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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밍 Apr 06. 2021

[Review] '이판사판' 살아나가기

연희집단 The 광대 <딴소리 판>

 초등학교 때 국어 시간이었나, ('읽기' 시간이었는지 '말하기 듣기 쓰기' 시간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국어 시간이었다.)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고전'을 두고 종종 대토론회를 벌였던 기억이 난다. 대충 나열해 보자면, '홍길동의 도적 행위는 옳은가?' '심청이는 과연 효녀인가?' '토끼전(수궁가)의 각 인물들의 거짓말은 정당한가?' '과연 나는 흥부처럼 살겠는가, 놀부처럼 살겠는가' 등의 주제였던 것 같다.


 초등학생들의 '판'이었으니, 고상함과 논리보다는 웃음과 분노 그리고 무논리가 차고 넘쳤던 토론회였다. 토끼전에서 토끼와 자라의 행실에 대해 논하던 와중에, 이 모든 걸 초래한 용왕이 화근이라며 토론의 타깃을 돌린다거나. 심청이의 '효'를 논하다가 뜬금없이 아버지의 책임을 묻는다거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탁상공론에 지쳐 토론 자체를 접자며 목소리를 높인다거나. 심지어는 (무려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초록빛 칠판 위에 흰 분필로 또박또박 쓰인 명제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서는 일들이 빈번했다.


 한 마디로 뚱딴지같은 소리들이 난무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참 재기 발랄한 잡담회였다.)



고리타분한 '고전' 흩트리기



 연희집단 The 광대의 <딴소리 판>을 관람하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뚱딴지같은 소리 하기, 딴지걸기, 깽판치기 말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딴소리 판>의 주인공은 '거지들'이다. 어, '판소리'의 주인공들이 거지들이라고? 자고로 판소리라 함은, 소리꾼과 고수가 엮어가는 이야기 아니던가. 공연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거지들이 소리꾼과 고수의 '판'에 난입해 신명 나게 탈춤을 추고, 그러면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고전'이 흐트러진다.


 <딴소리 판>은 판소리 5마당(판소리 12마당 가운데 5마당만이 오늘날까지 소리와 함께 전승되고 있다.)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가 그 대상이다. 이 다섯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대부분이 비슷할 것 같다.


 머릿속에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나열해본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죽고 못 사는 춘향과 몽룡. 효녀라는 단어에 원 플러스 원처럼 뒤따라 오는 그 유명한 남의 집 딸내미 심청. 도원결의부터 적벽대전까지 진하디 진한 남자들의 으으리(의리). 착하지만 가난한 흥부와 글러먹었지만 부자인 놀부의 막돼먹은 형제사.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세뇌를 받은 것 마냥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 이야기들은, 솔직히 좀 고리타분하다.


 그런데 이런 판소리 5마당에 거지들이 나타나, 지금 이 시대의 언어로 옛이야기를 첨삭한다. 고리타분한 고전은 새로운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거지들의 첫 등장부터 인상적이다. 수절하려던 춘향 앞에 몽룡이 나타나는데, 그는 우리가 잘 아는 '도련님' '암행어사'가 아니라, 몰락한 '아맹거사'다. 암행어사가 아닌 아맹거사로 나타난 몽룡이 춘향에게 사랑이 아닌 밥을 구걸한다. 춘향가로부터 시작된 거지들의 딴소리는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보가를 차례로 넘나 든다. 이들이 다섯 마당을 넘나드는 이유도 참 단순하고 하잘것없다. '끼니'를 위한 여정이다.



 거지들은 밥을 먹기 위해 전국봉사대회가 벌어진 황궁에 봉사로 위장해 들어간다. 이들의 장님 행세가 발각되어 쫓겨날 무렵, 심청과 심봉사의 눈물겨운 재회가 펼쳐진다. 이를 지켜보던 거지들은 효도의 부질없음을 논하면서 깽판을 놓고, 혼란을 틈타 도망간다. 이들의 다음 행선지는 전쟁터다.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조조 앞에 며칠을 굶은 거지들이 지나간다. 입대하면 밥을 준다는 이야기에 거지들은 조조군이 된다. 전쟁의 대목에 선 거지들이 다짐하는 바는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맹세한 '도원결의'와 정반대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며, 각자 스스로 제 살길을 찾기로 맹세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는 제갈공명에게 엉망진법을 펼치며 깽판을 친다.


 이후에도 거지들은 밥벌이하기 위해, 수궁의 축성을 축하하는 잔치에 참여해 공연을 펼친다. 하지만 이들에게 닥친 건 따스한 쌀밥이 아닌 갑질이다. 하지만 갑질에 굴하지 않는 우리의 거지들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간이 약해진 용왕에게 말 그대로 '약'을 팔려하고, 종국에는 “이판사판 깽판이다!”를 외친다. 거지들은 간절한 흥부 앞에도 나타나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 그의 소원을 말 그대로 '듣기'만 해준다며 나타난 거지들은, 흥부에게 썩 달갑지 않은 존재다. 거지들은 여기에 대고 '우리는 너처럼 책임질 게 없어 자유롭다'라고 말하며 흥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흥부로서는 서럽고, 또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차라리 나를 죽이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흥부에게 거지들은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다. “죽는 게 소원이었군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거지들의 여정이 대략 정리되고, 다시 춘향가의 대목으로 돌아온다. 거지떼의 딴소리 사연을 다 들은 춘향은 몽룡과의 사랑을 택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택하고, 몽룡과 거지들 역시 제 갈 길을 향한다. <딴소리 판>에서 옛시대를 지탱하던 가치들은 거지들에 의해 하잘 것 없어진다. 판소리 5마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지 거지 그런 거지 인생사 다 그런 거지"를 외치는 거지들을 어처구니없는 눈초리로 바라보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고, 박수를 친다. 특유의 언어유희가 주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며 할 말 다하는 거지들에게서 온다.


 사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하다면, 저 말이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큰 즐거움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 거다. 가슴 깊이 밀려드는 해방감도 느껴지지 않을 거다. 저 말이 속시원한 이유는, 우리가 지금 하지 못하는 말을 누군가가 대신해주었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한 고전이라며, 우리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옛이야기의 불편한 지점들은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왜 우리는 <딴소리 판>을 볼 때 배가 찢어져라 웃으며 이름 모를 해방감을 느꼈나. 공연이 끝나고 밤거리를 걸으면서 왜 우리는 어제를, 오늘을, 또 내일을 걱정하는가. 우리는 옛이야기에 난입한 거지들을 통해 현시대의 우리를 본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이판사판' 살아나가야 하는 거지들의 얼굴은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앞서 거지들이 '끼니'를 위해 다섯 마당을 넘나드는 게 단순하고 하잘것없다고 말했는데, 사실 이 문제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또 녹록지 않다. 그나마 거지들은 '끼니'를 위해서 딴소리 판을 열었지만, 오늘의 우리는 '끼니'를 위해 고리타분한 판을 묵묵히 견디곤 한다. 시간을 먹어갈수록, 또박또박 쓰인 명제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서는 게 점점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광대 거지들의 자유로움과 그 용기가 문득 부러워진다. 내 인생에서 광대 거지들을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을까. 혹여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 거지들 틈에 아무렇지 않게 섞여 깽판을 칠 수 있을까. 광대 거지들과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글을 맺는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로 활동하며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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