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입니다. / 작중에는 그리고 표현했지만 그는 여자입니다.
나는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라, 받는 상황에서 불편함을 크게 느꼈다. 그와의 만남이 연속성을 띄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 특성 때문이었다. 쿠키를 받은 뒤로 마음의 짐이 생긴 나는 결국 디저트를 들고 그의 집 앞에 섰다. 큰맘 먹고 초인종을 눌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맥이 풀림과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살면서 회피하고 싶은 상황에 놓일 때마다 전화기를 부시고 도망치고 싶었다. 상상 속에서 학교며 직장, 다가올 미래를 폭파시킨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회피형이 아니라면 모를 테지만, 무턱대고 남의 집 찾아가기란 엄청난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적어도 시도는 했으니까.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야지.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젠장.
그간 집단생활에서 무수히 많은 애로를 겪은 나. 세상은 내게 꾸준히 이상한 새끼라는 낙인을 찍었으며, 나도 내가 세상에 맞지 않는 조각처럼 느껴졌다. 아마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계속 로봇에 머물러 있었으리라. 젊은 남직원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던 상사들은 더 어린 딸 뻘인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그 이유 없는 적의와 패악질은 조선시대 시어머니 악귀가 부활했다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가면을 쓰는 법을 배웠고, 몇 년이 흐른 지금 그에게 사회생활 미소와 함께 쿠키를 건넬 수 있게 됐다.
"저번에 쿠키 잘 먹었어요. 쌀로 만든 디저트인데 한 번 드셔 보세요."
이제 그가 인사를 하고 들어갈 차례다. 그런데 그 대신 대화를 이어나가는 쪽을 택했다. 조졌네... 악귀 시어머니들의 잡도리가 만들어준 사회생활 능력치는 여기까지인데. 우리는 한참을 문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딱 봐도 나잇대도 맞지 않고, 그렇다고 대화가 엄청 잘 통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이런 이벤트 한 번쯤은 괜찮지.
그가 우리 집 초인종을 다시 누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식을 한 아름 가져온 그와 저번처럼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대결이라도 하듯 먹을거리를 들고 서로의 집에 방문했다. 현관 앞에서 나눈 대화가 쌓여갈수록, 얼른 이 굴레가 끊기기만을 바랐다.
바람대로 간식 주고받기가 중단된 후에도 우리는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개들도 자연스럽게 그를 좋아하게 됐다.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사실 인생의 대부분의 순간이 그랬다) 그를 봤음에도 못 본 척 지나치고 싶었다. 하지만 개들이 눈치 없이 그에게 달려가는 바람에 실패하기도 했다.
옆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 사회의 풍조를 사랑했기에, 갑작스레 생긴 이웃의 존재는 친근함보다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좋았다. 친근하다는 이유로 선을 넘지 않았으니까. 복도에서 한참을 떠들다 보면 집으로 들일 수도 있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점이 산뜻해서 좋았다. 그 마음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건 그가 키우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집에 가 본 적도 없으면서 고양이는 어떻게 봤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점쟁이도, 해커도, 스토커도 아니면서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답은 간단하다. 그가 복도에 고양이를 풀어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가 열어놓은 문 틈으로 뛰쳐나간 고양이들이 복도를 제 집인 양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환기를 하려고 문을 잠깐 연 사이에 고양이들이 탈출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파트 구조상 문을 열지 않으면 환기가 불가능했으니까.
그런데 복도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는 빈도수는 점점 늘었고, 그만큼 내 분노지수도 차곡차곡 쌓였다. 하루 세 번 개산책을 가는데, 나갈 때와 들어올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방화문을 열자마자 불쑥 고양이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개들이 날뛰었으니까. 흥분한 개들을 억지로 집에 끌고 오고 나면 진이 다 빠졌다. 개들이 고양이를 공격할 수도,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대체 왜 고양이를 풀어두는 거지?
이미 이웃이 된 그를 '무개념'이라고 쉽게 단정 짓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인지 부조화가 왔다.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죄책감이 들 만큼 그에게는 좋은 면이 많았다. 정이 많고, 우리 집 개들을 예뻐해 주었으며, 개 산책을 자주 가는 내 노고를 이해했다. 힘들면 언제든지 본인이 대신 산책을 해주겠다고 선뜻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부조화를 이루던 두 인지가 통일된 건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우리 집에 고양이가 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