신을 향해 걷는다.



저기 건너오는 당신은 어떤 것에 잠기었는지

그 소용돌이 아래 일렁대는 검은 액체들에

고개를 푹 박아 훔쳐보고나면

나는 당신을 꼭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반갑게 웃는 당신을 향해 팔을 벌려

그 품안에 잠시 잠겨보기도 한다.




나를 부르는 이곳,

당신을 만나는 이곳,

당신이 버려진 이곳,

당신이 감춰놓은 이곳.


내가 숨겨진 이곳.

모든 곳곳이 파도에 힘없이 부서지는 이곳.





당신을 안으면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는 이곳을

나는, 그리고 당신은, 우리는 심연이라고 부르자.





심연.

深淵




고독아래 일렁이는

우리의 까만 액체들을



그저 심연이라 부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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