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아니에요, 아픈 사람에요.

쉽지 않은 채식 인생

by blahblah

육류를 섭취하지 않기로 결심한 지, 딱 10년 정도 된 것 같다.

육지에서 나고 자란 육고기는 먹지 않고, 생선, 유제품, 달걀 정도는 먹는 패스코쯤에 속하는 채식인이다. 집에서는 비건으로 살 수 있었지만, 문제는 육류를 섭취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사회인이란 것을 20대의 나는 몰랐다.



차별,

처음 채식을 결심하고 나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라고 가족과 친구에게 말했다. 그 말 한마디로 인해 불편한 상황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만약 알았다면 나는 채식을 쉽게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인 예로, 동성애자가 “나 동성애자예요”라고 말하는 것과 “쟤 동성애자야”라고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를 일컫는 용어로 아웃팅이라고 한다.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강제로 밝혀지는 일을 의미(네이버 국어사전 등재 발취)한다. 난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쟤 고기 먹지 않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타인의 입으로 들을 때가 많았다. 때로는 가족이, 지인이,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 나를 제외한 다수였다. 나를 배려해주는 말일까 싶을 때도 있었고, 아웃팅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당황스럽고 도망치고 싶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왜”, “동물이 불쌍해서?”, “이효리 따라 하나?”, “먹지 않는 이유는”


초기에는 이 질문의 시작이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은 불편함으로 때론 알 수 없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 풀도 먹지 말아야지, 불쌍하지 않니”, “채식주의자는 예민해,” “고기 먹는 사람 보면 역겨워?”, “너 남자 친구는 고기 먹는데 키스는 어떻게 할 거야?”, “지금 그 음식에 뭐가 들어있는 줄 알고 먹어요?”


심지어 한 회사에서는 나와의 점심자리를 피하거나 회식에까지 영향이 미치는 일이 생겼다. 나는 식습관 하나를 바꾼 것으로 별나라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저 식습관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김밥에 당근을 빼고, 오이를 빼놓고 먹는 편식’과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의 기호였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 사전적 어미로도 등재해 있는 식구(食口,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또는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를 중요시 여기는 우리나라의 식문화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유별난 사람으로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불편해지게 되고 인간관계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난 채식주의자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몸에서 받질 않네요”, “좋아하지 않아요.”, “자꾸 탈이 나요.”, “예전에 먹었는데 알레르기가 생겼어요.”


이 중에서 아픈 사람이 되는 게 여러모로 속 편했다.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나마 최근 키토식, 웰빙 음식에 대한 인식이 알려지면서 주변이나 채식에 대한 긍정적인 말도 많아졌다. 채식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글을 볼 때면 반갑기도 하면서 상처 받을까 하는 걱정에 "아픈 사람이 되세요, 채식 결심했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라고 오지랖 깊은 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받지 않을, 당당히 맞설 다이아몬드 멘털이라면 밝히시길!


“나는 채식주의자입니다.”



평화,

외로워도 슬퍼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 나는 평화를 위해, 고깃 집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내 그릇에 고기를 놓아주는 친절한 상사들을 위해 ‘감사하다’는 말과, 이 고기를 상 밑으로 버릴 것인가, 불판으로 냉큼 올려둘 것인가 하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고민도 함께. 그러다 지금은 회식을 강요하거나 음식을 강요받지 않는 곳으로 이직을 했다. 구내식당의 음식을 먹고, 도시락을 싸와도 되는 자유로운 회사. 남들은 대기업, 중소기업을 따진다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눈치 보지 않고 먹고살 수 있는 곳. 나의 평화가 곧 내 주변의 평화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아픈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