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이웃 3

by 재쵸

*실화입니다


여느 때처럼 엿같은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고양이가 쳐들어왔다. 개들은 저주의식을 행하는 부두교처럼 날뛰었고, 고양이는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개들을 고양이랑 남겨두고 갈 수는 없는데 당장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이었다. 고양이가 없어졌는데 왜 찾으러 안 오는 거야? 설마 없어진 줄도 모르나?


이따위 회사, 잘리면 뭐 어때를 입버릇처럼 달고 지냈으면서, 막상 출근을 못 하는 상황이 닥치자 불안이 몰려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발이 묶이자 무력감이 들었다. 갈 곳 잃은 짜증과 분노는 고양이에게로 튀었다. 짐승이 사유지와 매너에 대해 알 리가 없음에도 순수한 적대감이 들었다.


내 일상은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오래전 헤어진 연인과 개들을 매개로 인연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아마 '개는 핑계고 그냥 미련이 남은 것 아니냐?'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서로 간에 어떤 미련도 없이 개들에 대한 책임감만 존재했다. 그는 옆 집에 사는 데다 출퇴근이 자유로워서 내가 일하는 동안 개들을 돌봤고, 나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 개들을 맡았다.


때마침 그가 개들을 산책시키러 오지 않았다면 나는 개들을 고양이와 두고 가야 했으리라. 간략하게 방금 전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데, 단어 사이사이 욕을 끼워 넣지 않으면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개들은 언제 악귀가 들렸냐는 듯 얌전해져서 산책을 가자고 보챘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내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그가 고양이를 찾아갈 수 있게끔 문을 잠그지 않고 출근해야 했다.


이치에 맞지 않고 상식에 위배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배운 상식은 A를 가리키는데 당당히 B를 행하는 이들을 볼 때면 미칠 것만 같았다. 아니, 인지부조화로 진작에 미쳤는지도 모른다. 정신없는 출근길에 고양이 때문에 피해를 봤는데, 심지어 원인 제공자는 쏙 빠지다니. 어느 나라 상식을 갖다 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공공생활 예절은 부족해도 정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그를 무개념이라 칭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 문고리에 빵이 든 봉투가 걸려 있었다. 미안하다는 메모와 함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주인에 그 고양이라고 질색을 했는데 마음이 약해졌다. (빵 때문이 아니다) 그래도 사과까지 했으니까 앞으로는 조심하겠지. 그에 대한 마음이 예전처럼 돌아갈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척을 질 필요까지 없으니까. 그때는 몰랐다.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자꾸 바꾸다 보면 정신병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평가를 마음이 따라잡기가 힘들기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그는 나를 인지부조화로부터 구해주고 싶었던 건지 그 뒤로도 고양이를 복도에 풀어 키웠다. 거기에는 어떤 거리낌이나 머쓱함이 없었다. 누가 보면 복도까지 그의 집인 줄 알만큼, 그는 그게 이상하다는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받아들였다. 그가 그런 사람인 것을. 정은 많지만 개념은 없고, 사과를 잘 하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사람. 이벤트처럼 찾아온 그는 지겨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 살고 있으니까. 회사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점점 좁아지는 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게 현실 아니겠는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지루함을 받아들이는 게 인생이기에. 시작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건 일상에 들어온 이상 별 수 있나.


내 일상에 불쑥 사건이 찾아온 게 그가 처음은 아니었다. 우울에 잠식된 지가 너무 오래돼, 마치 깊은 물속에 잠겨있는 것 같던 때가 있었다. 괴로움에도 중독성이 있어서 고통 속에서 나름의 평온을 느끼기도 했다. 벗어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서 몽롱하게 질식되어가고 있었다. 뭐라도 하기로 마음먹은 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열망이 들어서였다. 집을 나와서 무작정 걸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거리에는 나뿐이었다.


조그만 실개천을 지날 쯤이었다. 개천을 잇는 다리 근처에서 허리룰 숙이고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다리 아래 뭐가 있나? 저기서 뭐 하는 거지? 그때 아주머니가 풀이 무성한 비탈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다리 밑으로 사라졌다. 나는 우울했던 것도 잊고 흥미로운 전개에 빠져들었다. 얼마지 않아 아주머니는 새끼 고양이를 안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머니는 얼마 전 방생한 고양이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아들이 동의 없이 데려오긴 했지만, 내보내고 나서 내내 신경 쓰였는데, 설상가상 비까지 내리니 와보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다행히 고양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확인만 하러 왔다던 아주머니는 입양을 결정한 듯 보였다.


