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보다 안 좋은 건 내 처지>
경기가 안 좋다. 시대를 불문하고 경기야 늘 안 좋았지만 요즘은 앓는 소리로 치부하기엔 정말이지 심상치가 않다. 공고도 별로 없거니와 그중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드는 더욱 없다. 구직난을 실감하는 건 취준생뿐 아니라 재직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금방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결국에는 회사에 붙어있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지금 올라오는 공고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견디고 뛰쳐나간 자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미치기 일보 직전에 탈출한 그곳을 기웃대고 있다. 마치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어느 것이건 100%가 존재하기란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높은 확률로 'A가 B 하다'라고 할 수는 있어도, 'A는 절대적으로 B이다'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런고로, 모든 공고가 전임자의 극적 탈출로 발생했다고 할 수는 없다. 통계에 기반한 객관적인 지표가 어디를 가리키던, 내가 해당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한 달여간 7개의 회사에 면접을 갔으며, 면접에 임하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갔네, 갔어... 도망갔어!
<이상형이요? 그냥 남자기만 하면 됩니다>
저마다 목표 지점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크게 바라는 게 없었다. '일'은 그냥 생계 수단에 불과했다. 덕분에 내 이력서에서는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 쇼핑몰 발주/출고 담당, 화장품 회사 기획자(BM), 의료기기 회사 영업 지원... 업종이며 업무, 하나도 겹치는 게 없다 보니 면접에 가기만 가면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 회사는 뭐죠?' '그럼 이 회사는 뭐 하는 회사죠?' '여기선 무슨 일을 하셨죠?' '그럼 이 회사에서도 기획을 하셨나요? 아니라고요?'
마치 명절 잔소리처럼 판에 박힌 레퍼토리였다. 대답을 할 때마다 앵무새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면 지난 행보를 돌아보며, 인생을 잘 못 산 게 아닌가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회사들이 괜찮았다면 그래도 많이 배울 수 있었으니까 괜찮다고 자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회사들 전부 비전은커녕 체계부터 없었고, 임금은 노비가 폭동 안 일으킬 만큼의 최저 생계비 수준이었으며, 그마저도 마치 온 가족의 사채빚을 다 갚아준 것처럼 생색을 냈다.
잡플래닛 평점이 1점대인 회사는 믿고 거르라고들 한다. 하지만 평점이 없는 회사는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말할 가치도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곳이란 뜻이다. 그 회사들이 그랬다. 그럼 거길 왜 다녔냐? 간단하다. 가까워서.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집에서 도보로 7분 거리였다. 너무 피곤하면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잠깐 눈 좀 붙이고, 반차 쓸 땐 이동 시간을 아낀 만큼 내 시간으로 쓸 수 있었다. 그렇게 안락하지만 커리어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물경력이 쌓여갔다. 서서히 잠겨 죽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다시는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마라>
비전, 규모, 연봉... 흔히들 구직에 있어 중요한 요소들이다. 내게는 그런 것들보다 거리가 더 중요했지만, 그런 내게도 타협 불가능한 영역이 있었다. 직원 수가 5인 미만인 회사. 아무리 중소기업이 거기서 거기라지만, 5인 미만 회사에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로 시간은 oecd 평균 근로 시간보다 151시간이나 길다. 연차는 1년 365일 중 고작 15일(1년이 되기 전에는 11일)인데 그마저도 없는 것이다. 모든게 사업장 재량이기 때문에 야근이나 연장근무가 발생해도 보장 받지 못할 확률이 크다. (물론 5인 이상 회사여도 야근 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방법을 모색해 볼 수는 있다.)
5인 회사나 4인 회사나 규모나 급여, 복지는 비슷하다. 구멍가게처럼 얼레벌레 굴러가는 꼴에 비웃음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고. 하지만 사원 수 1명의 차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보장했다. 쉬어야 할 때는 일일이 허락받아야 하고, 5인 이상 회사에서라면 당연하게 썼을 연차 개수를 헤아리며 얼마나 손해를 봤는가를 셈할 것이다. 연차가 누적될수록 억울함과 분노도 같이 쌓이겠지.
호주 워홀로 인해 경력 공백이 2년이나 생긴 지금, 나의 구직 조건은 이렇다. 가깝고, 5인 이상이며, 이전에 했던 업무와 비슷한 계통일 것. 그리고 희망 연봉도 대폭 높였다. (객관적으로 높은 연봉은 아니다. 물가는 말도 안 되게 올랐는데 직전 연봉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물가 상승을 고려해 산출했다.)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한 친구에게 내 경력에 '합리적인 연봉'이라는 확답도 받았다.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서울에는 일자리가 많으니까. 하지만 구직이 낙관적이었다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겠지. 내가 돌아온 곳은 세계 노동권 지수에서 10년째 5등급을 받은 나라, 한국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