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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밍 Oct 14. 2020

[Opinion] 포스트잇으로 이어 붙인 우리의 목소리

단순한 종이를 넘어, 하나의 문화이자 상징으로서의 '포스트잇'


 2016년 5월, 친구 자취방에 누워있는데 뉴스를 보던 친구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고, 그때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실시간 뉴스로 접하게 되었다. 당시 대학에 올라온 지 3개월이 채 안된 새내기라 서울 구경에 여념이 없던 시기였고,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친구들과 강남에 놀러 갔었기 때문에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며칠 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포스트잇으로 추모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강남역으로 향했다.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이 역 출구를 덮은 그 자리에 한참 서서 다른 사람들의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읽고, 빼곡한 포스트잇 물결 사이에 노란색 포스트잇을 조심스럽게 붙이고 온 기억이 있다.


  

연대하는 익명의 이들



 당시에는 포스트잇을 붙여 추모를 하고 이를 통해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것이 조금 생소했지만, 지금은 포스트잇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구의역 사고로 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포스트잇을 통해 애도와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이뤄졌고, 미투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포스트잇은 추모를 넘어 저항과 고발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대학 곳곳에서 성범죄 가해 교수들을 비판하는 포스트잇이 교수 연구실 문을 덮었고, 중학교, 고등학교 곳곳에서도 포스트잇을 이용한 스쿨 미투가 이어졌다. 두 달 전에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릴레이 포스트잇 주간’이 진행되기도 했다. 대학가의 게시판에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모습 또한 이제는 일상적이다.


 포스트잇 문화가 활발해진 이유는 익명성과 연대라고 생각한다. 대자보로 예를 들면, 대학에서 대자보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느 정도의 용기와 책임이 필요한 자리이다. 나 또한 대학 안에서의 부조리한 일을 목격하고 분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누군가가 대신 대자보를 붙이길 막연히 기대하고 당사자에게 박수 쳐 줄 생각만 했다.


 하지만 포스트잇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다가온다. 무수히 붙여진 포스트잇을 보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포스트잇이 많이 붙여져 있지 않아도 내가 붙인 작은 종이 한 장이 다른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포스트잇을 서로 이어 붙이는 것은 익명의 공론장을 마련함과 동시에 서로의 목소리를 함께 읽고 공감하는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안전한 '목소리 내기'



 그렇다면 대체 왜 우리의 이야기를 포스트잇처럼 사소하고도 익명적인 형태로 보여줄 수밖에 없을까? 폭로나 고발은 기본적으로 약자의 권리 표현 수단이다. 하지만 익명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어떤 이들은 ‘왜 폭로에 의존하느냐’고 묻고, 또 어떤 이들은 ‘왜 실명으로 폭로하지 않느냐’며 피해자의 발언을 왜곡하거나 축소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실명을 밝히고 항의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 혹은 2차 가해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포스트잇을 통한 목소리 내기는 개인적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한다. 비록 작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서로 이어 붙이면서 그 무엇보다 큰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공감과 연대의 장을 마련한다. 쉽게 떼었다 붙일 수 있는 포스트잇이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미약함이 하나둘 모여 하나의 단단한 목소리로 이어진다.


 물론, 포스트잇으로 익명의 목소리를 낸다 해도 완전히 안전한 건 아니다. 올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5월 17일)’을 기념해 7월 31일부터 신촌역에 게시된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광고판이 훼손되고, 시민들이 광고판 위에 응원문구를 적은 포스트잇을 덧입혔다. 하지만 이 또한 누군가에 의해 뜯기고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현시점에서, 포스트잇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이자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이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사람들의 참여는 더 큰 목소리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기존 사회에서의 피해자 혹은 소수자의 권리가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익명의 목소리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공격받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지금의 포스트잇 문화는 약자와 피해자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안전한 ‘목소리 내기’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성숙한 사회가 필요하다. 언젠가는 포스트잇이 아니라, 각자의 목소리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안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에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20기로 활동하며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231


사담 한 스푼 : 2018년 11월 23에 쓴 글(KBS 아카데미 논술작문 7주차 숙제였다)에 조금 덧붙여서 오피니언을 기고했다. 과거의 고민을 되새겨 본다. 이 고민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고, 아마 평생 안고 갈 이야기 일터다. (+ 브런치.. 제목 글자 수 늘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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