아주머니에 대한 호기심이 해결되었지만 대화는 서로의 신변으로 확장되었다. 어디에 사는지, 무얼 하는지, 어쩌다 비 오는 밤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우울감을 떨치러 무작정 나왔다는 내게 아주머니는 진심 어린 위로와 조언을 해주었다.


빗발이 점점 거세졌다. 작별할 때가 왔음에 아쉬움이 앞섰다.


"우산 없으시면 씌워드릴까요?"


아주머니는 품에 고양이를 안고, 나는 우산을 들고 나란히 걸었다. 대화는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이어졌다. 아쉬움은 대화가 누적되면 줄어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번호를 교환하고서야 헤어졌다. 그 뒤로 아주머니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주머니가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나눠준 적도 있다. 볕이 좋은 여름날에 채소로 터질듯한 봉지를 든 채로 공원에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아주머니의 화제는 주로 두 아들들이었다. 다정한 첫째와 까칠하지만 고양이에 죽고 못 사는 둘째... 아주머니의 입에서 가공된 형제는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대비가 뚜렷해서 더 매력 있었다. 본 적도 없는 그들을 상상해 보게끔 만들었다. 어쩌면 아주머니의 가족에게까지 친분이 확장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만 아니었다면... 용량이 꽉 찬 쓰레기봉투에 계속해서 밀어 넣으면 언젠가는 터지고 말듯이, 그때의 나도 그랬다. 아무리 괜찮은 척하려고 해도 우울에 잡아먹히곤 했다. 결국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아주머니에게 몇 번 더 연락이 오긴 했지만, 압박감에 짓눌려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끝이 날 거란 걸 알았으면서 정작 끝이 찾아오니 의연하기 쉽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 아니라 영화였다면 다르게 흘러갔으리라. 로맨틱 코미디였더라면, 상반된 매력을 가진 두 아들들과 엮였을 거고, 드라마였다면 아주머니와 심도 깊은 우정을 나눴을 테고, 스릴러였다면 아주머니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기에 결말도 시시했다.


불쑥 지루한 내 일상에 찾아온 그라는 이벤트도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개들이 미친 듯 날뛰었다. 배달을 시킬 때도, 친구를 부를 때도 벨은 암묵적으로 금지였기에, 예상치 못한 종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문을 열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그가 있었다. 취한 건지 아니면 살짝 맛이 간 걸 이제 숨기지 않기로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평소와 달랐다.


"제가~ 오늘~ 교회를 갔다 왔거든요~?"


시발, 전도였구나. 어떻게 돌려보낼지 머리를 굴렸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저 좀 들어가도 될까요?"


불시에 공격이 치고 들어왔다. 혹여 무르기라도 할까 그가 잽싸게 안으로 들어왔다. 생라면을 부셔먹던 중이라 손가락에 스프가 묻어 있었지만, 미처 닦기도 전에 그의 전도가 시작됐다.


"어머니 하나님을 아세요?"


몰라.


"세상 모든 것들은 어떻게 탄생하죠?"


"번식.."


그의 동공에 지진이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라면이나 마저 부셔 먹고 싶었다.


"세상 모든 건 짝이 있어서 혼자 존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아는 남자 하나님이 존재하면, 어머니 하나님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는 신도 한 명을 확보하겠다는 일념으로 설파를 이어갔다.


"저희 아버지도 처음엔 저희 교회를 못마땅해하셨는데, 제가 설득시켰죠. 이제는 누구보다 열심히 다니세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다 저희 교회에 다녀요."


어쩌라고.


페퍼가 잔뜩 흥분해 짖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교리 공부 시간은 계속 됐으리라. 나는 속으로 '잘한다, 더 짖어라' 응원했다. 결국 페퍼 핑계로 그를 내보낼 수 있었다. 그는 휴대폰 번호를 남겼지만, 내가 그 번호로 연락할 일은 없었다. 그 후로 오며 가며 마주칠 때면 어색한 목례를 하고 지나쳤다. 그마저도 내가 호주로 떠나게 되면서 완전히 정리되었다. 어쩌면 인생에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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